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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Apr 09. 2023

세상에서 가장 농도가 진한 직업

 변호사는 농도가 진한 직업이다. 마음이 편한 날은 없다. 


의뢰인을 처음 만나는 날에는 첫 소개팅을 앞둔 새내기 대학생처럼 설레면서도 걱정스럽다.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의뢰인들의 전화를 받을 때면 내가 콜센터 직원인가 싶어 힘들다. 

두꺼운 기록들을 밤새 검토하면서 피곤한 눈을 비빌 때는 육체노동도 이것보단 덜 힘들까 싶은 오만한 생각이 든다. 

공들인 사건의 판결이 선고될 때, 전자소송 페이지의 새로고침을 누르는 순간에는 대학 입학 결과 확인창을 새로고침하는 고3으로 돌아간다. 

좋은 결과를 전하고, 의뢰인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때는 세상에, 이런 기쁨이 또 있을까 생각할 정도로 행복하다. 나는 아직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았지만, 아이가 주는 기쁨이 이것보다 크다면 나는 기꺼이 아이를 몇 명이라도 낳고 싶다.


 



가맹본부들은 무작정 가맹점을 늘리기만 하면 리스크가 제로인 불로소득을 늘릴 수 있으니, 가맹을 문의하는 가맹점희망자들에게는 기대매출이나 수익에 관하여서 허위, 과장 광고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다행히 가맹사업법이 이러한 행위를 꽤나 강하게 규제하고 있다. 만약 가맹계약 과정에서 가맹본부 직원(임원이나 사장이 아니어도 된다)이 예상되는 매출액을 구두 또는 서면으로 보장하는 듯한 언행을 한다면 이를 꼭 녹음해 두어야 한다. 이에 현저히 못 미치는 매출액을 올린 경우에는 소송을 제기해서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다. 


이름만 대면 들어봤을, 꽤나 유명한 디저트 업종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에 제기된 소송 몇 건을 대리하고 있는데, 최근 그 결과가 나왔다. 우리가 입증하고자 했던 1) 연매출이 10억이라고 홍보한 곳이 가맹점이 아니라 직영점이었다는 점, 2) 월매출 3000은 나올 것이라고 꼬셨으나 3000은커녕 2000도 안 나온 달이 더 많았다는 점, 3) 인테리어 공사를 할 자격이 없으면서도 본사에서 직접 인테리어공사를 해서 차익금을 챙겼다는 점 이 모두 인정되는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아쉬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장한 손해액 중 50%만이 인정되었다는 것이다. 법원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액'을 산정할 때 법관의 재량으로 손해액을 깎을 수 있다. 1) 코로나의 영향으로 매출이 적었을 수 있으며 2) 기본적으로는 가맹점주의 책임과 리스크를 부인할 수는 없다는 점을 들었다. 




사실 확정과 법리에 관하여서는 모두 이겼으니, 변호사로서는 100% 승소다. 그러나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받을 줄 알았던 돈을 50%밖에 받지 못하였으니, 승소하였다는 기분은 덜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50% 승소하는 경우에는 변호사비용 등 소송비용을 돌려받지도 못한다. (절반만 이겼다는 것이니 그렇다) 


그런 기분을 잘 알기 때문에, 판결문을 보내 드리고 이내 걸려온 전화를 약간은 찝찝한 기분으로 받았다. 왜 이것밖에 못 받았냐고 하면 뭐라고 이야기하지 시나리오를 여러 번 굴려가면서. 그런데 왠걸, 의뢰인분은 고생하셨다며,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이야기해주시는 것 아닌가.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어떻게 이야기하는지도 모르고 전화를 했다. 판결문을 받는다고 바로 입금이 띡 들어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돈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논의했던 기억이다. 


전화를 끊고,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생각하면서 벅차오르는 마음을 만끽했다. 이렇게나 다른 사람의 삶에 깊숙히 개입하고 그 사람에게 거대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이 또 있을까. 변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게 해 준 모든 것들에 감사한 하루였다. 앞으로도 평생 변호사라는 업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다가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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