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원은 먼 바다에 가고 싶었다
일요일 아침, 희원은 멀리 떠날 채비를 끝냈다. 더블백을 열어 빠진 게 없는지 확인했다. 목욕 수건, 수경, 수모, 여벌의 옷, 헹굼 물을 담은 대형 우유 통이 들었다. 나머지 잡다한 용품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수영 팬티는 미리 챙겨 입었다. 동이 틀 무렵 해운대에 도착했다. 조선비치호텔 후문 입구에서 겉옷을 훌훌 벗어 백에 쑤셔 넣고 백사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바다 수영을 시작한 지 다섯 번째다. 팔월 말, 아직 수온은 높다. 수영 동호인들이 떼를 지어 물에 뛰어들고 있었다. 가볍게 몸을 풀고 가슴에 바닷물을 한번 끼얹었다. 짠 물이 모래를 핥는 곳에서부터 바다가 시작된다. 발목에서 시작한 차가움이 무릎을 지나 허리까지 닿았다. 더는 멀리 가지 못하게 파도가 희원의 앞을 막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멀리 수평선이 보였다. 거기는 고요하다. 동호인들은 백사장 주변에서만 파도를 즐기고 있고 먼 쪽에는 아무도 없다.
희원의 목표는 연꽃 등대다. 지난 일요일, 실내 풀장에서 함께 운동하던 동호인들과 동백섬을 맴돌면서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연꽃 등대를 눈여겨보았다. 해운대 백사장 서쪽 끝에서 등대까지의 거리는 왕복 3킬로미터가 조금 넘는다. 바다에서 지치게 되면 가만히 누워있기만 해도 체력을 비축할 수 있으니 그 정도 거리는 무리가 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동호인들은 주로 호텔을 오른쪽에 두고 바위 무덤을 따라 동백섬 주위를 돈다. 희원은 먼바다에 가고 싶었다.
아침 안갯속에 꽃을 피운 등대를 향해 힘차게 앞으로 팔을 던졌다. 백사장과 멀어지니 조용하게 보였던 바다가 살랑거리는 파도를 만들어주었다. 몸 온도가 높아져서 바닷물이 서늘해졌다. 등대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멈추고 등대를 바라보는 순간 뒤통수의 머리카락이 꼿꼿하게 일어섰다. 파도다. 거대한 파도다. 연꽃 등대를 부수고 있는 파도가 눈에 들어왔다. 높이가 족히 일 미터는 넘는 파도 위에 희원의 몸이 얹혀 둥실 대고 있었다. 연꽃 등대 가까이 갔다가는 파도와 함께 휩쓸릴 게 뻔했다.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것처럼 보이는 꽃잎을 등 뒤로 돌렸다. 조선비치 호텔을 바라보고 다시 팔을 젓기 시작했다. 넘실대는 파도 위쪽 부분에 올라서면 해운대 바닷가 중앙에 자리 잡은 그랜드 호텔과 눈높이가 맞았다. 주말에 사직체육관에서 4킬로미터씩 수영하던 체력이 있어서 파도를 헤쳐 나가며 전진할 수 있었다.
한참을 앞으로 나아갔다고 생각하고 눈을 들었다. 백사장이 눈에 들어와야 하는데 보이지 않았다. 수영을 멈추고 자리에 선 채 팔을 휘저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희원은 자신의 위치를 확인했다. 동백섬 바위 무덤 앞이었다. 연꽃 등대에서 조선비치 호텔을 향해 팔을 젓는 동안 조류에 떠밀려 왔다. 바람은 더 거세지고 파도는 사나워졌다. 몸이 바위에 패대기 쳐질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해운대 백사장 쪽으로 몸을 돌려 젖 먹던 힘을 짜냈다. 한 번, 두 번, 물살을 헤쳐 나오는 데 계속 실패했다. 몸이 바위 쪽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죽음이 현실로 밀려오니 더 물러설 곳이 없었다. 희원은 얼마 전에 죽음을 맞이한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 나 좀 살려줘! ‘살아서 나가자.’라는 일념으로 모든 근육을 쥐어짰다. 마침내 백사장에 도착했다. 누군가 희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니 제정신입니까? 이 바람에 혼자 바다에 가다니, 다음 파도 오기 전에 빨리 뛰어요.”
희원은 절뚝거리며 낯선 사람의 손을 잡고 백사장을 벗어났다. 해변에 모였던 구경꾼들이 손뼉을 쳤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태풍 소식을 들었다. 동해안 어딘가에서 수영객 한 명이 파도에 휩쓸려 실종되었다고 한다.
여름 끝자락, 엄마의 첫 기일이다. 제사상에 술잔을 올리는 희원의 손이 떨렸다. 엄마는 빼꼼히 열어 둔 아파트 문 사이로 가볍게 들어섰다. 희원과 여동생 식구들을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자식이 낳은 자식들에게도 미소를 보냈다. 제사상에서 바다 냄새가 나는 것을 엄마가 눈치챘다. 생전에 엄마가 좋아하던 멍게를 사서 올렸기 때문이다. 여름 바다에서 사투를 벌였던 희원에게도 바다 냄새가 났을 것이다. 첫 잔을 올리고 젓가락을 멍게에 올렸다. 싱그러운 향이 거실에 퍼졌다. 맛있게 드세요. 마지막 순서다. 첨잔을 하고 젓가락을 거두어들일 때 엄마는 아파트 출입문으로 향했다. 엄마의 먼 호흡이 느껴졌다. 희원아, 난 잘 있다. 아이들 잘 키우고 잘 살아라. 엄마, 고마워, 나 좀 더 살아볼게. 그녀의 이름은 말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