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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Mar 18. 2023

재판이라는 2인 3각 경기

나는 의뢰인과 같이 재판에 출정하는 것을 즐긴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그렇지 않다. 재판에 굳이 오겠다고 하는 의뢰인은 변호사들 사이에서 '진상'으로 통한다.) 특히 양측의 주장이 거의 끝나갈 때쯤인 '변론 종결' 즈음 마지막 변론기일에는 꼭 한 번 오시라고 권한다.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제발) 소송이신데, 법정에서 말 한 마디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혼자 외로이 싸우는 법정보다 의뢰인이 지켜보는 법정이 더 힘이 나고 즐겁다. 사람 냄새가 나서 보람차고 행복하다. 이게 내가 하고 싶었던 변호사 일이라는 것에 확신이 더해진다.


재판에 출석해도 되냐고, 출석하는 것이 더 유리하냐고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의뢰인들에게 "오셔도, 안 오셔도 좋지만 판사님 앞에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면 보통 속 시원해 하시더라" 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거의 대부분의 의뢰인들이 법정에 오신다. 




재판이 시작하기 전에 법정 앞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무슨 말 하고 싶으신지 한 번 해 보시라"고 시키고, 아주 잘 하신다고, 당신이 변호사 하시라고 칭찬해 드리는 순간이 좋다. 다만, 판사님들은 길게 중언부언 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니, 하고 싶은 얘기 30초만 하시라고 코치해 드린다. 


복도에서는 오바마 뺨치는 달변가시던 의뢰인들이, 하나같이 난생 처음인 법정, 높은 법대 위에 앉아 계시는 판사님 앞에서는 그만 말더듬이가 되고 마는 광경을 나는 근엄한 표정으로 즐긴다. 우리가 정에 호소해야 할 때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판사님과 의뢰인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판사님 표정을 살피기도 한다. 의뢰인이 일어나 떠듬떠듬 이야기할 때면 혹시 실언을 하지는 않을까, 너무 길어지면 안 되는데 하면서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보는 엄마처럼 두근대는 마음 역시 항상 새롭다. 


무엇보다 나를 힘나게 하는 것은 재판이 끝나고 의뢰인이 커피 한 잔 사드리겠다고, 식사는 하셨냐고 손을 잡아끌 때다. 보통 식사는 거절하고 커피는 한 잔 얻어 마신다. 나는 그냥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의뢰인들은 보통 너무나도 고마워한다. 나에게 특히 고마워하는 부분은 내가 그네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포인트인 듯 하다. 


"많은 변호사님들이 너무 바빠서 자신들이 전화하면 귀찮은 티를 내고, 앙칼진 목소리를 내어서 의뢰인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는데 당신은 그렇지 않아서 너무 기뻤다, 그래서 내가 변호사님 얼굴 한 번 보려고 오늘 시간을 내서 법정에 한 번 왔더니 아니나 다를까 키도 크고 훈남이셔서 오길 잘했다, 결혼은 했느냐 ..."


개소리는 바로 컷이야!


잠시 정신을 잃었다 다시 쓴다. 물론 결과만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승패가 갈리는 법정이지만, 그 이전에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으로서 의뢰인의 말에 귀기울일 의무가 있다. 물론 변호사의 말에 귀기울이는 의뢰인들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 변호사는 수십명의 의뢰인과 동시에 맞짱을 뜨고 있기 때문에많은 변호사들이 의뢰인의 앞뒤 맞지 않는 논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나도 경험 없던 시절에는 그랬었다.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되어 부모님의 잔소리처럼 아예 듣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의외로, 듣다 보면 꽉 막혀 있던 것처럼 보이던 변론의 길이 보일 때가 나는 꽤나 많았다. 이런 경험을 몇 번 하고 나서부터는 신기하게도 의뢰인과의 통화가 기대되고 재밌어졌다. 최대한 찬찬히 중립적인 입장에서 의뢰인의 주장하소연을 들어 본다. 의뢰인도 한 바탕 나한테 얘기하고 나면 화도 가라앉고, 자신의 주장에 대해서 한 번 더 되돌아보게 된다. 그 때부터 다시, 발을 묶고 한 걸음씩 나가보는 거다. 





의뢰인과 변호사만큼 2인3각 경기와 비슷한 것이 또 있을까. 한 명만 잘나서도 안되고, 욕심을 부려서도 안되고 파트너를 미워해서나 못 믿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삐그덕대는. 


변호사와 의뢰인 멸망편.jpg


그런데 상담부터 판결 선고까지 이어지는 긴 시간 동안 발에 수건을 묶은 이 가냘픈 2인조의 팀워크가 유지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이유는 여러 가지 있다.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착수금을 한 번 받으면 수령이 불투명한 성공보수만 믿고 열과 성을 다 해야 하는데 이게 정말 쉽지 않으며, 지나치게 오래 걸리는 우리나라의 재판 구조, 일단 한 번 변호사를 선임했으면 변호사의 조언 및 요청에는 귀를 기울여야 하는데 대부분의 의뢰인들이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점 등등.


여러분의 2인 3각 경기, 어차피 한 번은 해야 하는 것이라면, 마음에 맞는 파트너를 찾아 부디 행운이 깃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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