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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May 05. 2023

20달러짜리 행운

68년생인 A는 엄청난 동안이었다. 우리 어머니와 동갑이어서 묘하게 정이 갔다. A는 샤브샤브 전문점을 운영하다가, 영업권을 B에게 넘겼는데 그걸 빌미로 샤브샤브 가맹본부에게 소송을 당했다. 영업 양도를 하기 위해서는 가맹본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걸 모르고 그냥 넘긴 거다.


A가 잘 납부해왔고, B가 가맹본부에 매달 납부해야 했던 로열티는 70만원. 이걸 B가 제때 잘 납부했으면 가맹본부도 굳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B는 영업양도를 받자마자 간판을 바꾸고 로열티를 지급하지 않기 시작했다. 가맹본부가 소송을 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샤브샤브 전문점에 손을 대기 전부터 지금까지도 강남에서 꽤나 이름 있는 호프집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A는 술집 사장님답지 않게 게 너무나도 순박했다. 가맹본부가 A를 상대로 무단영업양도 위약금, B를 상대로는 밀린 로열티 지급을 구하면서 시작된 이 단순한 소송은 2년을 족히 넘게 끌었는데, 수많은 변론기일 동안 B가 법정에 얼굴을 비친 횟수는 손에 꼽았다. 피고 둘 중 한 명이 코빼기도 안 비치니 소송이 원활하게 진행이 되지 않음은 당연한 순리였지만, 순박한 우리의 A는 처음부터 변호사를 선임해서 성실하게 가맹본부와 싸웠다.


A의 변호사로서 나는 A가 답답한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내가 보기에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은 100% B의 책임이었다. 그런데도 A는 끝까지 B를 탓하지 않았다. 재판에도 나오지 않고 배째라 식으로 나오는 간 큰 B를 두둔하기까지 했다. A를 위해서는 "이 모든 것은 B 때문이다. B에게 책임을 물으시오"라는 식의 전략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 설득을 해도 A는 요지부동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B가 안됐지 않느냐면서. 대체 뭐가 안됐는데?...




오늘은 2년을 끌어 온 사건이 드디어 끝난 날이었다. 이 사건은 아마도 기록적인 적자를 낸 사건으로 변호사업계에 길이 기록될 것이다. 착수금도 얼마 못 받은 사건인데 2년을 끌면서 변론기일만 10회 남짓. 이런 자선사업이 없다.

마지막 변론기일인 만큼, A에게 직접 나와서 판사님께 한 말씀 드리라고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법정 앞 복도에서 사시나무 떨듯 떠는 A의 핸드폰을 빼앗아서 "존경하는 판사님, 고생 많으십니다. 공정한 판결 부탁드립니다" 라며 메모를 남겼다. (삼성 키보드 '자동완성' 기능이 불편하다고 투덜대길래 기능도 꺼주었더니 A의 입이 벌어졌다. 판결이 나고도 그 표정이어야 할텐데...) 법정에서 A는 떠듬떠듬하는 듯 하더니 "존경하는 판사님, 고생 많으십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너무 괴로웠습니다. 공정한 판결 부탁드립니다."며 한 술 더 떴다. '얼레리?' 하면서 나는 얼른 마스크에 가려진 입꼬리를 늘어뜨렸다.


법원을 나서며 나는 아마도 평생 볼 일 없을 A에게 작별을 고했다. (판결문이 선고되는 날에는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A는 한사코 사무실까지 나를 데려다 준다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A는 코로나 시절 술집 경영이 어려울 때부터 개인 택시 영업을 시작했단다. 재판이 끝나고 의뢰인과 1시간 더 떠드는 것은 공짜 야근이나 다름없는 일이지만, 왜인지 모르게 나는 더는 거절하지 못하고 노란색 번호판의 EV6에 몸을 실을 수밖에 없었다.





A는 수다스러운 편이다. 적당히 대꾸만 해 주어도 아이 같은 얼굴로 변호사님은 참 친절하다며 생글생글 웃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곧 내 사무실을 차릴 거라고 하니 A는 또 예의 부산을 떨면서, 지갑을 뒤적이더니 20달러짜리 지폐를 꺼냈다. 이게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지폐란다. 조카들 나누어 주고 하나 남았다면서.



내가 알기로 행운의 지폐는 2달러짜리다. 천진한 A에게 차마 그 얘기는 하지 못했다. "액수가 너무 큰 거 아닙니까. 요새 환율을 잘 모르시나보네. 3만원인데요." 라고 괜히 마음에도 없는 어깃장만 놓았다.




어린이날 연휴 전날 서울의 교통체증은 내 무상 야근을 예상보다 30분 연장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나는 하나도 그것이 고깝지가 않았다. 아마도 평생 볼일이 없을, 아니 나를 평생 안 보아야 행복할 A의 마지막 뒷모습을 마음속에 새기면서 나는 사무실로 다시 빨려들어갔다. 아마 난생 처음 보는 20달러짜리 지폐는 오래오래 쓰지 못할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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