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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15. 2016

05. 사이코패스가 활용하는 마음의 맹점들

<내 옆에는 왜 양심 없는 사람들이 많을까>

콜라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코카콜라와 펩시에 대해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을 때 펩시의 맛을 더 선호한다는 결과가 나왔으나, 눈가리개를 벗기고 실험하자 코카콜라에 압도적인 선호도를 보였다. 포도주로도 실험해보았다. 싼 포도주와 비싼 포도주의 라벨을 바꿔서 붙였더니 비싼 라벨이 붙은 싸구려를 더 맛이 좋다고 평가했다. 포도주 전문가들에게 해봐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이들을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를 이용해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해 보니, 가격이 비싸거나 좋다고 생각했을 때 쾌감회로의 일부인 내측안와전두피질의 활성이 증가하였다. 가격이 높게 책정되었거나, 내가 좋아한다고 느끼는 것들을 볼 때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제품의 품질이나 본질보다는 내 기분이 좋아지는 방향으로 판단했다는 뜻이다. 왜 이럴까?
     
우리 뇌에는 고속도로가 여러 군데 나 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원시사회에서 생존에 유리하려면 어떤 현상을 보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행동하는 것이 유리하다. 얼룩덜룩한 기다란 것이 보이면 그것이 뭐건 간에 일단 튀어라. 뱀일 수 있으니깐. 우리 뇌는 이렇게 빠른 판단과 행동을 위해 군데군데 고속도로를 뚫어 놓았는데 이를 휴리스틱(Heuristic)이라고 부른다. 
     
한번 상상해 보자. 사이코패스이지만 그것을 숨기고 있는 그가 몸을 당신에게 약간 숙인 채 빤히 쳐다보며 부드럽게 말을 건넨다. 뭔가에 감전된 듯 몸이 굳고 가슴이 뛰는 느낌을 받으면서 ‘이게 뭐지? 내가 좋아하는 거야?’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이때 사이코패스는 결정타를 날린다. 나름대로 웃음을 유도하면서 슬쩍 당신의 팔을 만진다. ‘이건 또 뭐지? 기분이 좋아지잖아.’ 자, 이제 당신은 서로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고 믿게 된다. 그 정도로 그럴 리가 없다고? 맞다. 물론 지나친 추측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은 당장에는 넘어가지 않더라도 그에 대해 긍정적으로 편향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다음에 그가 작업을 걸어온다면 넘어갈 공산이 매우 크다.
     
신체적 접촉은 우리가 태어난 이후부터 성장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미숙아로 태어나 오랜 기간을 인큐베이터에서 지낸 아이들의 경우, 인큐베이터에서 하루 10분 이상 만져지거나 쓰다듬어진 아기들의 뇌가 그렇지 못한 아기들의 뇌에 비해 더 잘 발달한다. 우리가 생존하는 데 있어 기본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접촉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위의 사이코패스가 당신을 슬쩍 만졌을 때, ‘이 사람이 나를 이용하기 위해 접촉을 시도하는구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이런 종류의 접촉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의 데이터를 뒤져 비교한 후, 대부분 좋은 기분과 연결되어 있었다고 추정한다. 그렇다면 이제 ‘음. 이제 서로 좋아하기 시작하는 단계일 가능성이 커.’라고 판단할 것이다. 대표성 추론법이 효과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실험에서도 레스토랑에서 종업원들이 손님들에게 가벼운 신체적 접촉을 했을 때 팁이 훨씬 많아졌다. 주로 여종업원을 대상으로 했으므로 혹시 이성 간의 문제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신체접촉을 했을 때 더 많은 팁을 받아냈기 때문이다. 
     
호혜주의(Reciprocity) 역시 큰 역할을 한다. 이기적인 집단은 항상 멸종하고 상호 이타적인 집단은 계속 살아남아 우리까지 이어졌으므로, 이 역시 우리의 중요한 본능 중 하나이다. 그러나 호혜주의는 물질적인 것에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반응에 기반을 둔다. 즉 뭔가 고맙고 기분 좋은 것이 있다면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받은 따뜻한 손길 역시 뭔가 갚아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
     
공감제로들은 상대방의 호감을 얻기 위해 호혜주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앞에서 말한 사이코패스 A는 여자들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하는 행동이 과감하고 용의주도한 것만 다가 아니다. 그는 상대방을 웃게 하려고 재미있는 유머를 적은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외우다시피 한다. 그리고 영리한 머리를 이용하여 단지 웃긴 이야기를 해줄 뿐 아니라 자신의 상황에 적절하게 대입해서 유머를 구사하기도 한다. 상대방은 한 차례 웃고 나면 좋은 기분에 호혜주의 본능이 발동하여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훨씬 수월하게 반응한다. 또한, 웃는 상황에서 신체적 접촉까지 곁들이면 매우 치명적이며, 이후에 더 과감한 신체접촉에도 훨씬 너그러워진다. 
     
나이 든 부모님들이 단체로 어느 건물로 들어갔다가 모두 손에 물건들을 한두 꾸러미씩 들고나오는 광경을 한 번씩 볼 수 있다. 물론 선물을 들고나오는 것이 아니라 싸구려 물건을 비싸게 사서 사기를 당하고 나오는 중이다. 왜 이딴 물건을 샀느냐고 자식들이 아무리 다그쳐도 막상 그 자리에 가면 그게 쉽지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사기꾼들은 물건을 팔기 전에 온갖 즐거움을 준다. 웃겨 주고 노래를 율동과 함께 불러 주며 즐거울 일이 없는 노인들에게 모처럼 큰 기쁨을 가져다준다. 이제 호혜주의를 발동시킬 차례다. 싸구려 물건을 들이밀며 이게 얼마나 몸에 좋은지 설명을 하며 하나씩 쭉 나눠준다. 노인들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가격을 부르지만, 이걸 사지 않겠다고 다시 갖다 놓기가 힘들다. 결국, 한두 꾸러미 사서 나오게 된다. 그러나 결코 좋은 상품이라는 말에 속아서 산 것은 아니다. 노인들은 호혜주의 원칙에 의해 뭔가 보답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어떻게 해줬는데 이걸 안 살 수가 있냐는 무언의 압력은 노인들의 뇌를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든다. 
     
만약 공감제로가 사회적으로 인정해 주는 어떤 권위를 가지거나 선의를 가진 집단의 일원이라면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는데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게 된다. 박사, 의사, 변호사와 같은 전문집단의 지위를 준다면 권위에 복종하는 특성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쉽다. 그뿐만이 아니라 교육자나 종교인 그리고 시민단체와 복지단체의 일원이라고 하면 “저런 사람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어.”라고 생각한다. ‘저런 사람’이란 사회적 명망이 있고 늘 다른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그런 짓’이란 양심 있는 사람이라면 생각하기 힘든 행동을 뜻한다. 
     
그러나 공감제로들을 어떤 직업이나 소속 단체, 외모로 판단하는 일은 항상 실패하기 마련이다. 그러지 않을 직업이나 단체도 없으며 그런 짓을 하게 생긴 사람도 없다. 아! 내가 말했던가. 사이코패스 A는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을 다니려 했다. 물론 우리가 말려서 안 가기는 했지만 말이다. 자기 눈에는 종교가 누워서 떡 먹는 사업으로 보였다. 하지만 만약 그가 목사가 되었다면 다른 건 몰라도 사람들을 자신의 교회로 모으고 헌금을 잘 내도록 만드는 데는 성공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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