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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영 Nov 22. 2021

엄마! 쪽지도 해주세요

나에게서 내 엄마가 보인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부터, 정확하게는 큰 아이가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된 여섯 살즈음부터로 기억된다. 나는 아이들을 두고 멀리 교육을 받으러 가야 한다거나 아이들과 함께 아침을 맞이 할 수 없는 상황에는 쪽지를  써놓고 나오곤 했다.  쪽지를 쓰기 시작했던 것은 아이들에 대한 엄마로서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고 했던 작은 행위(?)였다.

    특히 5년째 주말 수업을 하면서부터는 토요일 오전은  일찍 출근을 한다. 두 딸은 그 사이 자랐고,  초등고학년이 된 후부터 '불금'을 알게 되어 금요일밤엔  늦게까지 TV도 보고 게임도 하고 실컷 놀다가 자느라 토요일 아침에 엄마가 아침 일찍 나가는 것을 보기 힘들다. 그러면 나는 식탁에 몇가지 반찬을 준비해 놓고 숟가락 젓가락에 밥그릇까지 세팅해 놓고 나간다. 그리고 한켠에 꼭 쪽지를 써놓고 나간다.

  

   이번주 토요일은 남편도 바쁜 일이 있어서 일찍 나가고, 큰 딸은 학교에서 일정이 있어서 토요일 하루를 학교에서 보내야 한다고 했다. 초등4학년 작은 딸만 늦잠을 자고 일어나 혼자 집에 있을 걸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다행히 작은 딸은 걱정하지 말라며 충분히 잘 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

  아침에 세 사람이 나가려고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는지  다른 토요일보다 일찍 눈뜬 작은 딸이 자기방 문을 열고 부시시하게 나왔다. 잠이 깬 거 같지 않아서 얼른 들어가서 더 자라고 말했더니 작은 아이가 하는 말

  

"엄마! 쪽지도 해주세요."


'아차! 오늘은 계란말이 예쁘게 말아서 접시에 담느라 쪽지를 깜빡했는데~~', 솔직하게 말을 못하고


"응! 알았어. 수원아! 엄마가 쪽지 해줄게~"

하고 얼른 짧게라도 몇글자 적어서 식탁에 붙여놓고 나왔다.


그러고 나오니 왠지 미안한 마음이 조금 덜어진다.




   내가 어릴 적 학교에서 돌아오면  우리 엄마도 나에게 쪽지를 남겨놓고 일터에 나가곤 했었다. 특별한 말이나 닭살스러운 사랑의 표현은 없었다. (그 시대에 우리 부모들은 그랬다. 자식들에게 덤덤했고 그냥 성실하게 일만 했다. ) 엄마가 일하러 가고 없으니 학교 다녀왔으면 밥상 위에 몇가지 간식(삶은 고구마 같은 것들로 기억됨) 간단히 챙겨먹고 동생이랑  재밌게 놀고 있어라 정도였다. 숙제를 하라거나 공부를 하러거나 이런 말이 쓰여 있지도 않았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나는 것은 늘 쪽지의 첫 머리에 "진영아~" 라고 시작했다는 것(동생 이름은 없었다)과 엄마의 손글씨가 너무 예뻤다는 것이다. 엄마는 많이 배운 사람도 아닌데도 필체가 아주  멋있었고, 늘 뭔가를 써주던 분이었다.(여담이지만, 큰오빠는 군대에 갔을 때 엄마가 보내준 편지 속 엄마 글씨체가 너무 멋있어서 동기들에게 자랑을 했다고 했을 정도였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잊고 있었다. 어린 시절 나의 엄마가  나에게 늘 쪽지를 남겨주던 것도, 엄마의 글씨체도..


  늘 바빴던 우리 엄마도 자식을 두고 일터로만 향했던 자신의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그렇게 쪽지를 쓰셨나보다.  그 쪽지 덕분에 나는 학교에 다녀와서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숙제도 하고 책도 읽고 동생이랑 사이좋게 놀며 큰 탈 없이 자랐나보다.

 그리고 엄마가 된 나도 이렇게 쪽지를 쓰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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