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머리가 뻗치면 위험한 이유
네이비색 가죽소파.
꼬깃꼬깃 노란 잠옷.
거기에 다리 꼬고 발을 까딱까딱.
그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면.
한 번은 노란 잠옷 입고 누워있는 모습이 흡사 치즈 버거에 들어있는 치즈 같아서 몰카를 찍어 가족 단톡방에 뿌려본 적도 있다.
가족들은 사진이 뭐가 문제인 줄도 모르고 햄버거 신상품인 줄 알고 배달시켜 달라고 하더라. 그만큼 이질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사진.
어쨌든, 그런 그녀가 오늘도 치즈 버거의 모습으로 나를 부른다. 여전히 네이비색 소파에서, 다리 꼬고 시건방진 모습으로.
"여보! 여보! 이것 봐봐. 대박이야."
못 들은 척. 나는 지금 독서에 집중하고 있다. 집중력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 다시 독서에 집중하려면 또 다른 시간과 에너지가 소비되기 때문이다.
"김북꿈?"
교수님이 출석 부르듯 다시 한번 나를 호출한다.
"응? 불렀어?"
이제서야 와이프의 부름을 듣게 되었다고 명연기를 펼치며 그녀에게 다가가 본다.
"으.. 소름 돋아.. 이것 좀 봐봐. 이거 왜 이렇게?"
인스타로 릴스 여행을 하고 있었나 보다. 이번엔 사막으로 여행을 떠난 모양이다. 사막에서 어떤 여자들의 머리가 하늘로 뻗치는 영상을 보고 있다.
나도 이 여자들 머리 상태가 왜 이런지 궁금해진다.
"헐 대박. 왜 이래. 여자들 악귀 들린 것 같아"
풉.
와이프가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악귀가 아니고 사막에서 벼락치기 전에 나타나는 전조증상이라고. 그러면서 이제 다시 가봐도 좋다는 눈치를 준다.
본인이 재밌고 신기한 건 나도 꼭 함께 재밌고 신기해야 한다는 릴스 가스라이팅 장인.
그리고 이런 걸로 잠깐 부를 거면 앞으로는 그냥 DM으로 부탁할게.
다음날 아침.
어제의 치즈 버거는 온데간데없고 새로운 와이프가 내 앞에서 애교를 부리고 있다.
차분한 검은색 긴 생머리.
조금은 맹꽁 하지만 청초한 눈망울,
수수한 스타일까지 모든 게 내 이상형이다.
있는 힘껏 솔직하게 내 마음을 표현해 본다.
"나는 이상형이랑 결혼한 것 같아. 볼 때마다 내 스타일이란 말이지"
와이프가 기분 좋게 조기 출근을 한다.
오늘은 느긋하게 일찍 출근을 해보고 싶다고.
자유시간 10분 더 확보.
#전략
모닝 청소와 이불 정리를 끝내고 책상에 앉는다. 블로그 글도 쓰고 독서도 할 겸. 원래는 아침을 안 먹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출출하다. 뭐라도 먹어야겠다.
주방 찬장에서 과자 하나를 꺼내 먹는다.
바삭바삭-
우걱우걱-
역시 과자는 내 스타일이 아니다. 몇 점 집어먹고 집게로 입구를 막은 뒤 싱크대 위에 무심하게 툭- 하고 던져놓는다.
그렇게 하루가 다 가고.
[ 진도 7.0 강진 발생 ]
무슨 일로 와이프가 소리를 냅다 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책상 밑으로 숨어본다. 그리고 고함의 진원지로 고개를 돌려본다.
아침에 간신히 이상형으로 변신시켜 놨던 치즈 버거가 다시 돌아왔다. 이 집 치즈 버거 잘하네.
한 손에는 무언가 들려있다. 얼마나 힘을 꽉 쥐었는지 추성훈 뺨치는 핏줄이 날이 서있다.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다.
"이거 내가 아껴먹으려고 숨겨 놓은 거란 말이야. 이걸 말도 없이 먹으면 어떻게 해!!!"
씩씩-
성난 코뿔소마냥 화가 잔뜩 나있다. 와이프를 조금 달래주기 위해 가까이 다가서 본다.
그런데
어..?
와 얘 하다 하다 열받으면 이제 머리도 스네..
정말이지, 와이프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