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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14. 2016

02. '이상한 고리'와 인공지능

<빅픽처 2017>

인간지능의 특징을 먼저 알아보자. 이를 위해 우리를 이끌어줄 첫 번째 책은 1979년 퓰리처상을 받은 더글라스 호프스태터의 《괴델, 에셔, 바흐》이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아버지로 둔 더글라스 호프스태터는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여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고체 물리 이론에서 ‘호프스태터 버터플라이’로 알려진 업적을 남겼다. 그의 관심사는 물리학 바깥으로도 매우 넓게 뻗어 나갔으며, 이는 음악・미술・수학을 아우르는 이 책에 매우 잘 나타나 있다.

     
《괴델, 에셔, 바흐》의 부제는 ‘영원한 황금 노끈’이다. 그는 수학자 쿠르트 괴델, 화가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작업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찾아 그 공통점에 숨어 있는 비밀이 매우 특별한 것임을 이야기한다. 그 공통점이란 바로 그가 ‘이상한 고리’라 부르는 것으로 세 사람의 작품을 통해 이를 알 수 있다.

그는 먼저 바흐의 ‘캐논’ 중에 무한히 상승하는 캐논을 예로 든다. 캐논이란 일종의 돌림노래로서, 같은 멜로디를 다른 성부가 시차를 두고 부르는 음악이다. 바흐는 〈음악의 헌정〉에서 무한히 상승하는 순환 고리를 가진 캐논을 사용한다. 이 캐논은 진행 중에 조바꿈이 일어나며 이를 반복하다 보면 다시 처음 시작했던 조로 돌아가게 된다. 호프스태터가 이 캐논에서 발견한 ‘이상한 고리’란 부분적으로는 한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를 이은 결과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에셔의 그림에서는 ‘이상한 고리’를 보다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에셔는 손을 그리는 손을 그린 〈손을 그리는 손〉과 유리 구슬을 든 손과 유리 구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 등 흥미로운 개념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유명한 화가이다. 그의 작품 〈폭포〉는 원근법을 이용해 부분적으로는 어색하지 않지만, 전체 그림에서는 물이 끝없이 아래로 흐르는 ‘이상한’ 그림이다. 〈폭포〉뿐 아니라 〈올라가기와 내려가기〉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견된다. 이 그림에도 역시 부분적으로 참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모순인 ‘이상한 고리’가 존재한다.

세 번째 인물이자 이 책이 가장 공들여 설명하는 수학자인 괴델은 ‘불완전성 정리’로 잘 알려져 있다. ‘한 체계 내에는 참이지만 증명 불가능한 명제가 존재한다’라는 내용의 정리이다. 이 정리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간단하게 말해보자면, 그의 정리는 러셀의 패러독스인 ‘자기 자신을 집합으로 가지지 않는 집합들의 집합’과 관련이 있다. 좀 더 쉬운 예로는 ‘크레타인은 모두 거짓말쟁이이다’, 또는 ‘이 명제는 거짓이다’와 같은 모순적인 명제가 있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하는 이유는 해당 명제가 바로 자기 자신을 지칭하기 때문이며, 부분적으로는 참이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모순이 일어나므로 다시 호프스태터의 ‘이상한 고리’가 된다.
     
이 ‘이상한 고리’와 인공지능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호프스태터는 위의 내용을 다 설명한 뒤, 마지막 장에서 인공지능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리고 컴퓨터가 지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지 묻는다. 물론 그의 대답은 긍정적이다. 이 책이 무려 40여 년 전에 나왔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가 과거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본 것은 인간을 너무 복잡한 존재로 생각한 탓도 있었다. 인간이 간단한 알고리즘에 따라 행동한다고 여기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호프스태터는 인간의 의식이 물리적인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인간의 마음과 같은 독특한 현상이 앞서 설명한 ‘이상한 고리’에 의한 것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상한 고리’는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는 재귀(Recursion)라고 부르기도 하며, 이렇게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방법을 통해 복잡하고 흥미로운 현상이 발생하는 예는 무수히 많다.
     
예를 들어 1970년, 수학자 존 콘웨이는 아주 간단한 규칙만으로 무한한 변주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인 ‘라이프 게임(Game of Life)’을 발표한다. 격자로 둘러싸인 각 칸은 아주 간단한 원칙에 의해 태어나고, 생존하고, 사망한다. 정사각형 격자에서 한 칸은 주위를 둘러싼 8개의 칸을 가진다. 한 칸의 생존과 사망을 결정하는 원칙은 다음 네 가지이다.


이렇게 간단한 원칙을 반복 적용함으로써 초기 상태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가 생성될 수 있음이 알려졌다. 어떤 형태는 소멸하며, 어떤 형태는 정적이며, 어떤 형태는 이동하고, 어떤 형태는 주기적으로 변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계속 만드는 초기 상태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글라이더’라는 이름의 패턴은 한쪽으로 날아가는 작은 글라이더를 무한히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매우 간단한 원칙이라 하더라도 재귀를 통해 충분히 복잡한 양태를 발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그 후로도 계속 인공지능에 관해 연구해온 호프스태터는 2014년 〈파퓰러 메카닉스(Popular Mechanics)〉와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 연구가 빅데이터와 딥러닝의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것에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며 의미심장한 지적을 남긴다. 그는 IBM 왓슨이나 구글의 기계 번역 등은 문제를 ‘이해’하지 않으므로 진정한 인공지능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지능의 수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예를 들었다.

아래 그림과 같은 블랙박스 모델을 보자. 이 블랙박스에 ABC를 집어넣자, ABD가 나왔다(①). 이 블랙박스에 PPQQRR을 집어넣으면 무엇이 나올까? 호프스태터는 이 질문에 내놓은 답의 수준에 따라 지능을 평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의 지능으로는 PPQQRR의 입력에 대해서도 ABD를 내놓으리라고 예측할 것이다(②). 곧, 이 지능 수준에서는 이 블랙박스가 ‘모든 입력에 대해 ABD를 출력한다’라고 추측한다. 그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에서는, 블랙박스가 ‘마지막 글자를 D로 바꾼다’라고 추측할 것이고, 따라서 그는 출력되는 값을 PPQQRD라고 말할 것이다(③). 그리고 호프스태터는 더 나은 수준의 지능이라면 블랙박스가 ‘연속된 세 글자가 들어왔을 때, 마지막 글자를 알파벳의 그다음 글자로 바꾼다’라고 추정할 것이며, 따라서 PPQQSS를 내놓을 것이라고 말한다(④).

매우 흥미로운 문제이다. 그리고 지능에는 수준이 있으며, 인간은 다수가 ④와 같이 추측해 답을 내놓을 것이라는 그의 지적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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