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요. 주완이가 선생님 이야기를 자꾸 하네요. 선생님한테 역사 공부 하면 역사도 잘 할거 같다고 하고, 선생님이랑 공부할 때가 제일 좋았었다고 그러네요"
"어머나~ 감사해라~, 주완이가 그래요? 저를 좋게 기억해줘서 기분이 좋네요"
주완이는 초등 4학년 가을쯤 나와 만나서 중학교 1학년 초반까지 2년 반 정도의 시간을 만났던 아이였다.
주완이 엄마는 남다른 교육열로 집이 담양이지만 주완이를 광주에 괜찮다고 하는 학교와 학원을 수소문해서 보내고 있었다. 그런 주완이 엄마의 레이더망에 우리 독서교실도 포착이 되어 주완이가 독서교실에 오게 되었다. 주완이는 또래 아이들보다도 책을 굉장히 좋아하고 잘 읽어내는 아이였다. 책을 읽고 난 후에도 나와 깊은 대화가 잘 되곤 했었다. 또 역사에 관심도가 매우 높은 아이였다. 그렇게 2년 반을 만나면서 나는 주완이와 책수업도 좋았고 역사 수업도 참 좋았었다.
그런 주완이에게 일이 하나 터졌다. 어느 날 영어학원 앞에서 아이가 주저앉으며 울음을 터트려 버린 것이다. 도저히 힘들어서 못가겠다고.. 주완이 엄마는 주완이와 깊은 대화를 나누었고, 결국 학교는 담양 집 근처에 있는 학교로 전학, 학원도 모두 중단. 그렇게 아이는 담양과 광주를 오가는 생활을 정리하였다.
그 사건으로 독서교실과 주완이와의 만남도 정리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2년 쯤 흐른 시점, 2021년 올해 봄 다시 전화가 온 것이다.
어느새 주완이는 중3, 고입을 생각하는 학년이 되었고, 사춘기라는 간판을 달고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었다. 외모적으로도 주완이는 더이상 또래보다 키 작은 아이가 아니었다. 이제는 청년티가 나게 키가 훌쩍 컸고, 변성기를 지나 굵직한 목소리까지 가진 중3 오빠였다.
"주완아! 잘 지냈어? 키가 많이 컸네~ 못알아보겠다~. 어떻게 선생님이 생각이 났을까~~"
"^^(별말 없이 씩~)"
초등 학생일 때는 재잘재잘 잘 떠들던 아이들도 중학생이 되면서는 말이 없어지는 경우가 참 많은데, 주완이도 다시 왔을땐 그랬다. 그리고 2년 만에 만났는데 어제 만난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말이 나올리가 없으니 그냥 웃지요~겠지..
그렇게 주완이는 초등학교때 같은 팀이었던 아이들과 다시 재회를 했다. 주완이가 초등학교때 같은 팀으로 수업하던 친구들은 아직도 남아서 5년째 수업 중이었고, 비어있던 주완이 자리에 주완이가 그대로 들어온 것이었다. 주완이는 금방 초등학교때 친구들과 적응했고, 나와도 편하게 수업을 진행해나갔다.
1학기 중간고사 때 우리는 한달을 열심히 시험공부에 매진했다(과거 나의 전공과 사탐강사 경험을 발휘해서 시험기간엔 아이들 시험공부에도 도움을 주는 독서교실이다). 시험 결과는 100점인 아이도 있고, 90, 70점도 있지만~ 모두 각자의 노력과 고생을 칭찬하며 어느 토요일 오후 우리는 고기파티를 했다.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목살과 삼겹살을 두둑히 사서 아이들과 배터지게 먹었다. 그날 고기를 구워먹으며 요즘 고민, 생각들을 함께 나누었다. 그러던 중 주완이가
"차라리 엄마랑 남이면 좋겠어요"
"왜? 그런 생각이 들어?"
