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수는 어디로 이사를 가려는 걸까?
햇살이 길게 다리를 뻗고 있는 것으로 봐서 날이 저물어 간다는 것을 알았다. 잠겨있던 윈도 화면을 켜서 종료 버튼을 눌렀다.
공인중개사 시험은 만만하지 않았다. 공무원 정년을 일 년 앞둔 공로 연수 기간에 공부를 시작했다. 친구도 술도 끊은 덕분에 합격했다. 자격증을 따고 다른 부동산중개소에서 실무를 익히려고 시도해 봤지만, 받아주는 데가 없었다. 나이 많은 신입은 어디서나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비슷한 처지의 ‘경력 없는 시니어 공인중개사’들이 모여 서면에 합동사무실을 차렸다. 사무실 비용을 절약하려는 고참도 함께 있어서 그들에게 업무를 배웠다. 수습 생활을 끝내고 전포동에 책상 하나, 소파 한 세트를 겨우 들일 정도의 공간을 마련했다. 퇴직금과 행정공제회에 저축해 둔 돈을 탈탈 털었다. 부동산중개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소일거리로 삼고자 했지 돈을 벌고 싶은 욕심은 없었다.
따릉, 문에 걸어 둔 벨이 울리면서 긴 그림자가 하나가 사무실로 들어섰다.
“김 사장, 뭐 하노?”
“태수, 어서 온나. 난 집에 갈라고. 동네 놈팽이가 우짠 일이고?”
“마실 나왔다가 차나 한잔 할라고 왔다.”
“점빵문 닫을라 카는데 딱 마차 왔네. 아들 서울 간 지도 제법 되었재? 잘 산다 카더나?”
“잘 살겠지. 난 통화한 지도 오래됐어. 지 엄마하고는 한 번씩 연락하더만. 그래도 집에 같이 살 때는 조금씩 말을 섞었는데, 서울 간 뒤로는 영…. 좀 서먹해.”
“품 안에 있을 때 자식이고 식구다. 집 나가면 기대를 말아. 우리 집에도 딸 하나 있다. 취직도 어려우니 그냥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시집갈 때까지 같이 있으면 해. 집사람은 서른 살 되면 무조건 쫓아 보낸다고 엄포를 놓고 있긴 하지만서도.”
“아들 직장 찾는 거 보면서 청년들이 왜 서울로, 서울로 가는지 알겠더라. 여긴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나 살기 좋은 곳이다. 일거리가 필요하거나 사업하는 사람들에게는 힘든 도시야. 여기도 봐봐. 얼마 전만 해도 전포 카페거리니, 뭐니 하면서 야단법석이더니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요즘은 조용해. 나야 한적하니 좋기는 하다만 새로 카페 차린 젊은이들은 우짤끼고.”
“그래도 니는 카페거리 바람 부는 덕분에 공구대리점 처분하고 목돈 잡았다 아이가. 다주택 소유자님!”
“다주택은 무신. 허기사 두 채 이상이면 다주택이 맞긴 맞다. 이거저거 보태고 은행 돈 끌어서 마련한 집이 그래도 연금처럼 월세가 따박따박 나오니 좋긴 좋네.”
따르릉, 태수의 휴대전화기가 울렸다. 발신자 이름을 확인하고 태수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어여 퇴근해, 태수는 손짓과 함께 문을 밀고 나가면서 서둘러 통화버튼을 눌렀다. 응. 그래. 난 잘 있다. 니는 우찌 사노. 환대가 묻어나는 태수의 목소리는 어둑해지는 골목에 묻혔다.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되려는 지 바람이 차다. 일주일 뒤 다시 태수가 커다란 봉투를 손에 들고 사무실로 찾아왔다. 태수는 따뜻한 우롱차 한 잔을 주문했다. 뭔 좋은 일 있어, 뭐 그렇게 신났어? 온종일 벨 소리 한번 듣지 못하고 신문과 인터넷만 뒤적이던 차에 밝은 얼굴로 들어서는 태수에게 심술이 났다.
“재밌는 기삿거리라도 있나? 선거 앞두고 있으니 부동산 시장이 좀 살아날낀가?”
“개뿔, 요즘은 개미 한 마리 구경하기도 힘들다. 내년이 걱정이다.”
“내라도 일거리를 좀 주까? 우리 집 좀 내놔줘.”
“집 비었나?“
”세입자가 이번 달 말에 나가기로 했다. 월세 말고 전세로 알아봐 도. 이번 기회에 팔고 싶으니 살 사람도 있나 한번 알아봐 주고.“
“전세도, 매매도 근저당권 설정된 것 때문에 쉽지 않을 낀데.”
“귀신이네.”
