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일간의 엄마>
유방암은 여성들에게 발생하는 암 중 가장 흔한 암으로, 그 수는 적지만 10대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20대, 30대 그리고 40대, 50대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발병률이 증가한다.
35세 미만의 젊은 여성 유방암 환자는 전체 유방암 환자의 3~6퍼센트 정도로 적고, ‘임신 중인 유방암 환자’는 1퍼센트 이하로 한층 더 적다.
약년성 유방암은 자가 진단으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고 발견 시에 멍울이 크며 림프샘 전이가 많다는 등의 특징이 있다. 또한, 트리플 네거티브일 확률도 높아서 35세 이상 연령층과 비교하면 예후가 좋지 않다. 특히 임신 중에는 임신으로 인한 유방의 발달과 멍울을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어서 발견이 늦어지기도 한다.
다만, 약년성 유방암은 무서운 암임에는 틀림없지만 조기발견으로 예후가 개선될 가능성이 있으며 림프샘 전이가 없는 경우, 35세 이상의 유방암과 예후에 차이가 없다는 데이터도 있다.
유방암은 진행도에 따라 치료 흐름이 달라진다. 0기, 1기, 2기, 3기, 4기로 나뉘는데 예를 들어 아주 초기인 ‘0기’는 절제 수술을 하면 거의 완치되며 재발이나 전이 걱정도 없다. 그에 반해 ‘4기’는 여러 장기로 전이된 상태여서 암세포가 온몸을 돌아다니고 있으므로 약물요법이 치료의 기본이다.
초음파 검사 등의 결과로 보아 나오는 ‘2기’까지 진행된 것이 틀림없다고 보았다. ‘1기’까지라면 조기 유방암에 속해 설령 임신 중이라 해도 치료 방법은 있다. 하지만 나오는 ‘2기’ 이상이었다. 이미 원격 전이(암 덩어리 주변이 아닌 인접하지 않은 먼 곳의 장기로 전이되는 것)되었을 의심도 지울 수 없었다. 확실히 알아보려면 CT나 MRI 검사가 필수지만 태아에게 미칠 영향 때문에 시행할 수 없었다.
더구나 나오의 경우, 치료가 어려운 트리플 네거티브. 다시 말해 당장에라도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 위험한 상태였다. 다만 좀 전에 재발 가능성이 50퍼센트라고 한 것을 뒤집어 생각하면, 두 명에 한 명은 재발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의사들은 담담하게 설명했다. 트리플 네거티브라고는 해도 분자 표적 치료나 호르몬 치료, 방사선 치료는 시도할 가치가 있겠지만 배 속에 아이가 있기 때문에 그 영향을 생각하면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수술로 암세포를 제거할 수는 있지만, 임신 중이라서 CT 검사를 받을 수 없으니 전이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바로 수술하고 치료에 들어갑시다.”
이 말이 의미하는 건, ‘출산을 포기할 것인가, 말 것인가’.
물론 나오를, 우리 부부를 생각해서 한 말이었겠지만 우리 부부는 행복의 절정에서 느닷없이 ‘생명을 선택하느냐 마느냐’ 하는 기로로 내몰렸다. 시간을 끌어선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바로 대답이 나올 리 없었다. 아니, 대답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오의 얼굴은 내게 말하고 있었다. “낳고 싶어”라고. 저게 갖고 싶다느니, 이걸 사달라느니, 하는 말을 일절 입에 올리지 않았던 아내다. 그런 아내가 처음으로 분명히 내게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낳고 싶어.”
“나오가 없다면…….”
나는 분주히 돌아다녔다. 대체 병원을 몇 군데나 돌았을까. 평일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을 하고, 그 중간중간 짬을 내어 의사를 만났다. 그러나 어느 의사에게 물어도 대답은 같았다. 모체(母體)를 최우선으로 생각해 치료에 전념하길 넌지시 권했다. 트리플 네거티브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진행되지 않았다면, 치료와 출산이 양립할 수 있다. 하지만 나오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
그렇다면 이번 출산은 포기하는 게 어떨까.
