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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14. 2016

02. 당신은 기린인가, 가젤인가?

<당신은 유일한 존재입니까>

아프리카 초원에 얼룩말, 가젤, 영양 그리고 기린이 풀과 나뭇잎, 과일을 먹으며 평화롭게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얼룩말이 말했다. “이제는 잎과 과일이 예전만큼 많지가 않아.” 그제야 가젤과 영양도 그러한 사실을 깨닫고 서로의 얼굴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키 작은 세 동물 - 얼룩말, 가젤, 영양 - 은 일제히 기린을 바라보았다. 

   

  
자신들과 같이 낮은 곳의 잎과 열매를 따 먹던 기린이 씩 웃더니 목을 쭉 폈다. 말 그대로 목 빠지게 기린을 올려다보면서 세 동물은 깨달았다, 기린의 머리가 닿는 나무의 높은 곳에 새파란 녹음을 자랑하는 거대한 잎과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는 것을. 또 깨달았다, 그것은 오로지 기린만의 것임을. 초원에 가뭄이 닥치자 키 작은 세 동물은 모두 낮은 곳의 나뭇잎을 두고 아귀다툼을 하다가 속절없이 굶어 죽었다.
     
이 이야기는 생태학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노동경제학의 대부라고 일컬어지는 타일러 코헨의 비즈니스 생태계에 대한 충고다. 우리는 잘 몰랐다. 쉽게 얻을 수 있는 낮은 곳의 열매를 따 먹으면 오래지 않아 열매의 씨가 마른다는 것을, 그리고 나와 함께 사이좋게 열매를 따 먹던 친구 사이에 기린이 있다는 사실을, 그 기린은 다른 이들이 굶어 죽어갈 때 홀로 높은 나뭇가지의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는 긴 목을 가졌다는 것을. 타일러 코헨은 쉽게 얻을 수 있는 열매를 ‘낮은 곳의 과일’이라고 지칭한다. 그가 말한 ‘낮은 곳의 과일’이 무엇인지 조금 더 파고들어 가보자.
     
미국의 경우, 쉽게 취할 수 있는 ‘낮은 곳의 과일’은 3가지다. 무상으로 주어지다시피 한 광활한 토지, 가공할 기술 발전, 교육되지 않은 노동력. 원주민으로부터 빼앗은 토지에서는 무엇을 하든 돈으로 환산된다. 나무 한 그루를 심어도, 풀뿌리 하나를 캐도 돈이 된다. 먼저 시작한 사람이 차지하는 손쉬운 게임이다. 기술 발전도 마찬가지다. 어떤 기술을 개발하면 그것은 최초의 신기술이어서 제품에 적용하면 신세계를 보여주는 놀라운 제품이 나온다. 소비자들이 줄을 서서 지갑을 열어젖힌다.
     
교육되지 않은 노동력은 이후 놀라운 생산 증대의 원천이 되었다. 오로지 머리가 깨칠 때만을 기다리던 영특한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치고 학문의 둥지에 데려다 놓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 놀라운 인재로 거듭났다. 그들은 새로운 방법과 길을 찾아내어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성장시켰다. 
     
미국의 경우, 1900년대 초 취학아동 중 6.4%가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이들 중 2.5%가 대학에 갔다. 그런데 2000년대 초에는 10배가 넘는 60%가 고등학교에 가고 졸업생의 40%가 대학에 진학했다. 한국의 경우에는 식민지 상황을 거치는 동안 고등교육을 받은 인구 비율이 대단히 저조했지만, 1975년 20%였던 대학 진학률이 1980년에 34%를 넘어섰고 2000년대 이후에는 80% 선까지 치솟았다.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경제성장률 또한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었다.
     
미국 이외의 지역에는 또 하나의 과실이 있었다. 바로 ‘따라 하기’라는 이름의 과실이다. 신기술이 개발되고 새로운 제품이 생산되면 그대로 베끼거나 기술을 들여와 재빨리 제품화해서 파는 것이다. 이 쉽게 얻을 수 있는 과실의 혜택을 누리며 질주했던 나라들이 한국, 대만, 홍콩 등 소위 아시아의 용(龍)들이었다.
     
하지만 쉽게 취할 수 있는 과실의 이점을 누리던 시대는 지나갔다. 내가 키 작은 세 동물에 해당한다면, 점프력을 늘리든 바위 위에 올라서든 목을 억지로 늘리든 높은 곳의 열매를 독점적으로 얻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독보적인 우위를 가진 듯 보이는 기린도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동물원에서 기린은 가끔 벼락을 맞는다. 키가 가장 큰 개체이기 때문에 그만큼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런데 야생에서도 기린이 벼락을 맞을까? 이를 궁금하게 여긴 과학자들이 위성을 활용해 조사했고, 기린은 벼락이 내릴 큰 나무나 장소를 피해서 거주하기에 기린이 머무는 곳은 벼락이 칠 확률이 평균보다 훨씬 낮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또 기린이 주로 먹는 아카시아는 가시가 자라서 잎을 보호하기 때문에 이 가시를 걷어내기 위한 거친 혀를 갖게 되었다. 나만의 시장을 갖고도 기린은 더 잘 먹고 잘살기 위해 사는 곳을 고민하고 환경에 맞추어 몸을 바꾸어나간다.
     
도전에 응전하며 열매를 따서 생존을 이어가는 것은 자연에서도. 사람 사는 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용들은 이제 다시금 자신만의 시장을 찾아 떠나야 할 순간과 맞닥뜨렸다. 용의 뒤를 추격하고 있는 중국, 인도 등의 신흥국이라는 이무기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떠나고 싶지 않아도 떠나야 한다. 어디로 가야 할까? 바로 우리만의 독점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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