“이래 봬도 책임부동산 대표 공인중개사 아이가? 대표 겸 직원이라서 좀 거시기하지만.”
“해결됐다. 걱정 안 해도 돼.”
태수는 옆에 놓아둔 봉투를 집어 들었다. 큰 소리로 명랑하게 대화할 때와는 달리 얼굴에 차가운 바람이 지나갔다. 잠시 멈칫하더니 떨리는 손으로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꺼냈다. 나는 서류를 잡아채면서 한 소리 했다. 무슨 금덩이라도 들었는가 했네. 하기사 국가서 공인해 주는 금덩어리가 맞지. 표제부를 넘겼다. ‘을구’ 난에 ‘근저당권 설정’이라는 글 중간에 빨간 삭제 선이 그였다. 어제 날짜로 말소되었다고 표시되었다. 이걸 뭐할라꼬 떼오노! 내가 인터넷으로 확인하면 되는데. 나는 등기부등본을 책상 위에 던졌다.
태수는 차를 홀짝이며 서울에서 생활하는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달 골목 끝 뒷고기 집에서 한잔했을 때도 거나하게 취한 태수는 아들에 대해 미안함을 토로했다. 태수는 아들에게 빚진 사람처럼 말했다. 기름때 묻은 손으로 잘 안아주지도 못했고 머리가 커서는 더 멀어졌다고 한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늘 어렵다.
태수 아들은 선배가 대표로 있는 기업에 취직한 후 여자 친구를 사귀었다고 한다. 아들은 얼마 전에 오피스텔 전세를 하나 알아봤는데 돈이 좀 필요하다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태수는 직접 아버지에게 부탁한 아들이 고마웠는지 월세 받는 집을 처분하여 그 돈을 아들에게 빌려주기로 했다.
“은행에 갚을 돈을 바로 아들에게 부쳐주면 안 되나? 근저당권 말소를 할 필요가 있나?”
“이번 기회에 처분할라고. 내 처지에 다주택도 부담이다. 공공근로사업이나 시니어 일자리 신청할 때마다 집 때문에 자꾸 빠꾸 당해. 내 같은 기름쟁이가 집이 두 채 있는 게 말이 안 돼”
“그건 아이다. 니 같이 열심히 산 사람이 어딨노? 참, 건너편에 차 씨한테는 집 내놨다고 말 안꺼냈재?
“말이라고 하나. 니하고 그 정도 의리는 있다. 가꾸마.”
태수가 남기고 간 등기부등본의 기본사항을 확인하고 네이버에 매물을 올렸다. ‘책임부동산’ 블로그를 띄워놓고 제목을 먼저 정했다. ‘믿고 거래하는 책임부동산이 던지는 서면 최고 입지’ 한동안 꺼져있던 프린터가 기지개를 켜면서 종이를 몇 장 내뱉었다. 태수의 매물을 가게 전면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붙였다.
서면 합동사무실에서 막 일을 배우기 시작할 때 태수를 만났다. 문 앞에서 어디를 갈지 몰라 어정쩡하게 서성이고 있는 꼴이 영판 초등학교 때 그대로였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태수야, 니 우짠 일이고? 둘은 단박에 알아봤다. 전포 공구거리에서 가게를 하는 태수는 주변에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서자, 손님도 뜸해서 가게를 처분하려고 중개사무소를 찾았다. 내게는 첫 거래 물건이 되었다. 내친김에 전포동에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차렸다. 근처 낡은 아파트에 사는 태수는 출장 수리를 하면서 지냈다. 일거리가 없는 날은 내 사무실에 놀러 와서 시간을 보냈다.
태수 소유의 신축 아파트는 젊은 신혼부부에게는 매력적인 물건이었다. 스물다섯 평에 서면에서 가깝고 방이 세 개다. 네 쌍의 신혼부부가 직접 집을 보러 왔다. 태수는 매매까지 원했지만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집을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돈이 급하니 전세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매매 가격은 삼억 오천만 원, 전세금은 이억 이천만 원으로 내놨다. 유난히 호들갑스러운 한 쌍이 이백만 원을 태수 통장으로 먼저 입금했다. 두 사람은 돌아오는 봄에 결혼 날짜를 잡아놓고 있었다. 토요일 오전 열 시에 계약서를 쓰기로 했다.
젊은 커플이 먼저 사무실에 들어왔다.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여자 친구에게 쫑알거리는 남자에게 계약서를 설명할 참에 태수도 들어왔다. 태수는 자기 사무실인 것처럼 커피믹스 봉지를 찢어서 금방 데워 둔 포트의 물을 부었다. 찢은 봉지로 종이컵 안을 휘리릭 저어서 가루를 녹였다.
