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별하면 덜 아플까?
-아이들과 덜 아프게 이별하고 싶다.
대학 1학년 2학기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때였다. 공강 시간에 동아리방에 앉아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동방 문을 열고 한 남자 아이가 들어오는데 그 아이의 뒤편으로 후광이 비췄다. 드라마에서 첫눈에 반하는 사람이 등장할 때의 장면처럼 말이다. 그래 넌 내가 찜했어! 나도 다슬이처럼 사랑을 할거야~
대학에 입학하고 학기 초에 나는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토론을 벌이는 학술동아리에 들어 갔다. 그때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시간을 거슬러 추측해 보건데, 사춘기 감성충만했던 중3 시절 장동건과 심은하가 나와서 엄청난 히트였던 드라마 '마지막 승부'에 열광했다. 그때 심은하는 정말 예뻤고 청순했다. 나는 꼭 대학생이 되어 꼭 한쪽에 책을 들고(가방에 다 들어갈 수 있어도 다 넣으면 안됨! 꼭 한쪽에 책이나 파일을 앉고 다니는게 포인트!) 캠퍼스를 누리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장동건 같은 잘생기고 멋진 남친을 사귀리라~~~~
94년 MBC드라마 '마지막 승부'의 한 장면 대학을 가는 이유가 장래에 어떤 무엇이 되고 싶어서 인 것도 있었겠지만 스무 살이 되는 시점에 나는 '마지막 승부' 속 ' 다슬이(심은하)'처럼 되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다슬이가 한쪽에 들고 있던 그 책! 때문에 나는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토론을 벌이는 학술 동아리에 들어 가버렸다(포인트 잘못 잡음). 책을 들고 다니는 그럴싸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 그런데 동아리에 들어가서 만난 선배들에게 학술 동아리의 실체는 '술을 배우는 동아리'라는 진담 섞인 농담을 들으며 나는 열심히 술을 배웠다. 다슬이처럼 청순하게(아니 청순해 보이고 싶게) 매주 책을 한권 들고는 다닌 것도 같은데 책을 읽었다거나 토론을 했다는 기억보다 술을 마신 기억이 더 많다. 왜? 그곳엔 장동건이 없었으니 말이다. 장동건을 만나려면 농구 동아리에 들었어야 했을까? 뭐 여튼간에. 동아리에서 만나는 많은 남자 선배나 동기들은 '패션 테러리스트 책벌레' 아니면 '술꾼' 두 부류만 있었다. 그런 그곳에 나타난 그 아이! 드디어 장동건이 나타난 것이다.
나의 짝사랑은 시작되었다. 내가 만약 심은하였다면 '마지막 승부' 20부작 정도는 찍어줬겠지만, 내 눈에 장동건인 그 아이에게 나는 심은하가 아니었던 관계로 짝사랑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으로 동아리 동기 남자 아이의 능숙한 오작교 역할을 통해 커플로 성사는 되었다. 아싸~~~
그러나 그 때의 나는 모든게 어리고 서툴렀던 거 같다. 커플이 되면 어떻게 하는 건지도 잘 몰랐던 거 같다. 내가 먼저 시작한 사랑이라 내가 더 좋아하는게 누가 봐도 느껴지는데 자존심은 있어 가지고 티는 내기 싫고 줄다리기만 열심히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울 방학이 되었다. 각자의 고향으로 내려간 우리는 만나기가 쉽지 않았고, 연락은 뜸해졌다. SNS도 없던 시절이라 전화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사는지도 잘 모르고 그냥 자연스럽게 소원해진 것다.
긴 겨울 방학을 보내고 2학년 1학기가 되어서 그 아이는 군대에 간다는 소식과 함께 군대에 가버렸고 자연스럽게 이별을 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군대에 가고 나서 내가 느낀 감정은 자연스럽지 못했다. 누가 먼저 좋아했든 사귀기로 했으니 동아리 커플이었던 것도 맞는데, 뭐 그냥 흐지부지 무슨 절차도 뭐도 없고 그냥 그렇게 군대간다는 말만 남기고 가버리나 싶었다.
그때의 나는 결심했다. 내가 먼저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으리라, 내가 먼저 꽂히는 사랑에 빠지지 않으리라. 헤어질 때는 내가 먼저 이별을 선언하리라! 그러면 아프지도 않고 내 자존심이 지켜지겠지?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나는 원숙해졌고 스무 살의 그때와 많이 다르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힘든 건 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대가 갑작스럽게 선언하는 이별을 맞이해야 할 때이다. '독서교실'이라는 사교육의 현장에서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헤어지기도 한다. 아이들과의 관계를 시작하게 해주는 오작교는 '엄마'들이다. '엄마'의 오작교 역할은 시작할 때는 중요하겠지만 그 다음의 시간과 의미는 그 아이와 내가 만들어 간다.
특히 '책'을 매개로 아이들을 만나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수업을 한다는 것은 지식을 전달하는 일과는 또 다른 면이 많다. 아이들의 감정으로 깊이 들어가는 순간도 많고,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신뢰를 쌓아가게 된다.( 아이들 하나 하나의 감정과 느낌을 소중하게 다뤄야 하는 가치있는 일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그런데 그 관계를 끝내야 할 때가 온다. 우리의 수업이 다른 학원 시간표와 겹친다거나(특히 영어, 수학), 특목고를 준비하기 위해 빡세게 학원스케줄을 돌려야 한다거나, 더 좋은 학원을 발견했다거나, 엄마가 이제 픽업하는 게 좀 지친다거나 등등
사교육에서 이별의 주도권은 엄마가 쥐고 있는데, 주도권을 진 엄마의 스타일에 따라 나는 마음이 오래 아프기도 하고 좀 덜 아프기도 하다. 미리 계획을 세워서 스케줄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전화를 걸어 의논을 해주는 경우는 덜 아프다. 아이를 못만나게 되면 서운하겠지만 그래도 서로의 미래를 잘 응원하고 기분 좋은 이별을 할 수 가 있다. 그런데 수업을 와야 하는 날 아이를 안보내고 문자 한통으로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도 없이 그냥 '이제 못가요~' 해버릴 때의 황당함이란, 갑자기 군대에 가버렸던 스무살의 첫 남친 아이에게 느꼈던 그때 감정처럼 황당하기만 하고 아프다.
내가 더 많이 좋아해서 아픈건가?
조금만 좋아했다면 덜 아플까?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하면 덜 아플까?
어떻게 이별하면 덜 아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