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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영 Nov 08. 2021

친구의 무게

-소싯적 친구에게 받은 상처

  결혼을 앞둔 시점이었다. 친한 친구 몇 명을 만나고 헤어져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끝까지 남아 있었던 한 친구가 나의 배웅을 가장 오랫동안 지켜주는 의리를 보였다. 그러나 그 의리는 결국 한마디로 본색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헤어지려는 찰나 버스정류장에서 그 친구가 나에게 했던 말


  "솔직히 네가 조건이 좋은 건 아니잖아."


 그 당시 그 말은 너무 충격이 컸기에 그 말 앞뒤에 그 친구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이 말이 커다란 망치가 되어 내 가슴을 후려쳤고 나는 남친(현재의 남편)에게 달려가 펑펑 울며 "친구라는 애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나는  지방의 소도시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었던 남자 친구와 결혼을 준비 중이었다. 공립학교 교사 임용에 낙방을 하고 입시강사 생활을 하고 있었던 나는 꽤 인기있는 강사였다. 그러나 늘 안정적인 공립학교 교사 생활을 꿈꿔 왔기 때문인지 입시강사 생활은 나에게 불안정하고 힘든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늘 내 옆에서 버팀목처럼 있어주던 남친이 4시간 거리의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다 보니 남친을 만나는 일도 한 달에 한번이나 가능했다. 엄마는 남친이 안정적인 공무원이고 오래 연애도 했으니 결혼해서 거기 가서 사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했다.  힘든 입시 강사 생활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과 임용시험에 대한 미련이 있던 나는 적당한 핑계거리와 도피처로 결혼을 선택했다.

    

    그 때 당시는 요즘 못지않게  안정적인 공무원과 교사임용 시험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경쟁은 치열했다. 주변에 내 친구들은 시험에 합격하고 난 후에  인간답게 살리라 다짐하며 연애도 안하는 친구들이 많았다(아니 못한건가? 합격을 해서도 장기간 솔로인 상태였으니 못했다고 해야 맞을 것도 같다).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시험에  떨어져  어쩔 수 없이 불안정한 일을 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게다가 내가 결혼을 해서 남편의 근무지로 가게 된다면 나는 한동안 무직 상태일 것이니 더더욱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런 내가 주변의 친구들이 가장 선호하는 안정적인 공무원에다가,  너무나 상태(외모상태)  괜찮은 남자와 결혼을 한다 하니  내가 어떻게 보였을까?


 자격 미달의 아이가 자기 파이를  빼앗아가는 기분이라도 들었던 것일까?



   

   내가 대학원을 다니던 중 마지막 학기에 운명처럼(?) 만난 나의 남친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전에서  10개월 정도 연구소 생활을 하면서 방황을 했다. 그러던 중  힘들고 불안한 연구원 생활보다는  장기적으로 볼 때 박봉이어도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는게 낫겠다고 선언하더니 정말 6개월 만에 시험에 합격을 해버렸다. 그 당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친구들 보다도 먼저 큰 낙방 없이 합격을 해버린 케이스였다. 연애도 포기하고 공부에만 매진하며  겨우 겨우  합격해야 할 것 같은 시험을 공무원에는 관심도 없던 나의 남친이 어느 날 갑자기 합격했다 했을 때  '운이 좋네'라는 한마디로 싹 정리해버리기도 했던 그 때 그 친구 아이.




     소싯적 나와 친구였던 그 아이, 그 때는 팔짱도 끼고  같이 쇼핑도 하고, 울고 웃으며 고민을 나누기도 했던 사이였다.  그런데  의도적이었는지 실수였는지 모르겠으나 그 아이가  뱉어낸 그 말이 그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그 친구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친구'라는 관계를 명언 속에 등장하는 관계처럼  매우 무겁게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친구는 나의 기쁨을 배로 하고, 슬픔을 반으로 한다"는 키케로의 명언같은 .....

  그때의 그 말-"네가 조건이 좋은 건 아니잖아?"-을  지금 다시 듣는다면 이제는  하하하 웃으며 넘길 것도 같다. "그치~ 내가 뭐 볼게 있냐. 나 같은 애 구해준 남친이 대단해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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