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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07. 2016

02. 스승을 능가하다. <그리스도의 세례>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베로키오는 포르타 알라 크로체 근처 도시 성곽 밖에 있는 산 살비 수도원에 <그리스도의 세례>를 그리고 있었다.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가 부분적으로 그린 것으로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리스도를 패널 중앙에 구성한 베로키오는 회화적 구성을 위해 그리스도 왼쪽 강둑에 천사 두 명을 그려넣었는데 오른쪽의 천사는 자신이, 왼쪽의 천사와 배경은 레오나르도에게 그리게 했다.

베로키오와 레오나르도, <그리스도의 세례>, 1475~8년경, 패널에 유채와 템페라, 17.7×15.1cm _요단 강가에 맨발로 서서 양손을 모아 가슴에 올리고 아래를 응시하는 그리스도에게 세례 요한이 동그릇에 강물을 붓는 세례식 장면이다. 그리스도의 머리 위로는 비둘기로 형상화한 성령이 임하고 있다.


이 작품은 베로키오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조화와 감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는 두 수도자의 인체를 해부학적으로 묘사하는 동시에 장려하게 표현했다. 이탈리아 화가들은 투명한 물을 묘사하는 데 어려움을 느껴 마른 땅에서 세례를 받는 장면으로 표현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베로키오는 이를 사실주의 방법으로 묘사했다. 그는 플랑드르 화가들의 방법을 응용해 강물에 잠긴 그리스도와 세례 요한의 다리를 그리면서 투명한 강물을 잘 묘사했다. 뵐플린이 지적했듯이 레오나르도와 베로키오 사이에는 내적 연결성이 존재했다. 바사리의 기록을 보면 두 사람이 매우 가까웠으며 베로키오가 창안해낸 것들을 레오나르도가 많이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레오나르도의 초기 그림들은 매우 놀라우며 베로키오의 <그리스도의 세례>에 그려진 레오나르도의 천사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나온 음성처럼 관람자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그리스도의 세례> 부분. 오른쪽 천사는 베로키오가, 왼쪽 천사는 레오나르도가 그린 것이다 _존 러스킨은 그리스도의 옷을 들고 있는 레오나르도의 천사 그림은 “종교적 그리고 전체적 구성에서 볼 때 베로키오의 것보다 우수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 회화적으로는 훨씬 뛰어나다”고 했다. 레오나르도는 천사의 어려운 몸짓을 묘사했는데, 천사가 관람자쪽으로 등을 3분의 2쯤 돌린 옆모습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모습이다. 이런 각도로 그리기란 어려운 일이다. 딱딱하고 오래된 양식의 그림에 레오나르도의 천사가 삽입되어 작품이 한결 부드럽고 정취가 있으며 부피와 공간이 생겼다.


바사리에 의하면 레오나르도가 그리스도의 옷을 들고 있는 천사를 그렸을 때 베로키오는 너무 놀라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자기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기교면에서도 레오나르도가 베로키오에 비해 우수함이 증명되었는데, 엑스레이를 투시한 결과, 베로키오의 채색은 릴리프처럼 두꺼우며 붓자국이 생겼지만 레오나르도는 흰색을 섞지 않고 물감을 기름에 섞어 투명하게 칠했기 때문에 붓자국이 생기지 않았다. 레오나르도는 템페라를 사용하지 않고 밑칠을 투명하게 했으므로 엑스레이를 투시할 경우 나무패널이 보인다. 그는 가장 엷고 밝은색으로 코팅을 한 후 점점 어둡게 해서 인체의 윤곽을 나타내는 기교를 사용했다. 빛이 착색유리에 비쳐 통과하듯 그의 그림에 빛을 비추면 투명함을 보게 된다. 레오나르도가 마지막으로 그린 <광야의 세례 요한>에 사용한 유상액은 너무 엷어서 엑스레이를 통해 보면 한결같이 고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레오나르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작업이 없을 때는 대상을 관찰하면서 다양한 모습을 드로잉했다. 그는 한 가지에 몰두하면서도 불현듯 떠오르는 착상을 손이 가는 대로 그렸다. 때로는 고양이를 뒤에서 보고 그리면서 꼬리를 의문부호로 그리기도 하고 어떤 전리품을 움켜쥐고 웅크린 모습으로 그리기도 했다. 가운데에는 작은 용을 그려넣었는데 언뜻 보면 고양이처럼 생각된다. 또 다른 종이에는 다양한 말의 모습을 그리다가 호랑이처럼 생긴 고양이를 그리기도 했다.

