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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Apr 06. 2023

나의 퇴직일지가 나의 해방일지

정확하게 1,000일 남았다, 30여 년 동안 적을 두고 있었던 직장을 떠날 날이. 천일 기념으로 퇴직일지를 적어보려고 한다. 나의 퇴직일지가 나의 해방일지 아니면 또 다른 구속일지 알 수 없다. 기록을 계속하다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일천일, 많이 남았는가? 아니면 적게 남았는가?


반쯤 물이 찬 컵을 보고, 어떤 이는 물이 '반 밖에' 없다고 하고, 어떤 이는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한다. 30여 년을 날짜로 계산해 보면 십일만일 정도다. 여기에 비하면 천일은 얼마 되지 않는 숫자다. 하지만 이 정도 양으로도 시든 장미가 활짝 꽃잎을 펼칠 수 있고 사그라드는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스마트 폰 앱으로 디데이(D-Day) 기능을 사용한 것은 1,300일을 남겼을 때부터다. 매일 하루에 한 가지씩 하면 퇴직할 때쯤 대단한 것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어 문장 하나만 외워도 1,300 문장이다. 가벼운 각성으로 이룬 것은 없다. 돌이켜 보면 300일을 지나는 동안 뚜렷하게 한 것은 없다. 누군가를 만나면 '나 퇴직까지 며칠 남았어'라고 자랑스럽게 떠들기만 했다. 그게 자랑스러워할 일인가?


행복과 해방에 이르는 길은 어디에?


추앙과 환대를 통해 행복과 해방에 이르는 길을 이야기했던 드라마가 있었다. <나의 해방일지>(2022)라는 드라마다. 기정(이엘), 창희(이민기), 미정(김지원), 삼 남매와 구 씨(손석구)가 무의미한 일상을 한 겹씩 벗어던지고 관계 속에서 자신만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이 드라마는 내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 일상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자기 자신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내 안에 넘쳐흐르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즐기는 것이다. 미정은 자신 안에 사랑이 가득 차 있는 것을 알게 되면서 행복에 겨운 독백을 쏟아낸다. 창희는 자신의 다정함과 속 깊음에 자뻑한다. 구 씨가 마지막 회에서 보여주는 미소는 자신을 환대하고 추앙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주인공들처럼 나도 나에게 이르는 길을 찾아보고 싶다.


박해영 작가가 <나의 아저씨>에 이어 우리에게 주는 위로 <나의 해방일지>(출처: JTBC)



해방으로 이끄는 퇴직일지 적어보기


퇴직 이후 삶이 어떤 방향으로 펼쳐질지 나는 알 수 없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현재를 통해 예측해 볼 수 있다. 지금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행동을 하는가,에 따라 퇴직 이후의 삶은 달라질 것이다.


나는 브런치스토리에 퇴직과 관련된 글을 쓰기로 했다. 퇴직을 주제로, 이미 <등 떠밀리기 전에 읽어야 할 책>이라는 제목으로 브런치북을 발간했으며, 두 개의 매거진을 더 만들어 두었다. 다시 <나의 퇴직일지>라는 매거진을 만든 이유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의 심리와 행동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하기 위해서다. 나를 잘 관찰하는 것이 나의 행복과 해방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1일이다. 아! 잘못 말했다. 천 일이다. 무엇을 쓰야 하나? 퇴직과 관련된 모든 의미 있는 이야기를 써 볼 참이다. 퇴직 준비를 위한 소소한 일이 대부분일 것이다. 예를 들면 퇴직 선배를 만나서 나눈 대화, 퇴직하면 떠오르게 될 일, 동료와 친구 간의 사건과 생각들이다. 천일 동안, 아무렇지 않은 일상도 '퇴직'이라는 변수를 들이대면 특별한 일이 되어버리는 마법과도 같은 일이 있을 것이다. 상처라고 생각되는 일들이 '퇴직'이라는 프리즘을 갖다 대면 영광으로 반짝일 수도 있다.


오늘부터 천 일이다. 매일 글을 쓸 수는 없지만 매일 생각할 것이다. 스마트폰의 D-Day 기능 때문에 안 볼 수가 없다. 예전보다는 자주 브런치스토리에 놀러 오게 될 것이다. 


오늘은 퇴직 전, 일천일! 특별한 날이지만 일상처럼 보냈다. 점심 식사는 김밥으로 혼자 식사를 했고 저녁에는 돼지국밥을 먹었다. 천일 남은 동료끼리 몇 명 모여서 식사하면서 느낌을 나눠볼까, 생각했지만 보통의 날과 같이 보냈다. 특별한 날을 일상처럼 보낸 이유는 오늘부터는 하루하루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천 일이 내게 왔다.


D-1000일을 축하하기 위해 광안리에서 잠시 후 개최될 불꽃축제 (사진은 부산시에서 2022.12.17일 제공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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