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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Apr 08. 2023

구구팔팔

만성질환, 치매, 고독감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법

BC(Before Corona) 시절, 직장에서는 허구한 날 '회식'이라는 것을 했다. 간부는 직원들의 사기를 고양시키겠다는 핑계로 술자리를 만들었다. 여기서는 술잔을 돌렸다! 믿기지 않겠지만. 자기가 입에 댄 술잔을 옆 사람에게 건네서 술을 부어주는 것이다. 


이런 자리에서 또 하나 생소한 이벤트가 있는데, 한 사람씩 일어나서 술자리 분위기를 띄우는 건배사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문장과 구호가 등장했다. 인터넷에는 술자리에서 자신을 빛나게 하는 독특한 건배사 모음집도 돌았다. '구구팔팔'도 그중 하나다.


'구구팔팔'


구십구 세까지 팔팔하게 살아봅시다,라는 뜻이다. 건배자가 '구구'를 외치면 나머지 사람들이 '팔팔'을 외치고 손에 든 잔을 비웠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기가 쉽나? 100살을 1년 남기고 우리 할머니는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요양병원 생활만 거의 20년을 하셨다. 기력은 많이 떨어지셔서 거동도 못하였지만 병원에서 케어를 잘해 준 덕분에 오래 사셨다. 마지막 몇 년 동안은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셨다.


아버지는 할머니와는 다르다. 지금도 시골에 혼자 살고 계신 아버지는 연세가 팔십 세가 넘었지만 팔팔하신 편이다. 고비가 없지는 않았다. 대장암 수술을 받으셨고 간에서 염증이 생겨 고생을 하셨다. 지난해에도 병원에 입원을 하시는 바람에 형제들에게 비상이 걸린 적이 있다. 명절과 가족 모임에 술 한두 잔 하실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시다.


삶을 즐기는 시니어(출처: Unsplash)


퇴직을 생각하니 건강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시니어의 건강문제는 만성질환, 치매, 고독감이 가장 크다고 한다. 50살 넘어선 어른이라면 당뇨병, 고혈압, 관절염, 고지혈증, 비만, 비염, 간질환, 소화불량, 만성두통과 같이 장기간으로 지속되는 질병 한 두 가지는 가지고 산다.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약물을 복용하는 것이 최선이다. 여기에 운동을 함께 하면 좋다.


내게도 만성질환은 있다. 간이 좋지 않다. 한동안 관리를 하지 않았더니만 결국 탈이 났고 지금은 술을 끊었다. 타고난 장애가 있었지만 젊을 때는 불편 없이 잘 지냈다. 나이를 먹으니 가끔 통증을 느낀다. 이제 나빠질 일만 남았다. 달래가면서 사는 수밖에.


좋은 점도 있다. 몸을 혹사시키지 않는 것이다. 무리하지 않으려고 한다. 경쟁심도 사라졌다.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얼마 전에는 허리가 좋지 않아서 고생을 했다. 고통이 사라지고 나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다시 수영장에 갈 수 있어서 감사하고 고개 숙여 세수할 수 있는 일에도 감동한다. 누가 그랬던가, 매사에 감사하라고. 


치매는 가장 두려운 질환 중 하나다. 치매가 두려운 이유 중 하나는 원인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방이 쉽지 않다. 뇌 세포를 손상시킬 수 있는 나쁜 습관을 고치는 게 중요하다. 과도하고 빈번한 음주 또는 흡연,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게 좋다.


나도 뇌를 활성화하는 일에 좀 더 신경을 쓸 것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뇌세포에 자극을 줄 것이다. 끊임없이 배우는 생활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기억력과 판단력에 이상이 없는지 계속 관심을 가지겠다.


마지막 문제는 고독감이다. 퇴직 후 사회적 교류의 단절로 인해 발생하는 외로움은 정신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퇴직 선배 한 분은 정년퇴직 후 집에 있으니 우울감이 갑작스럽게 몰려왔다고 한다. 이러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어 밖으로 뛰쳐나갔다고 한다. 그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일거리를 찾았다.


다양한 취미생활을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교류하기를 권한다. 봉사를 통한 교류도 좋다. 자신의 특기를 활용한 자원봉사활동을 해도 좋고 특별한 재능이 없으면 단순하게 육체를 사용하는 봉사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배움을 통해서도 사람을 사귈 수 있다. 동문이라는 울타리로 묶이면 긍정적인 에너지를 나눌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온라인상의 교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블로거나 페이스북, 유튜버, 인스타그램, 밴드에서의 활동으로 정신적인 교류도 나누고, 잘하면 오프라인 모임도 가능하다.


나도 수영장에서 같이 수업을 받는 사람과는 인사를 하고 지낸다. 아직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페이스북에 좋은 책을 소개하는 모임도 공동 운영하고 있다. 좋은 시를 나누는 밴드모임에도 가입되어 있다. 이런 모임들은 퇴직 시기가 가까이 다가오면 어떤 식으로 교류에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직장 생활 중 형성된 관계도 계속 유지,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군중 속으로, 관계 속으로(출처: Unsplash)


D-998


이제 퇴직이 구구팔일 남았다. 구십구 세까지 팔팔하게 살기를 기대하지 않겠다.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살아있는 날까지는 팔팔하게 생각하고 움직이고 싶다. 


살아있는 날까지 팔팔하게(출처: Unsplash)


*표지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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