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변 Feb 12. 2023

사무실 없는 변호사를 꿈꿉니다

나는 '사무실 없는 사무실'을 꿈꾼다. 요즘 세상에 그렇게 운영하는 사무실이 얼마나 많은데 새삼 꿈까지 꾸느냐 하면, 나는 변호사이기 때문이다.


변호사에게, 사무실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존재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니, 사무실은 없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고 까지 생각한다. 




사무실이 없어도 되는 이유


1. 민사소송은 전자화가 완료되어서, 모든 절차를 인터넷으로 할 수 있다.


변호사의 주 일거리는 소송인데, 그 중 민사소송은 모든 절차를 인터넷으로 할 수 있다. 나머지 반쪽인 형사소송 역시, 방대한 기록의 출력, 복사 등을 도와줄 '직원'이 필요한 것이지 '사무실'이 필요한 이유는 되지 않는다. 변호사의 몸이 움직여야 하는 경우는 재판에 출석하는 때일 뿐이다. 


2. 어차피 변호사는 전국을 돌아다닌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법원 앞에 사무실을 낸다. 그러나 그 변호사들이 해당 법원의 사건만 맡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사건이 가장 많은 서울중앙지법(2,3호선 교대역)에 사무실을 내더라도 어차피 서울 전역, 아니 전국 팔도가 변호사의 무대이다. 고객들은 법원 앞에 있다는 이유로 변호사를 찾아오지 않는다. 설령 그렇더라도 그 앞에는 이미 변호사가 너무 많아 나한테 올 리가 없다. 그러니 변호사는 법원 앞에 있을 필요가 없다. 


3. 변호사의 일은 두 가지이다 - 상담과 서면작성. 사무실이 필요한가?


변호사는 신규고객, 기존고객의 법률적인 문제를 귀담아 듣고 이를 토대로 솔루션을 제공하는 일을 한다. 또 만약 그 해결방법이 소송이라면 소송을 제기하고, 해당 소송에서 승소하기 위한 서면을 작성한다. 그런데 이 일들이 꼭 '내 사무실' 이 있어야 할 논리적 필연성은 없다. 


서면작성이야 당연히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것이고, 문제는 상담일 것이다. 코딱지만한 사무실의 변호사가 직접 타 준 커피를 마시면서 그 변호사에게 인생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노리는 고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믿어 줄 고객이다. 나는 내 사무실을 보고 나를 믿어 주는 사람보다는, 나를 있는 그대로 믿어 줄 고객을 위해서 내 시간과 전문지식을 쓰고 싶다. 


무슨 연애소설이냐고? 소송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의뢰인과 변호사의 관계는 놀랍도록 연애의 그것과 유사하다. 서로를 조금이라도 못 믿기 시작하면 그 관계는 돌이키기 어렵다. 생각보다 많은 변호사가 사건에서 사임해 버린다. '환승이별'도 잦다.



대안 오피스


그렇다면 대안은 뭘까? 대안 오피스의 종류는 워낙 많아서, 내 형편에 가장 잘 맞는 것을 선택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이 중에서도 배리에이션이 많아서, 입맛대로 고를 수 있다. 


1. 공유오피스 

공유오피스도 정말 여러 가지다. 대개 월 50만원 정도의 비용. 일단 나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변호사들을 위한 변호사 전용 공유오피스가 있다. 당연히(?) 법원 근처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나는 법원 앞에 사무실을 내기 싫기 때문에, 배제. 일반 스타트업들이 들어가는 공유오피스에 들어가면, 시너지도 나고 좋지 않을까? 한 가지 고민은 그래도 상담을 하려면 최소한의 회의실이 필요할텐데, 이게 갖춰져 있는 공유오피스는 드물 듯 하다. 


2. 주소 대여 서비스

주소만 빌려 주는 서비스가 있더라. 월 4만~5만원 정도의 가격에 우편 사서함처럼 주소만 빌릴 수 있다. 사업자 등록, 변호사협회 등록, 명함 기재 등에 집주소를 쓰기 싫은 경우에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다. 지금으로선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개업 초기에 선택하기에 나쁘지 않은 듯 하다. 단점은 변호사 사무실은 우편 송달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걸 처리하기가 어렵다는 점. (이는 공유오피스도 내 소속 직원분이 없으면 똑같이 적용되는 단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사무실이 없는 게 나은 이유


사무실이 없어도 그만인 이유는 알겠지만, 사무실이 없는 게 더 낫다는 것까지 설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나야 그렇다 쳐도 나를 찾아온 고객들이 이를 납득해야 할 것이다. 기왕이면 사무실이 있는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고 싶지 않겠는가!


1. 비용 문제


변호사의 가장 큰 장점은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직원을 고용하지 않은 변호사가 지출하는 고정비용은 임대료가 전부다. 그러니 이 임대료를 극한까지 낮추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것이 내 문제의식이다. 


변호사들끼리 경쟁하느라 쓸데없이 지출하는 임대료, 인테리어비용, 광고비 등은 고스란히 전혀 이와 상관없는 소비자인 고객들에게 전가된다. 본전은 뽑아야 할 것 아닌가. 나는 비용을 최소화함으로써, 시가와 같거나 낮은 비용으로 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델을 구상한다. 


2. 비용 문제와 직결되는, 변호사의 마음가짐 문제


단순히 많이 남겨먹고 싶어서 비용을 줄이고 싶은 거라면 이렇게 당당하게 글을 쓰지도 못했을 것이다. 변호사는 자신의 체력, 시간, 정신력을 팔아먹는 업이다. 그래서 장사가 잘 되면 잘 될수록 한 사건에 들이는 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나는 그러한 상황을 최대한 만들고 싶지 않다. 나를 찾아온 고객들, 나를 믿어 주는 고객들에게는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주고 싶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수임을 많이 하면 된다. (...) 역설적이지만, 진실이다. 


그런데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많을수록, 그것만큼의, 아니 최소한 2배의 매출을 올려야 한다. 예를 들어서 월 300만원의 고정 비용을 세팅해 놓은 변호사는, 월 최소 300만원의 매출은 올려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그런데 이 압박은 실존적이다. 거대하다. 시시각각 조여오는 그 압박에 변호사는 자신도 모르게 수임료를 낮춰서 부르게 되고, 다행히(!) 사건이 많아진다. 한 번 많아진 사건은 좀처럼 종결되지 않고 변호사를 포위한다. 점점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게 된다. 고객들은 only one 이 아닌, one of them이 된다. 


3. 법률사무소 유비쿼터스(?)


사무실에 매여 있지 않은 변호사는 어디든 다닐 수 있다. 의뢰인이 바빠 시간이 없다면 찾아가서 상담할 수도 있다. 상담료 받아내기 어렵다는 것이 변호사업계에서의 오랜 화두인데, 설마 하니 변호사가 직접 가서 상담을 하는데 거마비를 얹어주진 못할 망정 상담료를 안 줄까. 


AI니 chatGPT니 하면서, 변호사가 대체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완전히 대체되지는 않더라도, 변호사업은 앞으로 많은 도전에 직면할 것임이 분명하다. 사무실을 다이어트한 몸과 마음이 날렵한 변호사는, 어떤 큰 파도가 덮치더라도 요리조리 블루오션을 찾아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에 공감하고 진정성을 믿어 주는 의뢰인들이 있다면, 행복하게 일할 수 있으리라. 

앞으로도 쭉 계속될 사무실 없는 변호사의 도전을 응원해 주시길!!










매거진의 이전글 블루칼라 변호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