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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09. 2016

00. <당신은 유일한 존재입니까> 연재 예고

<당신은 유일한 존재입니까>

싸우지 않고 이기는 유일한 전쟁은 독점뿐이다.
독점 영역과 시장을 개척하여 반영구적 수익지대를 창출한 세계적 모노폴리언(Monopolion) 기업을 주목하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하네트 카운티의 작은 도시 던(Dunn)에서는 <데일리 레코드(The Daily Record)>라는 지역 신문이 발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 신문의 구독률이 상식 밖이다. 공식 발표된 <데일리 레코드>의 구독률은 112%. 던의 모든 가정이 구독하고도 12%가 더 본다는 것인데, 신문을 구독하는 유령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이런 가정이 성립해야 한다. ‘한 집에서 같은 신문을 아내와 남편이 각각 신청해서 보거나 던에 살지 않는 외부인이 <데일리 레코드>를 굳이 구독해서 본다.’ 도대체 <데일리 레코드>에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런 경이적인 구독률이 나오는 걸까? 

대부분의 미국 유력지들이 ‘국방정책의 방향이 바뀌다!’, ‘마케도니아, 급진정당 평화조약에 합의!’, ‘테헤란에서 깜짝 놀랄 개혁정책이 시작되다!’ 등의 정치와 외교 문제를 헤드라인으로 다룬 날, <데일리 레코드>만은 헤드라인을 이렇게 뽑았다. ‘흑곰, 오토바이에 치이다(A black bear struck by a motorist)!’ 
   
던의 도로에서 최근 흑곰들이 연이어 차에 치여 죽고 있고, 이것은 이곳저곳을 배회하는 곰 특유의 습관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죽은 곰의 사체를 가져가거나 뼈나 이빨을 파는 것은 불법이라고 주민에게 알린다. <데일리 레코드> 입장에서는 미국의 국방정책보다 던에서 흑곰이 죽은 것이 더 중요하다. 이유는 그들만의 편집 방침에 있다. ‘던을 기억하라, 빅 뉴스는 잊어라.’
   
<데일리 레코드>는 인구가 12,000명인 소도시 던의 정보를 꿰뚫고 있다. 누가 이사를 오고 누가 이사를 하였는지, 벼룩시장은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 요즘 잘나가는 가게는 어떤 곳인지, 세일은 언제 하는지, 내 이웃집의 경조사가 언제인지 등등을 알기 위해서 던의 사람들은 반드시 <데일리 레코드>를 보아야만 한다. 그뿐 아니다. 던에서 사업을 하려는 사람에게도 <데일리 레코드>는 가장 중요한 홍보 매체다. <데일리 레코드>를 통하지 않고서 주민사회의 구석구석에 도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데일리 레코드>는 던을 수십 년간 지배해온 지역 독점 언론이다. 하지만 던의 어느 사람도 <데일리 레코드>의 이러한 독점에 불만을 품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이 알고 싶어 하는 마을의 은밀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전달해주는 것에 감사를 표한다. 주민들은 <데일리 레코드>에 궁금한 일에 대해서 알아봐 달라고 메일을 보내기도 하고, 자신들이 찍은 사진을 보낸 뒤에 다음 날 신문에 실렸는지 흥미진진하게 확인을 한다. 그리고 신문에서 친구나 이웃의 이름이 실린 기사를 발견하면 코를 파묻고 읽는다. <데일리 레코드>의 독자들은 ‘오늘 우리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신문을 펼친다.
     
<데일리 레코드>가 독점적인 위치를 지키는 원칙에 대해서 편집자 후버 아담스는 이렇게 말했다. “주민들은 자기가 아는 사람의 이름과 사진을 보기 위해 지역 신문을 구독합니다. 이는 우리가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이지요. 우리는 독자들이 다른 어디에서도 얻지 못할 정보들만 다룹니다.” 그는 이어서 선을 긋듯 이렇게 덧붙인다. “만일 이웃 도시에 핵폭탄이 떨어진다 해도 그 파편이 던 지역까지 날아오지 않는다면 <데일리 레코드>에 실리지 않을 겁니다.”
   
