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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Dec 03. 2023

치료비가 이렇게 차이가 나도 되는 것인가?

독감으로 병원 갔다가 알게 된 사실

5일 치 약을 받으시면 만 원입니다. 주사에 곁들여 수액을 맞으시면 십만 원입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독감 검사 결과를 알려주면서 의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1만 원과 10만 원은 꽤 큰 차이였다. 아무리 나를 꾀어 보라지, 장삿속 보이는 처방을 내가 받을 쏘냐! 약을 처방받으려는 순간, 전날 밤의 악몽 같은 현실이 떠올랐다.


  병원을 찾아가기 하루 전, 그날 오후부터 조짐이 있었다. 목 안이 간질간질했다. 퇴근 무렵에는 열이 슬슬 오르기 시작했다. 한 주 동안 나의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났다. 영도에서 있었던 토요일 저녁 모임, 주 중에 개최된 동기모임과 저녁 식사자리, 탈이 날만했다. 


예상은 했지만, 평소보다 일찍 집에 도착한 나를 반기는 사람은 없었다. 나의 상태를 단박에 파악한 아내와 딸은 불만을 쏟아냈다. 지난번에도 내가 감기를 집으로 몰고 오는 바람에 두 사람 모두 고생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내는 아스피린을 먹고 자라고 권했다. 아내에게 아스피린은 감기 예방약이다. 감기 신호가 온다 싶으면 바로 털어 넣는다. 감기만큼 무서운 두 사람의 눈길에 아스피린 두 알을 삼켰다.


나는 아스피란과 궁합이 맞지 않았다. 밤새 오한과 두통, 발열, 기침에 시달렸다. 머리에 바위를 올려놓은 듯한 느낌에 더해 누군가 바위 위에 앉아서 짓누르고 있었다. 기침을 하지 않으려 참다 참다 터져 나올 때는 목 안 깊숙한 곳에서 피 맛이 느껴졌다. 나는 내가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 몇 년 전 식도정맥이 터졌을 때 봉합수술을 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 정도 고통은 참아야지, 곧 아침이 올 것이야, 하고 되뇌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밀어냈다.


다음날 아침, 병가를 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오전에 의회 일정이 잡혀있었기 때문이다. 죽 한 그릇을 비우고 출근하는 길은 불 구덩이를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10시부터 시작된 의회는 11시를 조금 넘겨서 끝났다. 점심 식사를 직원들과 하다가는 옮길 수도 있을 것 같아 내 자리에서 김밥 한 줄로 때웠다. 오전 내내 두통과 발열은 계속되었다. 마스크를 쓰고 기침이 나오려면 즉시 물을 마시다 보니 기침 횟수는 줄었다.


직장 근처 내과에 도착한 시간이 1시 반, 아무도 없었다, 간호사도 의사도. 2시까지 점심시간이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병원에 도착하니 마음은 좀 편해졌다. 40도입니다. 독감인 것 같은데요. 주사를 먼저 한 대 맞고 독감 검사를 했다. 입안에 아이스크림 막대를 깊숙하게 찔러 넣었다. 결과는 곧 나왔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A형 독감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의사가 제시한 두 가지 보기 중 나는 하나를 골랐다. 하루라도 빨리 낫고 싶은 마음에 10만 원짜리 처방을 택했다. 


그래도 나는 아직 근로소득이 있으니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지. 퇴직하면 이 정도 치료비를 감당하기는 힘들겠지. 약 먹는 5일 동안 머리 싸매고 끙끙거릴 수밖에...


2년 정도 남은 퇴직 이후의 의료비에 대한 부담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동네에 있는 내과의 수액실은 넓지 않다. 커튼으로 구분된 침대가 10개 남짓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미 한 명이 누워있었다. 간호사가 주사액과 수액을 들고 와서 조치를 해 주고 갔다. 30분 정도 지나서 수액실을 나올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수액실 침대가 만석이다. 모두 감기환자다. 


  의사는 처방전을 두 개 제시했지만 대부분의 환자가 10만 원짜리 수액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의료비가 상승된 것이다. 나도 고민하는 척 하긴 했지만 독감의 고통을 생각해 보면 무조건 수액을 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액 맞는 것은 보험이 안된다고 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높은 금액의 처방을 택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퇴직하셨으리라고 짐작되는 시니어분들도 다 수액을 맞고 있었다. 퇴직 후에는 좀 더 저렴한 처방을 택하게 되리라고 짐작했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아까운 시간을 무엇 때문에 고통에 내줄 것인가? 다른 경비를 줄여서라도 의료비는 팍팍 쓰는 것이다. 지금은 아닌 척 하지만 나도 그렇게 행동할 것이다.


돈이 필요하구나! 건강을 위한 나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고통 없는 삶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행복을 위해 재정적인 여유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질병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서 주머니가 넉넉해야 하는 것이다.


동네 병원을 다녀오고도 머리가 아팠다. 이번에는 독감 때문인지 나의 퇴직 후의 삶 때문이지, 그 원인을 모르겠다.


D-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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