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예술이 내게는 변기인 이유

내가 우리 집 화장실에 마르셀 뒤샹의 <샘>을 들여놨지 뭐야

by 필우

현대 미술을 감상하다 보면 늘 나를 떠나지 않는 질문이 있다.


소변기를 가져다 놓고 예술품이라니!

저건 그냥 시장에서 파는 바나나 아닌가? 왜 전시실에 테이프로 붙여 놓은 거야?

마돈나 얼굴 복사해서 짜깁기해놓은 걸 돈을 주고 산단 말이야?


답답해하는 나에게 소설가 '서머싯 몸'이 답을 주었다. 그의 장편소설 <달과 6펜스>에서 훔친 문장이다.

"예술가가 들려주는 건 하나의 멜로디인데, 우리가 그것을 우리 가슴속에서 다시 들을 수 있으려면 지식과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마르셀 뒤샹의 <샘>이라는 작품을 예로 들어보자. 1917년 마르셀 뒤샹은 화장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소변기에 가명(R. Mutt)을 써서 출품하였지만 제대로 전시되지 못했다. 당시에는 예술이란, 예술가의 손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다시 <샘>이 전시되고 작가는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뒤샹은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념미술의 탄생이다.


<샘>이라는 예술품을 지식과 감수성, 상상력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자. 소변기는 인간의 생리적 현상을 해결해 주는 기구다. 사람은 각종 영양분을 섭취하고 난 후 발생한 여러 노폐물을 액체 형태로 방광이라는 장기에 저장한다. 일정 한계에 도달하면(오줌이 차면) 체외로 배출한다. 소변기는 이러한 액체를 받아내는 설치다. 앞의 문장은 아주 얄팍한 지식이다.


감수성과 상상력은 어떤가? 여기서부터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이다. 나는 소변을 제대로 배출하지 못하는 사람의 불편을 알고 있다. 나도 한 번씩 겪는다. 화장실 변기 앞에 한참을 서 있어야 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주머니를 달고 사는 환자도 있다. 배출에 대한 상쾌함 보다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의 고통이 먼저 떠오른다. <샘>이라는 작품을 보면서 내가 가진 감수성 또는 공감력의 일부분이다.


이번에는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소변기가 공장에서 처음 기성품으로 나왔다면 거실에 둬도 상관이 없지 않겠나? 장식으로 쓸 수도 있고 바깥에 그림을 그리면 원래 용도를 눈치채지 못하게 할 수도 있겠다. 소변기에 파리 말고 다른 그림을 그려 놓을 수는 없겠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샘>에 대한 생각이 날개를 달았다. 이렇게 되고 보니 소변기를 발견하고 의미를 부여한 예술가의 재능에 감탄하게 된다. 마르셀 뒤샹의 <샘>을 알고 난 후 소변기는 내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예술적 감흥을 느끼게 해 준 예술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으니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 보자. 지식과 감수성, 상상력을 확장시키기 위하여 나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내게는 독서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지식과 감수성, 상상력을 키우기 위한 방편으로 독서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 책 읽기로 배경지식을 넓혀야 한다. 이왕이면 다양한 분야의 독서로 두뇌 영토를 넓혀가면 좋겠다.


감수성을 기르는 방법은 독서 말고 한 가지 방법이 더 있다. 감수성의 핵심은 공감력이다. 타인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다는 훈련도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 타인의 글에 공감할 수 있어야 나도 타인을 감동시킬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 꾸준히 할 일이다.


*표지 사진 속 작품

마르셀 뒤샹 <샘>

마우리치오 카텔란 <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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