레오나르도, <고양이와 말 스케치>, 29.8×21.2cm



그의 노트북을 보면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 메모한 종이에는 여러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의사이면서 철학자·지리학자·수학자인 파올로 토스카넬리가 적혀 있고 피렌체에서 산수를 가르치는 베네데토의 이름도 있다. 그가 이런 사람들의 강의를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평소 그의 관심사는 다양했으며 과학에 특히 관심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레오나르도, <이몰라 마을 계획>, 1502년경, 44×60.2cm



그가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늙은 토스카넬리에 의해서였다. 토스카넬리는 브루넬레스키의 친구로서 베로키오와도 종종 만나는 사이였다. 레오나르도가 토스카넬리를 만난 것은 대성당에 구체를 장식으로 올려놓을 때였다. 당시 토스카넬리는 피렌체의 가장 유명한 천체학자였으며 지리학자였다. 그는 1474년 당시 배를 타고 서쪽으로 항해하면 중국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콜롬버스가 그의 이론을 받아들여 대서양을 건넜다. 레오나르도는 평생 천체와 지구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며 토스카넬리의 강의를 듣고 그에게 질문도 하고 책과 도구를 빌리기도 했다. 레오나르도가 그린 지도는 토스카넬리의 영향으로 짐작된다.

레오나르도가 평소 친구 예술가들과 잘 어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보다 예닐곱 살 많은 보티첼리에 관해 몇 차례 언급한 바 있다. 그는 보티첼리의 작품에 관해 신통치 않은 반응을 나타냈는데, 보티첼리가 원근법을 중시하지 않는다면서 “산드로, 당신은 어째서 (중앙에 있는) 두 번째 대상이 세 번째의 것보다 작게 보이는지 말하지 않는 거요”라고 적었다. 또한 그는 보티첼리가 풍경을 단지 배경으로만 사용하면서 앞에 있는 주제와는 무관하게 느껴진다고 비평했다. 실제 보티첼리의 <봄>에서 님프들의 발이 땅에 닿은 것처럼 보이지 않고 <비너스의 탄생>에서 나무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것은 레오나르도의 지적을 당할 만했다. 베로키오는 재능이 많은 예술가였지만 훌륭한 조각가를 배출하지 못했고 회화 분야에서만 레오나르도, 페루지노, 로렌초 디 크레디를 배출했다. 레오나르도는 일곱 살 연하의 크레디의 작품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아마 관심 밖이었던 것 같다.

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5~6년경, 175×280cm



레오나르도에 정통한 학자 케네스 클라크는 이 시기에 레오나르도의 취미는 “옷을 잘 입고, 말을 길들이며, 류트(14~17세기의 기타 비슷한 현악기)를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당시 피렌체 젊은이들은 오늘날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파티를 좋아했고 어떻게 즐길 것인가에 관해 끊임없이 궁리했다. 그들은 평범한 생활을 싫어했다. 레오나르도에게는 유머가 있었고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고 했으며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 퍼뜨리기도 했다. 과학을 좋아한 그는 사람들에게 속임수를 보여주기도 했다. 유리컵 사이에 나무막대기를 올려놓고 유리컵을 손상시키지 않은 채 나무막대기를 자른다든가 펄펄 끓는 기름에 와인을 부어 다양한 색의 화염을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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