<데일리 레코드>가 비록 다른 지역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지라도, 또 전국적인 뉴스를 다루지 않더라도 미래가 암울해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던에 사는 1만 2,000명의 주민은 차라리 식료품비 지출을 줄일지언정 <데일리 레코드>를 끊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데일리 레코드>의 사례를 흥미 있게 살펴보고 있을 때쯤 나는 웹서핑을 하다가 워런 버핏의 특이한 투자 사례를 다룬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는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를 비롯한 지역 신문을 무려 10개나 인수하고 있었다. 이 이해하기 힘든 인수 행위는 ‘지역 독점’이라는 <데일리 레코드>의 사례와 연결해서 생각하면 상당히 일리 있는 투자로 변한다. 특히 버핏은 <워싱턴 포스트>의 지분을 소유한 이유에 대해서 ‘연방정부의 뉴스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내가 사는 동네 이웃의 작은 정보가 거대한 여느 정치 ․ 경제 이슈보다 더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근처 병원에서 한 100m쯤 거리에 있는 장어집 아시죠?” 어느 날 얼굴 피부가 좀 상해서 피부 관리를 받으러 갔던 동네 피부관리실에서 나는 솔깃한 동네 정보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건너편에 있는 곰탕집도 그 집 사장님이 하는 거예요. 그 동네 인근에 무려 10개나 하는 걸요.”
   
피부관리실이란 곳이 익숙하지 않아서 조용히 마사지만 받고 나오려고 했던 나는 점점 대화 속으로 끌려들어 갔다. 알고 보니 동네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석쇠 구이집과 곰탕집 그리고 아직 가보지 못한 장어집 주인이 한 사람이며, 돈을 꽤 벌어들인 그는 서울 특급 주거지의 최고급 빌라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연이어 피부관리실 원장은 아파트에서 불이 났던 집이 인테리어를 어디에서 했는지, 며칠 전 경찰차가 왜 출동했는지 등등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속속들이 알려주었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상가 안쪽에 있는 허름한 간판의 피부관리실이 문전성시인 이유가 단지 피부 관리를 잘해서만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이웃 나라 대통령이 UN에서 한 연설보다 이웃집이 도둑맞은 사연을 더욱 궁금해한다. 하지만 ‘동네 일’이란 그저 풍문으로 돌아다닐 뿐 그 일에 대해서 정확하게 꿰차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동네 소식, 특히 사교육 정보에 정통한 사람을 시쳇말로 ‘돼지엄마’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아이들 학원 정보를 포함해 여러 가지 동네 일을 꿰뚫고 있어서 정보에 갈급한 학부모들을 줄줄 달고 다닌다. 대부분 엄마는 이 돼지엄마의 정보력 때문에 그 앞에만 가면 ‘을’이 되고 만다. 만약 돼지엄마 역할을 대신하는 우리 동네 <데일리 레코드>가 있다면 나는 당장 구독 신청을 할 것이다. <데일리 레코드>는 비록 던이라는 소도시를 독점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 공간 안에서만큼은 그 어떤 브랜드보다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모노폴리스트(Monopolist)는 어떤 재화를 공급해서 나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독점 자본가’를 일컫습니다. 석유 정제 시설을 독점하여 석유 유통을 지배했던 록펠러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반면에 ‘독점한다’는 형태는 같지만, 시장과 소비자의 고혈을 빨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니면 채워지지 않는 일을 함으로써 사회를 이롭게 하는 ‘긍정적 독점자’가 있습니다. 이를 모노폴리언(Monopolion)이라고 합니다. 그리스어에서 온 말인데, 우리말로 옮기면 ‘홀로 파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자, 지금부터 10회에 걸쳐 모노플리언이 되는 비법을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 연재 목차     

00. <당신은 유일한 존재입니까> 연재 예고
01. 난공불락의 성과 해자를 만들라.
02. 당신은 기린인가, 가젤인가?
03. 광야에서 성으로 돌아간 재규어
04. 저가항공사가 돈을 버는 비밀
05. 호주에서 망하던 스타벅스의 생존비결
06. 초대형 비행선 힌덴부르크 폭발 원인
07. 잉그리드 버그만을 울린 남자
08. 아마존이 오프라인 서점을 냈다고?
09. 페라리 디자이너는 개집도 디자인한다.
10. 실패하는 CEO의 7가지 습관




저자 | 이동철
   
저자는 증권사를 거쳐 삼성경제연구소까지 금융과 경제·경영 분야에 15년간 재직했다. 삼성경제연구소 SERICEO 전략사업그룹장을 역임하면서 SERICEO의 마케팅 및 전략기획을 총괄했다.
     
『월간중앙』, 기업은행 및 서울도시가스 사보, 연세대학교 상남경영원 등 주요 단체의 경영 칼럼니스트로 활동해왔으며, 삼성서울병원, 제일기획, 농수산무역대학, 경기대학교, 대한비과학회, 고려대학교 마케팅포럼 등 현장에서 강의해왔다. 삼성경제연구소 하이엔드마케팅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한 덩이 고기도 루이뷔통처럼 팔아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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