“아이고 옆에 스푼 있구만. 또 저란다. 인사들 하세요. 이 짝은 집주인이고 여긴 계약하러 온 K 씨.”
“안녕하세요, K입니다. 앞에 월세 사신 분들이 집을 깨끗하게 사용하셨더라고요. 저희가 제시한 이억 원으로 계약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집이야 신축이라 깨끗할 끼고. 내가 마음이 좀 바빠서 조정을 안 했시다. 가능하면 잔금을 빨리 좀 쳐 주시게.”
“알겠습니다. 맞춰 볼게요.”
봉투에서 인감증명서를 꺼내는 태수의 손이 떨렸다. 요즘 뭔 일인지 자주 술을 마신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수전증이 왔느냐고 생각했다. K 씨와 여자 친구는 연신 웃음꽃을 피우며 전세 계약서의 빈 곳을 채워나갔다. 여느 때와는 다르게 나와 눈도 맞추지 않는 태수를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K를 보면서 자기 아들을 떠 올렸을 거라고 짐작했다. 태수는 마지막으로 인감도장을 찍는 동안, 히히거리는 K를 못마땅한 얼굴로 슬쩍 훔쳐보았다. 태수에게는 복비를 받을 계좌번호를 알려주고 K는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일사천리로 끝난 전세 계약서 작성을 마치고 태수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사라졌다.
“집주인이 바쁘신가 봐요?”
“원래 백수가 주말이면 더 바쁜 법이재. 근데 내가 걱정할 거는 아니지만 돈을 많이 모아 뒀는가 봐. 젊은이에게 적은 돈이 아닌데.”
“저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어요. 이사 들어가면 은행 대출받아야죠.”
“오늘 가져가는 서류 잘 챙겨 둬요. 대출에 필요할 테니. 현재 세입자 이사 나가는 날에 비밀번호와 열쇠 위치를 내가 문자로 보낼게요.”
며칠 후 태수가 사무실을 찾았다. 햇살이 퍼진 오후 세 시경이었다. 지난주에 왜 그리 바쁘게 사무실을 나갔노? 뭔 일이 있었나? 서울에서 고생하는 아들 생각도 나고 해서 기냥 빨리 일어났다. 혹시 계약하고 나서 별다른 연락 없었나? 별소릴 다한다. 책임부동산의 대표가 하는 일인데 하자가 있을 수 있나! 참 아들은 무슨 일 한다 캤노? 태수 아들은 조그만 게임업체에서 일한다고 했다. 대표가 부산 사람이고, 개발자들도 부산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씁쓸한 이야기다. 물건 만들고 파는 회사도 아닌데 굳이 서울에 올라가서 사업을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태수에게 따지고 물었다. 우리는 이유를 몰라서 서로에게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태수는 아들 오피스텔 이야기를 꺼냈다. 콧구멍만 하지만 전세 이억 원짜리 오피스텔을 아들에게 구해 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했다. 서울 올라가서 일 년 동안 맨 날 천 날 회사 구석에서 라꾸라꾸 펴 놓고 자고 배달 음식 시켜 먹는데 아무리 젊었다캐도 기력이 안 빠지겄나? 오피스텔도 집 아이가. 밥 한 그릇이라도 숟가락으로 먹고, 하룻밤이라도 다리 뻗고 자야지. 암. 여자 친구도 있다카이 잘 지내겠지.
십이월 한 달이 바쁘게 흘렀다. 계약 이후 태수는 사무실에 발길을 끊었다. 무슨 바쁜 일이 있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K의 다급한 연락을 받고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다.
출입문이 뜯겨 나가는 줄 알았다. 내가 사무실에 있다는 것을 알고 K는 은행에서 바로 달려왔다. 대출실행을 위해 들른 은행 창구에서 태수가 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을 갚지 않았다고 확인해 주었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등기소에서 발급한 등기부등본에 근저당권이 말소된 것을 두 번이나 확인했기 때문이다. K의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책상에 앉은 내게까지 전달되었다. 그럴 리가 없을낀데. 사장님! 제가 은행에서 확인하고 왔다니까요. 공인중개사 맞습니까? 저 사진도 위조된 거 아닙니까? 지금 구청에 신고하러 가는 중입니다. 당장 해결해 주이소. 그제야 일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태수 이놈의 새끼!
K는 내게 등기소를 함께 가자고 요청했다. 등기 업무를 총괄하는 부산지방법원 등기국은 중앙대로에 따로 세운 건물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었다. 안내 창구에서 담당자를 찾았다. 민원실에서 만난 담당자는 자신을 J라고 소개했다. 회색 근무복에 호리호리한 체격을 가진 J는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온 듯 태연하게 우리를 맞이했다.
