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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Aug 12. 2020

나는 왜 쓰는가.

그리고 무엇을 써야 하는가.

나는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이제부터 그 강박에 관하여서 탐구해 보려고 한다. 나는 왜 글을 써야 한다고 느낄까.


누군가 나에게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이것이 곧바로 강박이 외부적인 요인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다른 사람이 내 글을 칭찬하는 것에 대해서 환희에 가까운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쩌면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은,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꼬리를 잇는 질문은,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왜 하필 글인가 하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칭찬 중, 너는 글을 참 잘 쓴다는 말만큼 듣기 좋은 칭찬은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정도일 거다.


 첫째는, 글쓰는 능력 빼고는 남들에게 칭찬받을 만큼 특출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의 보편적인 칭찬은 주로 외모, 옷맵시, 몸매, 성격 등에 대한 것이고, 나는 그런 측면에서 칭찬받을 만한 우월함을 갖고 있지 않다. 내 외모는 어디 내놓아도 잘생겼다고는 결코 할 수 없고, 옷을 잘 입는 것도 아니며, 성격이 특별히 착하거나 엄청나게 성실하지도 않다.


내가 내놓을 수 있는 것은 그나마 '학업 성취도' 내지 '학벌'일텐데, 우리 사회(최소한 우리 세대)는 학벌을 엄청나게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누군가의 학벌에 대해 명시적으로 칭찬하는 것은 터부시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여서, 누군가 나에게 나의 학벌에 대하여서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다면 굉장히 불편할 것일 뿐더러 그것을 칭찬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다. 앗, 그러고 보니 칭찬은 듣는 사람이 '나는 이것에 대해서는 칭찬받을만 해' 라고 생각하고 있어야 칭찬으로서의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듯도 하다.


옆길로 샐 뻔 했지만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두번째 이유, 나는 글쓰는 능력이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에 관한 칭찬을 받으면 표정관리부터 실패하는 것이다. 반면 나는 외모, 몸매, 옷맵시 등이 내게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에 관한 칭찬을 들어도 시큰둥하다. 오히려 나는 저런 것들에 둔감하기 때문에, 굳이 외모를 가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그렇게 살다 보니 이런 칭찬을 들으려면 옷가게 피팅룸 거울 앞에 서는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나는 글은 그 쓰여짐과 동시에 쓴 사람을 표상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쓴 글은 곧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한 발 더 나가서, 글은 쓴 사람 자체보다 오히려 그 사람을 잘 보여준다. 사람들은 나를 볼 때 옷을 입은 탄소덩어리 물질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본인과 나 사이의 관계 본다. 그렇기 때문에 옷가게 주인은 나에게 어쩜 그리 잘 어울릴 수 있냐는 멘트를 날릴 수 있겠지. 그렇지만 글은 타이핑되는 순간 거기에 남아 있어서 글쓴이와는 오묘하게 분리된 형태로 독자와 상호작용한다. 독자는 글쓴이를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 글쓴이를 좋아하거나, 잘 보이고 싶다면 글을 좀 더 관심 있게 읽어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독자의 평가에 궁극적인 영향을 끼칠 수는 없다. 아무리 재미없고 매력없는 사람이라도 면전에서 고개를  돌릴 수는 없지만, 재미없는 글을 치워버리는 건 너무나 쉽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들었을 때 나는, 내 존재가 증명되고 쓰임새를 인정받은 것 같은 기분이다. (어설픈) 익명 테스트였는데도!


<책은 도끼다>라는 책이 있던가. 글을 쓰는 건 도끼를 벼리는 것과 같아서, 그렇게 유쾌한 작업은 아니며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세상에는 더 흥미롭고 자극적인 일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도끼처럼 글과 생각이 무디어지고 곰팡이가 스는 것은 순식간이다. 글은 이렇게나 중요한데, 쓰지 않으면 그걸 잃어버릴 것만 같다. 나는 그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것이다.


다음 편에는 글을 쓰는 것이 왜 어려운지에 대해 써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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