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알 수 없는 의리
다리 꼬고 발을 까딱까딱.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와이프의 자세.
와이프의 손에는 언제나 시끄러운 핸드폰이 붙어있다. 오늘도 딱 보니 시*(Sie) 인스타 라이브 방송을 보는구나. 뭐 저렇게 남이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는 걸 보고 있는지.
가끔은 시*(Sie) 라이브방송을 보다가 혼자 숨을 헉헉 대기도 하고 머리를 쥐어짜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졸린데도 꾸역꾸역 보다가 결국 콧대에 핸드폰을 떨어뜨리더라.
떨어뜨린 건 본인인데 왜 내가 무릎을 꿇어야 하는 건지. 참 이해할 수 없다. 왜 나를 잡냐고.
며칠이 지나고.
"카톡"
나른한 오후시간 정적을 깨는 와이프의 카톡.
시* 옷을 사려나보다.
어떤 색깔이 낫냐며 나에게 골라 달라고 한다. 이런 건 대충 넘어가면 안 되지. 와이프의 얼굴을 떠올리며 정성스럽게 색깔을 골라준다.
이럴 거면 왜 물어보는지 모르겠다. 바로 태세전환 처세술로 위에 색이 더 예쁘다고 해보지만 와이프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반품비를 물더라도 둘 다 주문해보겠다고 한다. 내가 진짜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저 반품 택배비만 모았어도..
아 와이프도 이제 내 블로그 보니까 여기까지.
그리고 다음날.
재앙이 시작된다.
와이프는 결국 시* 시어링 자켓 구매에 실패했다. 얼마나 흥분했으면 카톡에 제대로 된 문장이 없다. 뭐 구매 과정에서 결제 방법을 카카오페이로 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건 내 알바가 아니다.
내 눈에는 한 문장만 꽂힌다.
제발 와이프가 저 옷을 잊게 해 주세요
하나님. 부처님.
그러나 와이프는 방법을 찾아냈다.
중고나라에서 P 주고 매물을 찾아보기로 했다고.
이러니 우리가 부부지. 추격매수 전문가들.
시* 옷에 대한 와이프의 간절함이 느껴졌을까.
사기꾼 한 명이 와이프에게 접근했지만 다른 사람이 와이프를 극적으로 구조해 준다. 역시 간절한 마음을 어디엔가 내비치면 사짜들이 꼬이는 것은 어딜 가든 국룰인가 보다.
그래도 좋은 분이 와이프를 구조해 줘서 다행이다. 심지어 와이프가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을 판매하겠다고.
와이프는 생명의 은인을 만났다며 숨죽여 운다.
그러다 본인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 헤맨다. 힘내라고. 꼭 원하는 물건 찾으시라고.
그러다 만난 한 유저.
시*에 쓴 돈만 천만 원이 넘는다는 고인물이다.
와이프와 저 셋은 얼굴, 나이, 이름, 지역도 모른 채 서로 감정과 정보를 나누며 절친이 되어가고 있었다.
정말이지, 알 수 없는 그녀들의 의리.
시* 품절대란 사건은 이렇게 얼추 마무리되었다.
시* 옷을 손에 넣은 와이프가 기쁜 마음으로 데이트에 나선다. 오늘따라 유독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평소엔 술도 잘 먹지 않는 와이프가 오늘은 나와 소주도 같이 먹어준다. 예쁜 아내와 함께 하는 포장마차 소주 데이트. 기분 정말 최고조다.
와이프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느낀 게 많은가 보다.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얼마 전에 여보 블로그에서 확언과 끌어당김에 대한 글을 읽었었는데, 그거 정말 맞는 이야기 같아. 내가 정말 간절하게 원하고 이미 가진 것처럼 상상하니까 결국 그렇게 되더라고.. 여보도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해"
그래도 갖고 싶은걸 손에 넣고 좋아하는 와이프를 보니 아이 같고 귀여워 보인다.
뭐 어차피 내 돈도 아닌데.
나도 와이프에게 이야기한다.
"그래도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든 해결할 능력이 생기지? 사람이 참 신기해. 초인적인 능력이 생긴다니까. 그리고 어차피 여보 돈으로 사는 건데 뭐가 또 미안하기까지 해. 잘했어"
와이프가 감동받았는지 눈가가 촉촉해진다. 이래서 부부사이에 대화가 참 중요한 것 같다. 와이프가 앞에 있는 소주잔을 들고 짠 하자고 한다.
그리고 이내 두 잔을 연달아 마시더니
정말이지, 와이프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