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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May 20. 2023

아버지가 남겨 둔 하나의 채팅방

민수 씨의 아버지는 3년 전에 급작스레 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3년 간의 투병 생활은 어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흘러갔습니다. 아버지는 세상을 등졌습니다.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여서 황망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래도, 투병 생활이 길었기에 버틸 수는 있었습니다. 예감된 슬픔은 때로는 견딜만 합니다. 


오랜 투병 생활을 거치며 아버지는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휴대폰의 잠금 역시 풀려 있었습니다. 무심코 카카오톡을 열어 본 민수 씨는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대부분의 카카오톡 채팅방이 정리되어 있었지만, A라는 남자와의 채팅방은 남아 있었습니다. 민수 씨는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이었습니다. 




홀린 듯 채팅방을 클릭했습니다. '이게 뭐지?' 평생 농사만 지으시던 아버지와 A의 채팅방에는 영어와 숫자가 빼곡히 적힌 거래내역 같은 것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찬찬히 살펴보니,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A를 통해서 XX넷 이라는 업체에 투자를 한 것 같았습니다. XX넷은 가상화폐를 기반으로 해서, 일정한 '광고팩' 을 구매하고 광고를 시청하면 원금 보장은 물론이고 지속적인 수익을 보장해 준다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물론 사기였지요. 아무 의미도 없는 광고는 광고비도 받지 않고그저 투자자들에게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민수씨의 아버지는 첫 몇달 동안 '수익금' 이랍시고 100만원씩 보내 주는 XX넷에 속아 총 2억 가까이를 투자하였습니다. 처음에는 5백만원, 그 다음에는 1천5백만원, 그 다음에는 5천, 마지막으로는 1억... 


홀린 듯이 1억을 송금하고 난 다음 달부터, 귀신같이 수익금 정산이 딱 끊긴 것은 예정된 비극이었습니다. 그마저도 휴대폰이 익숙하지 않은 아버지는 정산을 부탁하는 카카오톡을 두 번 남긴 것이 항의의 끝으로 보였습니다. 아버지가 암 판정을 받은 시기가 겹친다는 점이 민수 씨는 믿을 수가 없었고 사무치게 아팠습니다. 




고민 끝에 민수 씨는 변호사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평생 소송, 고소 같은 것은 모르고 살아온 민수 씨였지만 A를 찾아내서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 아버지가 카카오톡 방을 남겨 놓은 뜻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였을 겁니다. 


A의 죄는 형법상 사기 및 '유사수신행위'(원금을 보장하면서 불특정 다수에게 투자를 받는 행위)에 해당됩니다. 사기꾼들이 으레 그렇듯,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재산을 모두 숨겨놓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최소한의 죗값을 받게 하는 것이 민수 씨의 자식된 도리, 그리고 저의 변호사의 사명이라는 생각이지 않을까 합니다.


민수 씨의 마지막 효도는 복수극으로 막을 올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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