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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아도 나한테 사건 안 맡길듯

좌충우돌 변호사 생존기1

by 황변

간만에 여유있는 주말, 변호사로 일한 2달을 돌이켜 보기로 마음먹고 키보드 앞에 앉았다.


고용 변호사(대표 변호사 밑에서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변호사를 말한다. 업계 전문용어로는 '어쏘'변호사)

로 일하면서, 가장 날 괴롭혔던 것에 대해서 써 보려 한다.


"나 같아도 나한테 사건 안 맡기겠다"

라는 생각이 나를 제일 많이 괴롭혔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변호사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도 없는 것인가.




변호사는 본질적으로 '남의 일'을 해 주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그런데 변호사들의 '남의 일'은 간단히, 적당히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중대한 일들이다. 의뢰인들의 인생이 걸린 일이다. 이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변호사들은 사건 하나하나 피말리는 긴장과 불안에 시달리면서 사건을 처리한다. 제대로 된 변호사라면 절대로 사건을 '대충' 처리할 수는 없다.



나도 지금까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서 일했지만, 과연 '내 일처럼' 일했는가? 라고 누가 묻는다면 그렇다고,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는 어렵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대충 처리하지 않는 것'과 '내 일처럼 처리하는 것'은 정말 다르다.

그리고 고용 변호사가 배당된 사건을 '내 일처럼 처리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고용 변호사는 '남의 일'을 맡은 '남'의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뢰인은 대표 변호사에게 일을 맡기고, 대표 변호사는 고용변호사에게 다시 일을 맡긴다.

고용 변호사는 대표 변호사가 배당한 일을 '해내야' 하고, 그 배당은 끊임없이 몰려온다.

'월급 값'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고,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이다.


한 사건을 '내 일처럼' 처리하는 것은 '그저 해내는' 것과 비교했을 때, 개인차가 있겠지만 1.5배~2배의 품이 든다. 그러므로 한 사건을 '내 일처럼' 처리하면 한정된 시간 안에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고용 변호사에게 바로 영향이 간다. 그러면서도 사건을 처리하는 데 있어 자신의 직업양심상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모든 변호사들은 '내 일처럼' 사건을 처리하고 싶어하기에, 그 균형점을 찾기란 정말 어렵다.

송무 변호사들이 오래 일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지만, 이 두 가지 사건처리방식에서 나오는 괴리와 그 균형을 찾기가 어려운 이유가 가장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 해결책은 뭘까?




나는 얼른 '남의 일'을 하고 싶다. '남의 일'을 맡은 '남'의 일 말고. '남의 일'을 '내 일처럼' 하고 싶다.

내 사무실을 열어서, 온전히 나를 믿고 찾아온 의뢰인에게, 당신의 일을 '내 일처럼' '최선'을 다할 것임을 조금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고지하고, 실제로 이 사람을 위해서 '내 일처럼' 일하고 싶다.

그렇다면 정말 한 사건 한 사건 충만하게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스레 결과도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고의 결과가 나올 것이며, 만약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의뢰인과 하늘앞에 떳떳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치기 어린 생각일 수 있다. 생계에 치여 허덕이면서 의뢰인에게 최선을 다하리라는 초심을 잃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남은 내 인생 동안 가장 젊고 에너지가 넘칠 때, 얼른 내 사무실을 차려서 '남의 일'을 해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얼른 실력과 내공을 쌓아 단단해지고 싶다.


지금 내가 맡은 사건들을 '내 일처럼' 처리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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