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준이는 독서교실의 단골 지각생이다. 지난 주에는 15분, 어떤 날은 25분. 독서수업에 오기 전 다녀와야 하는 수학 학원에서 오늘도 늦게 끝나버렸다. 선생님이 늦게 끝내줘버리니 어린 아이가 다음 수업이 있다고 강하게 말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늦어버리기 쉽상이다.
"수학 선생님께 말씀드려 희준아~ 일주일에 한번 있는 독서 수업인데, 늦게 가면 못듣는 이야기도 많고, 시간 맞춰서 가고 싶다고."
나는 늘 그렇게 희준이에게 이야기 했다. 수학만큼이나 독서도 소중하고, 독서 선생님과 그룹 친구들과의 수업도 약속인데 시간을 자꾸 어기는 것은 좀 별로인 것 같다고 선생님께 정중하게 말씀드려고 보라고,
그러기를 수차례.. 그런데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3년째 희준이는 '프로지각러'가 되어 가고 있다.
어제는 희준이가 몹시 씩씩거리며 또 지각을 했다. 화가 많이 난 모양이다.
"희준아, 왜 그래? 무슨일 있었어?"
"선생님! 수학선생님이 그러는데요, 수학 선생님은 2시간씩이나 수업을 해주고 어떤 날은 3시간도 해주는데, 1시간 하는 독서수업이 더 좋냐고 그래요~. 왜 자꾸 수학은 안하고 독서수업에 가려고 하냐고 그래요."
"허걱(당황스러움)"
희준이는 무서운 수학선생님에게 어렵게 다음 수업 시간에 맞춰서 가야 하니 문제를 다 못 풀었지만 좀 보내달라고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그리고 다 못 푼 문제들은 집에 가서 풀어오겠다고 용기내어 말씀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희준이에게 돌아온 답은 " 수학이 중요해? 독서가 중요해?" " 수학이 좋아? 독서가 좋아?" 였다는 것이다.
수학선생님이 그렇게 말씀 하시는데 너무 화가 났다고 했다(희준이는 독서와 역사를 참 좋아하는아이라 독서교실에 가는 것이 큰 즐거움인 아이다), 뭘 고르라는 건지 이해도 안됐고 자기는 독서에 가고 싶은데 맨날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는게 너무 속상하다고 했다.
분명 아이가 수학학원에 간 이유는 부족한 수학 공부에 도움을 받거나 세상 어렵다고 하는 수학 과목에 미리 대비를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물론 수학학원 등록은 본인의 의지라기 보다는 엄마의 의지가 95프로 이상 반영되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희준이는 자꾸만 수학학원에 남겨지면서 오히려 자기는 수학을 못하는 아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고 했다. 못하니까 자꾸 남은 아이라는 것이다. 수학학원에 가서 수학을 잘하게 되었다거나 수학을 잘하는 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 보다는 오히려 희준이는 수포자 정체성을 형성해가고 있는 듯 하여 몹시 안타까웠다.
요즘 수학 학원들은 초등 고학년이라면 1년 이상의 선행은 기본으로 돌리고 하루에 문제지 4장은 기본으로 풀어오게 숙제를 내준다. 말이 쉬워 4장이지 초등생에게 4장은 여덟 페이지인데, 그걸 다 풀어 가려면 아이는 1시간 이상은 기본으로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한다. 수학만 한다면 모를까.. 그 아이에게는 영어학원숙제도 있고 다른 학원들 숙제는 물론이거니와 독서까지 해야하니 숙제가 태산이다.
예전, 15년 전 쯤까지는 동네에 '국영수과사' 다섯 과목을 함께 해결할 수 있던 종합학원들이 많았다. 원장 한 명에 과목별 선생님들이 한 두명씩 있는 구조라, 그 학원에 등록하면 그래도 중요과목 5개는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형태였다.
그런데 2000년 중반을 기점으로 영어전문학원, 수학전문학원, 국어전문학원 등 전문학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고학력자가 많고 취업도 어려운 시기에 전공을 살려 교습소나 전문학원 형태로 분리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대졸자, 그 이상의 고학력자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수입원이 되고 있는 학원 사업이지만, 그렇게 과목별로 분리된 전문학원 난립의 피해자(?)는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이다.
가뜩이나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이랑 놀지도 쉬지도 못하고 학원에 가서 살야하는 것도 힘든데, 이제는 과목별로 다 나누어져 있어서 아이는 영어가 끝나면 수학으로 수학이 끝나면 과학으로 그렇게 학원순례를 해야한다. 하루에 2~3개 과목 정도의 전문학원들을 돌면 초등학생에게 오후 시간은 굉장히 빠듯하고 굉장히 피곤한 일이다.
거기에다 아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희준이의 경우처럼 과목별 선생님이 세상에는 자기 과목만 존재하는 냥, 그 과목이 제일 중요하니 그것만 잘해도 된다고 이야기하고 숙제를 왕창 내준다는 것이다. 수학학원에 가면 수학이 제일 중요하고, 영어학원에 가면 영어가 제일 중요하고.. 뭐 그런 식이다. 아이에게 이 선생님은 이게 중요하다. 저 선생님은 저게 중요하다. 도대체 그 과목이 무엇때문에 가장 중요하다는 건지 이유도 잘 말해주지 않으면서 자기 과목만 일단 엄청나게 시키고 압박해서 좋은 점수만 얻게 해주려 하는 경우가 많다.
성장기 아이가 영양을 골고루 섭취해서 균형있는 신체 발달을 해야 하듯이 학습에서도 다양한 과목들을 공부하는 이유가 분명이 있을 것인데, 한 과목만 지나치게 강조하고 다른 과목은 무시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은 그 아이의 학습이 균형있게 발달하는데 오히려 안좋은 영향을 주는 건 아닐까?
학원 선생님들이 내 과목만 중요하다고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학원이라는 공간을 빌려 '아이들를 만나는 일'은 나의 성과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아이의 성장'을 위해서라는 마음이 먼저였으면 좋겠다.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성장기에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욕심으로 선생님 과목이 제일 중요하니 이것만 해도 된다라는 강요아닌 강요를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크는 아이들이니 그 아이가 시간을 균형있게 사용할 줄 알도록 가르치고, 약속을 잘 지키며 관계의 신뢰를 무너뜨리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도왔으면 좋겠다(자기 과목 문제풀이만 남아서 하느라고 다음 스케줄은 그냥 무시해도 되는 아이로 만들지 않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