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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영 Oct 30. 2022

나이 든 노동자의 삶의 이유

독서교실에 새로운 설비가 들어오는 날, 아침 일찍부터 기사님 세분이 오셨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부터 젊은 기사님까지.


그 중 가장 나이 들어 보이지만 실력에서는 베테랑으로 보이는 한 분이 독서교실을 쓱 훑어보시더니 말씀을 꺼내셨다.


"우리 애들은 아빠가 돈을 못벌어서 복지관(지역아동센터)밖에 못 다녔소.  글도 잘커서 서울로 대학 갔소"


자식이 잘 큰 부모는 굳이 묻지 않아도 자식 자랑을 하고 싶어 한다는 그 마음을 충분히 알기에 맞장구를 쳐드렸다.

"아 그래요. 기특하네요. 뿌듯하시겠어요."


부모가 경제적으로 충분하지 못했고, 육체노동으로 바쁘고 힘들었을테지만 잘 자란 아이들이 자랑스럽다는 그 분의 표정이 참 밝고 행복하게 보였다. 그리고 한마디 더~

 내가 그 맛에 일하요~

이 한마디가 귀로 들리는게 아니라 가슴에 쿵하고 와서 박혔다.


설비 공사를 하는 내내 옆에서  그 분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여유있게 광주 사투리를 섞어가면서 척척 호흡도 맞춰가면서 어찌나 즐겁게 일을 하시던지~

순박한 노동자들의  건실한 노동의 가치가 반짝반짝 거렸다.


내 부모도 그랬고, 부모가 된 나도 그렇고, 우리는 그렇게 부모가 되면

꼭 먹고 살기 위해서만 혹은 책임감만으로 을 하는 것은 아니구나.


조금 부족한듯 보이겠지만, 그래도 부모가 성실하게 이렇게 일을 하면 자식이 성실하게 성장을 하는구나.

성실한 부모를 생각하며 자식은 성실하게 공부할 것이고,

또 그렇게 잘 큰 자식을 생각하며 뿌듯한  부모는 머리가 하얗게 샐때까지 노동의 현장을 떠나지 않는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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