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와이프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작년 10월 어느 주말.
우리 부부는 에버랜드에 가기로 한다.
1년 중 가장 날씨 좋은 날, 그것도 주말에, 거기에 핼러윈 시즌에 에버랜드라.
가기 전부터 긴장이 된다. 혹여 에버랜드 길거리에서 내가 무표정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러다 와이프에게 골목으로 끌려가서 개털리진 않을까.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
어쨌든, 우리 부부는 대전에서 7시 30분에 에버랜드로 출발해 본다. 오늘 날씨 한번 끝내준다.
에러랜드. 아니 에버랜드에 도착하고 나니 기 적같이 날씨가 화창해진다. 진짜 내 와이프 날씨 요정인 것은 인정해줘야 한다.
10시 조금 안돼서 입장을 완료한 후 스마트줄서기 어플에 들어가니 이미 사파리와 로스트밸리는 예약이 마감되었다. 우리의 목적은 판다월드였기에 재빨리 판다월드 스마트 줄 서기를 완료해 본다.
10시쯤 스마트줄서기를 했는데 약 130분 정도의 대기가 있었다. 대기 시간 동안 뭐 하냐고? 걱정하지 말라. 우리는 감성교복패키지로 예약을 했기 때문에 교복을 고르러 가야 한다.
자켓부터 조끼, 하의까지 내가 추천을 해줬는데 와이프도 마음에 들어 한다. 그래서 우리는 교복 지옥에서 생각보다 금방 탈출할 수 있었다.
약 110분 정도 소요되었나.
그렇게 들어간 판다월드. 푸바오와 러바오 모두 잠들어 있다. 러바오 자는 자세가 와이프랑 장인어른이랑 똑같다. 한쪽 다리 들고 자는 거.
잠들어 있는 판다들을 보더니 와이프도 졸리다고 한다. 뭐 어떻게 해줄까. 유모차라도 대여해 줄까.
판다월드에서 나오는 길.
황금원숭이가 우리를 빤히 쳐다본다.
나도 황금원숭이를 빤히 쳐다본다.
시선은 조금씩 아래로 향한다.
그런데 그때, 옆에 다섯 살 정도 돼 보이는 꼬마애가 엄마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당황한 아이 엄마를 대신해 메추리 알의 정체에 대해 신랄하게 이야기해 주려 하는 찰나 와이프가 내 손을 낚아채고 서둘러 자리를 뜬다.
눈치챘나 보다. 내 입이 씰룩거리고 있었던 거.
교복 입고 장난치는 싱글벙글 젊은 남녀.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
적당한 따듯함을 내리쬐는 강렬한 햇살.
영화 '너의 이름은'의 포스터가 떠오르기도 한다.
싱글벙글 소풍 온 학생 같은 와이프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해준다.
"여보 예전에 입고 다닌 교복보다 오늘 교복이 훨씬 잘 어울린다. 참 잘 골랐어 정말"
칭찬은 와이프도 춤추게 만든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와이프에게서 달달한 대답이 돌아온다.
"여보도 회색계통보다 브라운계통 교복이 훨씬 잘 어울려!"
그러다 이내 둘 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우리 둘은 교복 입고 데이트를 해본 적이 없다.
오늘이 처음이다.
서로의 기억 속에 어떤 련놈들이 있었는지는 에버랜드 정원에 묻기로 하고 우리는 합의하에 서둘러 기프트샵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와이프가 잘 때 안고 자는 아빠상어 애착인형이 있는데, 와이프의 거친 잠버릇에 매일 밤마다 씹고 뜯고 맛보고 목조름당하고 있다.
그 친구의 수명이 이제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와이프는 새로운 친구인 토끼인형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한다.
결국 삥 뜯겼다.
집에 돌아와 토끼 인형의 이름도 붙여준다.
"깽이" 토깽이.
너무 귀엽다며 와이프가 펄쩍펄쩍 뛴다. 본인과 닮은 것 같다며 본인의 안경을 씌워주기도 한다.
그렇게 와이프와 깽이의 첫날밤이 되었다.
나는 깽이를 안고서 잠든 와이프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와 독서를 시작한다.
잠시 뒤 다시 방으로 들어갔는데.
역시 어림없는 와이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안고 자기는 무슨.
그리고 이틀 뒤.
그렇게 머나먼 용인 땅에서 고속도로 건너온 깽이는 대전이라는 낯선 땅에서 유기동물이 되었다.
이번달도 낭비.
정말이지, 와이프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