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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Apr 18. 2023

오늘도 한 쌍의 부부를 이혼시켰다.

오늘은 아침부터 잿빛 하늘에 비가 왔다. 오늘도 한 쌍의 부부를 이혼시키러 차를 몰았다.  


나는 이혼 사건을 좋아한다. 이혼 사건에서는 사람 냄새가 진하게 난다. 한 쌍의 부부가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타의긴 하지만) 관찰하다 보면 인생이 참 덧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을 위해서 남녀는 만나고 헤어지는가. 어차피 헤어질 것이라면 이들은 왜 이렇게 만났고 왜 이렇게 싸우는가. 


의뢰인은 남성이고, 이미 한 번 혼인하였다가 이혼한 적이 있었다. 오늘자로 전처가 된 부인은 중국인. 결혼한 기간이 얼마 되지 않고 양측 모두 재산이 많지 않아서 재산분할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우리가 먼저 이혼 소장을 접수하고, 상대방도 반소로 이혼을 청구해서 조정절차에 들어갔다.


이혼소송은 거의 대부분 법정으로 바로 가지 않고 조정을 거친다. 법정으로 바로 가는 이혼 소송은 별로 없다. 당사자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치기만 하면 바로 권총이나 회칼을 꺼내들 정도로 감정이 상해 있지 않는 한 조정실에서 서로 얼굴을 보고 대화로 풀어 봐라- 라는 것이 현재 가정법원의 태도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타당한 태도라고 본다. 기본적으로 법정에서 판결을 받아 보기 위해서는 최대 1년 정도는 걸린다. 조정은 그 날 바로 마무리된다. 서로 얼마간 손해보더라도, 조정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1년 동안 고통받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3월 초에 열렸던 1회 조정기일에서는 상대방 분이 나오시지 않았다. 이혼 조정기일에는 당사자의 출석이 강하게 권장된다. 조정으로 얼른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으시다면 꼭 나가자. 변호사들끼리 나와서는 조정이 성립하기가 어렵다. 재산분할이니 위자료니 상세하게 정해야 할 것이 많은데, 그걸 일일히 전화해서 물어보고 있어서는 될 일도 안된다. 1회 조정기일엔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오늘 2회 조정기일에서, 우리는 일정액의 위자료를 지급하겠다고 제시하였고, 상대방은 더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와 의뢰인은 사전에 1000만원까지만 주자- 라고 입을 맞춰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상대방은 3000만원에서 요지부동이었다. 조정위원이 아무리 설득하려고 해도 2000까지밖에 내려오지 않았다. 거의 사딸라급. 사실 내가 판단하기에 이 사건은 본 소송으로 가면 위자료 자체가 아예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의뢰인을 돌아보며 - '재판 가시죠' 라고 이야기했다. 


그 순간, 전혀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2000으로 하시죠." 


나는 '작전타임'을 요청하고 진짜 그 돈 주실 수 있냐고 물었다. 의뢰인은 결혼생활 및 이혼 과정, 관련되어 엮여 있는 형사절차 등에서 너무 고통받은 나머지 상대방과 같이 있는 조정절차에서의 상황에 너무 지쳐 버린 나머지 그런 선택을 한 것이다. 의뢰인이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면, 변호사로서는 존중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의뢰인의 입장에서도 재판으로 옮겨가고 1년 넘게 시달리면서 추가적으로 형사고소를 당할 생각을 한다면 1천만원을 더 지출하는 것이 그렇게 불합리한 선택은 아니다. 


후부터는 일사천리였다. 나는 사건 마무리했다는 홀가분함과, 2000을 사건은 절대 아닌데... 라는 안타까움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조정조서에 사인했다. 


오늘도 한 부부를 이혼시켰다. 장장 2시간 넘게 걸린 조정절차를 마치고 나오니 거짓말처럼 비가 개고 파란 하늘이 우리를 반겼다. "앞으로는 행복한 일만 있을 것이라는 뜻 같네요" "그런가요 변호사님" 허허로운 농담을 하면서 xx지방법원의 비탈길을 우리는 걸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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