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by 황변

아무리 나쁜 놈이어도, 무죄 추정의 원칙은 적용된다.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기간은 6개월로 한정되어 있다.

즉, 검사가 공소를 제기한 날로부터 6개월 안에 1심 재판의 판결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은 구치소에 구속된 상태로 재판을 받던 형사사건 피고인이 재판을 받는 날이었다.

구속 기간 6개월이 거의 다 마무리되어가는 판이라서, 오늘 보석 허가를 해주실 것이 거의 확실했다.

아니나 다를까, 판사님은 피고인들을 풀어 주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이어가자면서 보석을 허가해 주셨다.

사실, 아주 솔직히 이야기하면, 그리 달갑지는 않다.

첫째로, 식당 주인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2시간째 밥을 먹는 손님을 달가워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로, 구속 사건이라면 숨가쁘게 달려온 만큼 얼른 끝내고 결과를 받아 보아야 다른 고객들을 유치해 올 틈이 생긴다.

둘째로, 판사님들의 인사이동은 대부분 1년에 한번씩 이루어지는데, 이렇게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이 이루어지면 재판은 전시를 방불케 하는 구속 사건에 비해 그 진행이 굉장히 늘어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지금까지 열심히 판사님에게 어필해 온 것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새 판사님께 판결을 받게 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물론, 새로 오시는 판사님도 기록을 열심히 보지만, 법정에서 말과 표정으로 어필해 온 것들까지 기록에 담길 수는 없기에 허망한 것은 매한가지다.

셋째로, 피고인과 그 가족의 입장에서도, 한 번 자유를 맛보았다가 다시 구치소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정말 힘들다. 6개월 간 구치소에서 견디는 것도 힘들지만,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판결이 선고되고 6개월 이상의 실형이 선고된다면 남은 형기를 마치러 그 지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있는 것은 변호인 뿐이기에, 변호사 입장에서도 더욱 부담이 된다.


오늘 내가 맡고 있는 사건의 구속 상태에 있던 피고인이 석방되었다.

판결이 진작 선고되었어야 하는 사건에서, 판사님이 궁금하신게 있다고 하며 변론을 재개한 사건이라 조금 더 입맛이 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피고인의 석방을 기다렸던 가족들이 (내 속도 모르고) 순진무구하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실형 선고를 피하기 쉽지 않은 사건이라, 부담이 정말 많이 되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구치소로 돌아가지 않게끔 열심히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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