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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Jan 01. 2024

질풍가도, 딸과 함께 듣는 새해 첫 곡

2024년, 질풍 같은 용기를 내게 줘!


한 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 거친 파도에도 굴하지 않게. 

드넓은 대지에 다시 새길 희망을 안고 달려갈 거야. 너에게.


늦잠을 잤다. 어제 MBC에서 방송한 '가요대제전'을 늦게까지 봤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노래 한 곡이 웅얼웅얼거리다가 마침내 입속에서 맴돈다. 한 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 어제 딸과 함께 들었던 2024년 새해 첫 곡이다.


  12월 31일 저녁, 우리 가족은 늘 분주하다. 저녁식사 그릇을 치우면 배민에서 디저트를 주문하고 한 해 버킷리스트를 정산한다. 새해 목표도 정한다. 내가 좋아하는 '팝빙수를 녹인 물'같은 맛이 나는 '팥절미 밀크셰이크'를 시키고 딸은 초코맛 음료를 주문했다. 심심할 것 같아 달달한 와플도 곁들였다. 아내는 두 사람이 시킨 것을 빼앗아 먹는다.   


딸은 배민에서 보내준 '먹어보고서(書)'를 보여줬다. 1년 간의 플랫폼 이용 결과를 요약해 주는 리포트다. 부산시 남구 사용자 중에서 1% 안에 든다고 하였다. 축하해 주었다. 딸은 보고서를 캡처해서 친구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 친구도 바로 캡처 화면을 보내왔다고 한다. 자기는 부산시 동구에서 1% 안에 들었다고 답장을 해주었단다. 친구가 모두 능력자구나! 좋은 친구 뒀어. 


  2009년부터 이어져온 가족 버킷 리스트 정산을 마치고 딸과 나는 TV 앞에 앉았다. 연례적으로 하는 연말 TV쇼가 한창이다. 안유진과 영지의 콜라보 무대는 '지구오락실'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케미를 그대로 재현했다. 여성 댄스의 경연 프로그램인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시즌2'의 우승자 '베베' 안무팀도 모습을 비췄다. 리더인 '바다'는 여전히 멋있다. 딸은 남자 아이돌 그룹인 'NCT' 팀을 기다렸다. 


NCT가 카운트다운 할 때 등장하면 어쩌지.

왜? 문제 있어?

새해 첫 곡 들어야지... NCT가 나와도 새해 첫 곡은 놓칠 수 없지


딸은 고심 끝에 새해 첫 곡으로 '질풍가도'를 듣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나는 얼마 전 시작한 '싱어게인 3'에서 이 노래의 원곡자가 부르는 것을 듣고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노래는 인기를 끌었지만 가수 유정석 씨는 오히려 소외되어 무명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용기를 내어 무명가수를 발굴하는 프로그램에 등장하였다. 


'질풍가도'는 애니 '쾌걸 근육맨 2세'의 OST였지만 야구와 축구 등 스포츠 응원가로 즐겨 부르는 곡이다. 스포츠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실패'다. 실패가 두려워 배트를 휘두르지 않고, 슛을 날리지 않는다면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수 천 명의 관객이 그라운드가 들썩일 만큼 한 목소리로 응원하는 이 노래는 선수들에게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바닥에 가라앉은 용기를 퍼올려 질풍같이 내달려 달라는 주문이다.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고 긴장되는 순간, 딸은 플레이를 눌렀다. 딸은 원곡자가 부르는 노래에 몰입되어 흥얼거렸다. 1년 간 사용할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나에게도 뜬금없이 용기가 솟았다. 


  2024년, 딸은 상당한 도전이 필요한 목표를 정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수십 개의 '새해 첫 곡' 중 이곡을 택한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한편으로 딸이 가상하기도 하고 힘들 여정을 생각하니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질풍가도를 함께 들어주고 마음으로 응원하는 것 밖에 더 있겠나? 자기의 삶을 헤쳐나가길 바란다.


  1월 1일 어떤 곡을 가장 먼저 들어셨나요? 그 곡이 한 해를 보내는 동안 용기와 행운을 가져다줄 겁니다.


(D-730일, 퇴직이 이제 2년 남았다. 내게도 질풍 같은 용기와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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