“항암 치료를 한다 해도, 경과가 좋으면 5년 후에는 아기를 낳을 수 있습니다.”, “난자와 정자를 보존해두면, 치료 후에 임신될 가능성도 있습니다.”라는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지금 배 속에 있는 아직 보지 못한 우리 아이에 대한 사랑 — 나오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솔직히 나는 나대로 많이 고민했다. 셋이 살아간다. 당연히 그 길을 택하고 싶었고, 그 길밖에 없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결정했다가도 어느새 또 흔들렸다. 명의로 알려진 선생님들을 만날 때마다 불안해졌다. 대놓고 낙태하라는 말을 하진 않았지만 치료에만 전념하는 게 좋겠다고 에둘러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 치료에 전념하든 않든 치유율에 큰 차이는 없다고 말하는 의사 선생님도 있었다. “도저히 모르겠어요, 어떡해야 좋을지.” 하이힐 링고 씨에게 불안한 마음을 토로한 적도 있다. “왜 하필 나오야, 왜?” 하고……. 도쿠시마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 사촌에게도 수십 년 만에 전화를 걸어 수도 없이 상담했다.
하지만 답을 낼 수 없었다. 발을 내디딜 수가 없었다. 나는 나오를 사랑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그 사실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나오를 잃고 싶지 않아.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더 이상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나오에게 털어놓고 말았다.
“어느 의사건 하나같이 이번 출산은 포기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는데…….”
“난 낳고 싶어.”
“당연하지, 나도 그러고 싶어. ……하지만 난 당신이 중요해. ……만약 재발한다면, 아이는 나 혼자 키워야 하잖아.”
여기 나오의 일기가 있다. 유방암이란 걸 알고 나서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다.
“건강한 아이를 낳고 암이 완치되면 훗날 아이한테 보여주자. ‘엄마가 이토록 애썼단다.’라고 전할 수 있으면 좋잖아? 그리고 ‘그러니까 엄마랑 아빠가 하는 말은 잘 들어야 한다.’라고 말하자. 나도 일기를 쓸 테니 나오도 써.”
그런 농담 같은 제안으로 시작된 일기였다. 당시에는 쓰고 있는지 어떤지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나오는 정말 일기를 써주고 있었다.
나오의 글씨가 이 안에 있다. 나오의 ‘생각’이, ‘마음’이, 이 안에는 있다. 알고는 있지만 나는 이 일기를 아직 다 읽진 못했다. 읽을 수가 없다. 마음의 정리가 덜 되었기에.
용기 내어 펼친 일기장의 첫머리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켄 씨가, 내가 죽을 것을 전제로 생각하고 있다는 게 너무 속상하다.
‘만약 재발한다면 아이는 나 혼자 키워야 하잖아.’
어쩌자고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을까. 어째서 “함께 힘내자!”고 말하지 못했을까. ‘살고 싶은 마음’이 누구보다 컸던 건 나오였을 텐데…….
흔들리고 있던 건 나뿐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나는 유명한 의사라면 뭐가 됐든 결단을 내려줄 거라 믿었던 것 같다. 출산을 포기하는 게 좋을지, 포기하지 않아도 될지. 그래서 그 결단을 좇아 명의로 알려진 선생님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결단 내리는 건 우리 몫이었다. 결정권을 쥔 사람은 나오와 나오의 남편인 나, 다시 말해 배 속 아이의 부모인 ‘우리’뿐이었다. 나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림이 없었다. “아이를 낳을 거야. 그리고 나도 살 거야.” 하고 나를 위해, 태어날 아이를 위해, 당연하다는 듯이 엄마가 될 준비를 했다.
‘셋이 사는 선택’…….
나오의 일기에 이렇게 적혀 있다.
5초만 더 있었으면 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번 어두워지면 끝일 것 같았다. 비극의 주인공……은 되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보이고 싶지도 않다. “왜 하필 당신이?”라는 말을 듣는 게 괴롭다. 왜, 어째서, 라고 생각해봤자 소용없는 일. 나는 울지 않아.
울어도 슬퍼해도 ‘암’은 낫지 않아. 어두운 기분에 젖으면 배 속의 아기에게 좋지 않아.
유방암 진단이 내려진 이후 나는 나오의 눈물을 본 적이 없다. 울고 싶었을 텐데. 울며불며 소리치고 싶었을 텐데. 그러기는커녕 나오는 나를 걱정해주었다. 일기에 이렇게 쓰여 있다.
켄 씨도 괴로울 텐데.
켄 씨는 일도 하고 상사에게 머리 숙여 출근 시간까지 조정해가며 그 시간에 의사를 찾아다니고 있다. 보통 일이 아닐 텐데.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여간 힘들지 않을 텐데.
아니야. 힘들었던 건 나오, 당신이야. 내가 아니야. 그런데도 나는 상처가 될 말을 하고 말았어……. ‘만약 재발한다면, 아이는 나 혼자 키워야 하잖아.’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날 향한 나오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나오가 내게 그런 표정을 보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결의와 각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