07. 인간의 머리도 이식할 수 있다.

<2035 미래기술 미래사회>

1997년 영화 <얼굴 맞바꾸기(Face Off)>는 미국 연방수사국 요원과 테러범이 서로의 안면을 떼어낸 뒤 이식을 해 얼굴이 맞바뀐 상황을 연출한다. 2005년 11월 프랑스에서는 세계 최초로 다른 사람의 얼굴을 부분적으로 이식하는 안면 수술에 성공했다. 얼굴뿐만 아니라 머리 자체를 바꾸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다.

영화 <얼굴 맞바꾸기(Face Off)>

머리 이식(head transplant)은 공상과학 영화 소재에 머물렀으나 20세기 초부터 몇몇 과학자가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1908년 미국 생리학자 찰스 거스리(1880~1963)는 작은 잡종견 머리를 큰 개의 목에 접합하는 실험을 했다. 큰 개의 머리는 손대지 않았으므로 머리가 두 개 달린 상태였다. 1954년 러시아 외과 의사 블라디미르 데미코프(1916~1998)는 잡종 강아지의 상체를 몸집이 더 큰 개의 목 혈관에 접합시켰다. 앞다리가 달린 채로 상체를 접합했으므로 목 두 개, 앞다리 네 개가 달린 개가 생긴 것이다. 이 개는 수술 뒤 29일간이나 생존했다.
     
머리가 제거된 포유동물의 몸뚱이에 새 머리를 이식하는 수술은 미국 신경외과학자 로버트 화이트에 의해 처음 시도됐다. 1970년 화이트는 붉은털원숭이가 머리 이식수술 이후 마취에서 깨어나 두개골의 신경 기능을 완벽하게 회복했으며 8일 동안 살아있었다고 발표했다.
     
화이트는 원숭이 머리 이식수술 절차를 조금만 응용하면 사람 머리 이식도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말하는 사람의 머리 이식수술 과정은 머리를 주는 사람과 머리를 받는 사람을 마취시키는 것으로 시작된다. 두 사람의 목둘레를 절개한 뒤 조직과 근육을 분리해 동맥ㆍ정맥ㆍ척추를 노출한다. 뇌가 충분한 혈액 공급, 곧 산소를 받도록 피의 응고를 방지하는 약품을 혈관마다 집어넣는다. 두 사람의 목 척추에서 뼈를 제거한 뒤 척수를 드러낸다. 척추와 척수를 분리한 다음 이식해야 하는 머리를 절단해 머리가 이미 잘려져 있는 몸에 접합시킨다. 이어서 이식된 머리에 달린 정맥과 동맥을 새로운 몸의 정맥과 동맥에 봉합한다. 근육과 피부가 차례대로 봉합되면서 머리 이식수술이 완료된다.
     
화이트에 이어 머리 이식수술 연구에 성과를 올린 인물은 이탈리아 외과 의사 세르조 카나베로이다. 온라인 학술지 《국제외과신경학(Surgical Neurology International)》 2월 3일 자에 발표한 논문에서 카나베로는 화이트와 유사한 머리 이식수술 방법을 제안하고, 가장 어려운 문제는 몸의 면역계가 새 머리를 거부하지 못하게끔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화이트의 머리 이식수술이 실패한 원인 중 하나는 원숭이 머리가 새 몸뚱이에 의해 거부됐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남의 장기나 팔다리를 받아들이게 하는 약품을 투여하면 면역 거부 반응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영국 주간 《뉴사이언티스트》 2월 28일 자에는 머리 이식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카나베로의 아이디어가 현실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사고로 목 아랫부분이 마비되거나, 나이가 들어 근육과 신경 기능이 저하되거나, 암에 걸려 완치가 어려운 사람들이 머리 이식을 희망할 것 같다. 특히 머리보다 새 몸뚱이가 더 젊다면 젊은 피가 머리로 순환돼 몸과 마음의 기능이 더 좋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람의 머리 이식은 필연적으로 윤리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나 화이트나 카나베로는 머리 이식에 필요한 몸은 뇌사 판정을 받은 사람으로부터 기증받을 것이므로 머리 이식에 따른 생명윤리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머리 이식으로 목 아래 신체기관, 이를테면 심장ㆍ젖가슴ㆍ팔다리ㆍ배꼽ㆍ생식기ㆍ발톱ㆍ항문 따위가 송두리째 남의 것으로 바뀐 사람을 수술받기 전의 그 사람과 똑같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6월 12일 미국 메릴랜드에서 개최되는 신경학 관련 학술회의에서 카나베로는 “2017년 초에 사람의 머리 이식수술에 성공할 수 있다.”고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