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변호사의 역할

by 변호사 황재림

설 연휴 동안 집에서 푹 쉬면서 책도 많이 읽고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음력) 새해에는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써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고 있다. 그 중에서 쓸만한 놈들을 낚아채서 브런치에 풀어 놓는 것이 분명 의미가 있으리라.


오늘은 내가 생각하는 변호사의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일단 변호사를 두 가지로 분류를 해 본다. 사람들은 변호사는 만날 일이 없지만 의사는 만날 일이 많으므로, 의사와 비교를 해 보겠다. 의사는 로컬 병원 - 대학 병원 (정확하지는 않겠다) 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로컬 병원은 말 그대로 지역 사회에서 몸이 편찮은 분들을 살피고, 한정된 자원 안에서 처리 가능한 일인지 판단한 다음 처치를 하든지 /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상급 병원으로 올려 보낸다. 대학 병원은 그 올려보내진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한다.


변호사는 의사와는 생태계가 약간 다르다. 몇 가지 다른 점이 있겠지만, 소규모 법률사무소와 대형 로펌의 간극이 로컬 병원과 대학 병원만큼 크지 않다. 소규모 법률사무소가 할 수 없는 특수분야 M&A, 금융자문(이러한 특수분야들을 다루는 소형 사무실들도 존재하고, 이를 '부티끄펌'이라고 하기도 한다)를 제외하고는 소규모 법률사무소와 대형로펌의 업무영역은 매우 겹친다. 그러므로 변호사 황재림 법률사무소 VS 김앤장 법률사무소 사건이 얼마든지 존재한다. 이런 사건에서의 소규모 법률사무소와 대형로펌의 차이는 수임료(와 그에 수반되는 투입되는 인력의 양과 질, 축적된 노하우)의 차이일 뿐, 로컬 병원에서 '할 수 없어서' 올려보내는 것과는 질감이 조금 다르다. 조금 딥하게 들어가면, 의사들은 의료보험 제도로 강하게 보호받는 한편 의료소송의 리스크를 지기 때문에 굳이 자신이 리스크를 지고 환자를 처치할 필요성이 없으나 변호사들은 법률보험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찾아온 고객에게 '나 이거 할 줄 모르니 큰 로펌 가보쇼' 라고 이야기할 동기가 없다.




그렇다면 로컬 변호사로서 내가 생각하는 변호사의 역할은 뭘까, 곰곰히 생각해 봤다.


"소송해야 하는 사건은 소송하게끔 하고, 소송하지 말아야 할 사건은 소송하지 말게 하는 것"이다.




법률 상담을 10건 한다고 하면, 그 중 5건은 소송거리가 되지 않는 사건이다. 소가(다툼의 액수)가 너무 적거나,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거나, 소송을 해도 어차피 인용될 가능성이 거의 없거나 등등의 이유로. 그런데 당사자들은 그걸 잘 모르기 때문에, 저런 사건들도 얼마든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소송으로 비화시킬 수 있다. 내가 먹고살기 매우 힘든 지경이라면 어쩔 수 없이 마음 속 뾰족한 양심은 살짝 묻어 두고 소송해 보자고 부추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변호사들이 모두 이런 마음이라면, 세상은 정말 2배는 어지러워질 것이 분명하다. 아직까지는 변호사님들의 양심에 기대어서 사법 체계가 잘 운영되고 있는 형편으로 보인다. 그러나 변호사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변호사들의 생계가 위협받는 수준이 된다면, 변호사들의 사회적 의무가 지켜질 리 만무하다.


소송하지 말아야 할 사건들이 소송이 되는 순간, 당사자들의 인생은 정말이지 생각 이상으로 망가진다. 나는 앞으로도 대한민국 변호사의 본분을 최대한으로 지킬 것을 다짐하면서 설 명절을 마무리한다. 이제 업무의 세계로 풍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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