“대체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같은 사람은 등기부등본을 보고 돈을 빌렸는지, 갚았는지 판단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당신 같은 사람이 그걸 증명해 주는 거고. 그 일 하면서 월급 받는 거 아입니까?”
“이미 아시겠지만, 저희는 형식적인 서류만 맞으면 근저당권 설정을 해지하는 거고, 집주인이 은행에 돈 다 갚았다고 서류를 제출하는데 안 해줄 이유가 없죠. 그게 위조가 되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서류가 엉터리인데 그걸 받아줘요? 그게 말이 돼요? 눈깔이 삐지 않고서야 그걸 못 본단 말이오.“
”허 참, 말씀이 심하네. 이런 경우는 거의 없는데. 확률적으로 영점 일 퍼센트 아니 영점 영영일 퍼센트밖에 안 됩니다.”
“이것 봐 J, 그 영점 영영일 퍼센트가 나라고, 나!”
K의 악 소리에 민원실 밖에 있던 직원과 방문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를 향했다. 나는 K를 말리고 싶지 않았고 말릴 수도 없었다. J가 듣는 욕설은 내게로 향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아무 책임도 없다고 하는 등기국의 건물 안은 따듯했지만, 밖은 달랐다. 대로를 달리는 자동차가 쌩 지날 때마다 칼바람이 우리 두 사람을 찌르고 갔다.
태수는 아들의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을 받고 돈을 마련할 방도를 궁리하다가 마침 세입자가 급하게 나가겠다고 하니 전세로 전환할 생각을 했다. 근저당권 설정이 문제였다. 자주 보는 유튜브에서 등기소 업무는 형식적인 서류가 중요하다는 말을 듣고 대출금을 다 갚았다는 채무변제확인서를 위조했다. 원래는 은행에서 발급하는 증명서였다. 등기소 담당자가 은행에 확인 전화를 할까 조마조마했지만, 바쁜 등기소 직원은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려는 생각이 없었다. 일주일 후 저당권이 말소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를 찾아와서 공인중개사도 속아 넘어가는지 알아봤다. 평소에는 소심해 보였지만, 태수는 나쁜 쪽으로는 치밀하면서 대범했다. 태수는 급하게 융통해 놓고 현재 사는 집을 팔려는 계획이 있었다. K가 전세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에 사실 확인을 해 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태수는 경찰 조사를 받고 오는 길이라고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덥수룩한 머리에 며칠째 면도를 하지 않아 푸석한 얼굴로 나타났다.
“미안타. 내가 정신이 나갔다. 내 아들 생각만 했지.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하고 쉴 곳 없는 내 아들만 불쌍하다고 생각했어.”
“니 아들도 중요하지. 근데 결국은 다 우리 새끼들 아이가. 아들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은행에 제대로 갚으면 안 되겠나?”
“지난주 서울 다녀왔어. 억장이 무너지더구만.”
태수는 큰 한숨과 함께 가슴을 움켜쥐었다. 마주 앉은 나는 그 모습을 보기가 힘들어 슬그머니 일어섰다. 커피포트에 아직 뜨거운 물이 남아있었다. 커피믹스를 뜯어 종이컵에 붓고 스푼으로 천천히 저으며 태수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태수의 이야기에 기가 찼다. 전세 사기 집단이 오피스텔을 이중으로 매물로 내놓고 도망가 버렸다. 같은 집에 두 세입자가 오전에 잔금을 치르고 오후에 이삿짐을 날랐다. 현관문 앞에서 만난 두 세입자는 아연실색했다. 이미 집을 비우고 간 이전 세입자도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사기 피해자에게 ‘고의’라는 증명 책임이 있다고 알렸다. 태수는 아들과 함께 경찰서를 찾아 참고인 조사를 받으며 한바탕 난리를 쳤다. 당장 사기꾼 잡아 오라고. 태수는 자기가 지은 죄를 그대로 돌려받았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아파트를 급매로, 팔리는 가격으로 좀 내달라고 했다. 태수는 다주택자에서 무주택자가 되었다.
푸른 초원에 집 한 채가 그려져 있는 윈도 화면을 깨워서 책임부동산 블로그를 켰다. 제목부터 입력했다. ‘서면 어디에서도 이 가격으로는 찾기 힘든 아파트 등장(급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식구 셋이서 식육식당에서 외식 한 번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컴퓨터를 껐다. 가만,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옆집 사무실도 임대해서 좀 넓힐 수 있겠는데. 인테리어에만 일억 원을 썼다는 옆집 청년이 카페를 접어야겠다면서 오후에 인사를 왔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런데 태수는 어디로 이사를 하려는 걸까? 내가 알아봐 줄 수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