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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영 Nov 23. 2021

나를 위한 저녁을 차리기로 했다.

   맞벌이 부부로 살면서 남편에게 화가 나는 순간들을 나열하라고 한다면 100가지도 더 댈 수 있을 거 같다. (아기가 어려서 아직 맞벌이가 아니라고 해도 아내가  하루 종일 육아를 하는 경우도 맞벌이와 같은 경우라고 생각). 그걸로만 책을 써도 한권은 나오지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오늘은 한가지만  써보려 한다. 한가지도 너무 길어질까봐 걱정이긴 하다.


   무엇보다 화가 나는 순간은 부부가 비슷한 시간에  퇴근을 해서 집에  들어와도 두 사람 사이에 너무나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나(아내)는 옷도 제대로 못 갈아 입은 채 일단 가방은 소파에 대충 던져놓고 밥통에 밥부터 확인하고 얼른 쌀을 씻어 밥통에 넣고 취사버튼을 누른 후 약간의 시간을 번다. 그리고 나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주방으로 간다.  냉장고를 열어 퇴근하는 차안에서 미리 정해 놓은 저녁 메뉴를 생각하며 식재료를 꺼낸다.

    

  오늘 내가 정한 메뉴는 알배추닭가슴살롤과 무생채무침, 훈제오리


   알배추를 먼저 꺼내서 얼른 물에 씻고 찜솥에 살짝 쪄준다. 그리고 냉동실에서 닮가슴살(양념되어 익은)을 꺼내서 살짝 대친 배추에 말아준다.  알배추가 살짝 쪄지는 동안, 닮가슴살이 해동되는 동안, 빠른 손놀림으로 무생채를 뚝딱 무쳐 낸다. 닮가슴살과 배추를 돌돌 말아서 담아주고 얼른 양념소스도 준비한다.~ 아이들은 배추를 안좋아하니 훈제오리 살짝 스팀해서 머스타드 준비해서 먹게 해준다~. 이렇게 하는데 1시간도 채 안걸린다.


 아주 신속하게 그러면서도 깔끔하게 차려내려 애를 쓴다.



   집에 들어오자 마자 1시간도 안되는 시간 안에 이렇게 저녁을 차려내는 동안 남편은 아주 느릿느릿 옷을 갈아입고 소파나 혹은 자기만의 의자에 앉아서 핸드폰을 하면서 아주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대부분 그날의 정치 뉴스나 스포츠 뉴스를 읽는다.  그리고 아주 여유있게 샤워까지 마친다. 그리고 다 세팅된 식탁에 아주 또 느린 동작으로 앉는다.


  이런 남편의 모습을 보고 있을라치면 남편의 뒤통수를 한대 때려주고 싶은 날도 있고, 한마디 해주고 싶은 날도 있다.


 "혼자만 일하고 왔어? 나도 지금 일하고 왔거든? 뭐라도 하지?"

 


 그런데 오늘 나는 룰루랄라다~~~

그건 다름 아닌 남의편님을 위해서도 아니고 내 자식을 위해서도 아니고 그냥 나! 나를 위해서 내가 먹고 싶은 대로 내가 차리고 싶은 데로 차렸기 때문이다.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면 본능적으로 가족을 위한 희생 정신이  생겨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의 남편님을 위해 자식들을 위해 일을 하고 돌아와서도 아무리 피곤해도 풍성한 상차림을 문제없이 잘 차려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불가능했고, 그것이 남편과의 원활한 분업이 되지 못하거나 나를 위한 그분(남편)의 배려나 희생이 느껴지지 않을 때는 더더구나 억울하고 화가 나고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는거니라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 마음이  짜증으로 표출되는 날에는 눈치라고는 1도 없는 남편님과 다툼이 되기도 했고, 치사하게 그걸 내 입으로 말을 꼭 해야 하나 싶고 그랬다. 요즘 사람이라면서 옛날 우리 아빠와 1도 다를게 없는 그의 모습에 여자의 생이 처량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나를 위해 저녁을 차리기로 했다. 나를 위한 메뉴와 나를 위한 접시로 나를 위해 예쁘게 차려볼 생각이다. 저녁메뉴의 첫번째는 내가 먹고 싶은 거, 그 다음은 아이들이 먹을 거, 그리고 남편은 그 다음으로~ 이제 나도 그렇게 살아도 되겠다 싶다.


나는  내가 아껴주고 챙겨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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