"아니~ 자기가 고등학교 가는 것도 아닌데, 맨날 "OO고(담양에 있는 서울대 입학비율이 높은 기숙형 고등학교)" 가려면 공부해야 한다고 하면서 잔소리만 해요~"
주완이의 엄마는 주완이가 경찰대학을 가거나 아니면 한전에 들어갈 수 있는 공대쪽으로 진학 하는 것을 꿈으로 가지고 계신다. 그래서 늘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주완이 엄마의 생각을 엿듣다 보면 25년 전 내가 중학교 다닐때 우리세대 부모님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솔직히 거의 똑같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는데.... 엄마들의 생각이 크게 달라진게 없구나.. 옛날에 우리가 대학 가던 시절처럼 한전같은 공기업에 취직이 잘되는 공과 대학을 진학하고, 안정적인 경찰공무원이 되는 경찰대학을 강요, 갈망하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2021년의 중학생도 나때와 똑같이 부모로부터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다니 놀랍기까지 하다.
주완이는 굉장히 문과적인 아이이고, 책을 좋아하는 아이여서 책을 많이 읽은 티가 나는 아이다. 자기가 읽은 책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쓴다면 참 잘 쓸 아이라는게 눈에 보인다. 그리고 누구보다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는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인문학 감성이 가득한 청소년이다. 그런 아이라는 걸 엄마도 일면 알고 계시기에 우리 독서교실에 보낸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면 엄마가 아들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닌데 아이에게는 1990년대 스타일로 진로를 정하라고 하고 그 진로에 맞춰서 공부하라고 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나의 짧은 소견을 발휘해서 주안이에게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떤 일이 되었든 그 일을 하게 되면서 자기만의 직업관이 확실해지고 가치관이 세워진다면 충분히 글로 그것을 담아서 내놓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 작가의 문턱이 과거처럼 높은 것도 아니니 너가 관심을 가져볼 만도 하다. 이런 이야기를 주완이에게 들려주면 주완이뿐만이 아니라 진로에 대한 고민과 부담이 많은 중3아이들은 나를 반짝반짝한 눈으로 쳐다본다.
"주완아! 이제는 문이과 통합이 된 시대인데 남자니까 꼭 이과를 가서 공대를 가고 한전에 취업한다는 것은 솔직히 너무나 촌스러운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어. 엄마가 말씀하시는 내용들을 보면 물론 자식을 걱정하고 자식이 좋은 길로 가기를 바람이 크다는 건 쌤도 알아. 하지만 요즘은 옛날처럼 그런 성공의 길이 정해진 시대가 아니야. 그러니 너가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잘 아는게 중요하단다. 엄마가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씀이 잔소리로 들리는 것도 알아. 그런데 엄마의 잔소리 때문에 억지로 공부할 게 아니라. 너 스스로 너의 인생을 위해 지금 너에게 주어진 학업이라는 과업를 열심히 해보고 성실하게 노력해보면 꼭 좋은 성적이 아니어도 뭔가를 해내는 힘이 생기도 할거야. 그러면 그 힘으로 어떤 일을 하든 잘 해내는 사람되기도 하더라. 그러니 공부하기 싫다고만 짜증내지 말고~ 너의 그 좋은 머리로 조금만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아. 너의 인생을 위해.."
무난하게 이름난 대학의 공대를 다닌 후에 한전에 취업하는 것이 나쁜 건 아니다.(아주 안정적이고 좋은 길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정해지는 진로가 아이가 원해서 정해진 진로가 아니라는 것과 만약 그 것 하나만 바라보고 아이가 성장을 했는데, 한전에 취업이 안된다고 할 경우 아이는 자신이 인생의 실패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공립학교 교사만이 인생의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자랐던 내가 임용고시에 떨어졌을 때처럼 말이다). 세상에 수없이 많은 길이 있고 수없이 많은 직업이 있으며 그 많은 것들을 살면서 다 해볼 수도 있는 시대가 지금이니 아이에게 딱 정해진 하나의 직업만을 강요하듯 이야기하는 것은 위험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에게 바뀐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키워주고, 바뀐 세상 속에서 자신이 관심갖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씩 대화를 해보고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
주완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를 왜 '차라리 남이면 좋겠다'고 했을지 한번쯤 우리 부모들은 돌아볼 일이다. 지금 우리 부모들은 분명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데, 자신이 자랄 때 습득했던 1990년대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2000년대 초반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아이에게 강요하고 있진 않은지 말이다. 그리고, 내가 자랄 때 그런 부모들의 강요가 과연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한번만 돌아본다면 지금 아이게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라는 잔소리는 쏙 들어가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