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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Sep 30. 2023

구독 취소한 친구 잡아내는 딸

만 명 되면 콜라보하자

"언니, 여기로 들어가시면 돼요."

"네, 구독 눌렀어요."

"오! 이제 372명이다."


명절이라고 아들이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왔다. 아들은 집 나간 지 1년 4개월 만에 식구가 될 사람과 함께 왔다. 점심 식사를 하면서 딸은 오빠의 여자친구에게 나의 유튜버 채널을 알려줬다. 구독을 요청했다.


"자기 채널의 구독자수를 매일 헤아리고, 게시한 영상 조회수를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빠 밖에 없을 거야."


딸이 나의 유튜버 활동에 연민을 느끼면서 식구들에게 하는 말이다. 나는 구독자수가 백 명에서 이 백 명이 될 때, 삼 백 명이 될 때 그 기쁨을 딸과 함께 나눈다. 오래전, 구독자 수가 처음으로 한 명 줄어들었던 날, 나는 깜짝 놀라며 딸의 방문을 노크했다. 취소도 하네! 당연하지 백 명, 이 백 명 빠지는 유튜버도 있어!  


  얼마 전, 딸과 둘이서 해운대 패스트푸드 체인점에서 콜라와 감자튀김을 시켜놓고 유튜브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나의 구독자수와 최근에 올린 영상 서너 개의 조회수를 이야기해 주었다. 딸은 그런 것을 외우고 있느냐면서 측은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아빠는 주말에 고생고생해서 동영상을 올려. 유튜버에 진심이야. 근데 조회수가 왜 형편없지? 별 것 없는 영상도 몇 만 회씩 쉽게 오르던데."

"아빠가 유튜버에 진심이라고? 말도 안 돼. 생계를 유튜버에 걸고 하는 사람이랑은 비교하면 안 되지."


딸은 나에게 핀잔을 줬다. 맞는 말이다. 그래도 딸의 응원은 힘이 된다. 동영상을 게시하고 나서 '봤어?'라고 물어보면 '응, 본 것도 아니고 안 본 것도 아니야'라고 대답한다. 딸에게 책 이야기가 재미있을 리 없다. 그래도 아빠가 만든 거니 그냥 한 번 정도 틀어놓고 딴짓한다는 이야기다.


유튜버 채널 이름도 딸이 만들어줬다. '일주일 독서'와 같은 식상한 이름보다는 딸이 만들어 준 '책임전가'가 특색이 있다. '책임전가'는 책의 핵심 내용과 나만의 해석을 곁들여서 독자에게 전가한다는 의미다. 


  딸은 백만 구독자를 가진 북튜버 채널을 내게 소개해 줬다. '책으로 백만 구독자를 가지다니, 대단해!', 서로 감탄하면서 포맷을 함께 살폈다. 백만 북튜버는 책 내용과 함께 애니메이션을 곁들였다. 나는 딸에게 우리도 콜라보(협업)를 하자고 제안했다. 내가 내용과 영상을 만들면 딸이 움직이는 그림을 입히는 것이다.


딸은 집에서 게임 캐릭터 만드는 연습을 하고 있다. 딸은 웃으며 거절했다. 나는 고집스럽게 설득했다. 나는 구독자가 만 명이 되면 그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딸은 마지못해 승낙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스마트폰 메모장을 꺼내 사인을 받아냈다. 해운대 패스트푸드 점에서 우리의 계약이 성립되었다.



사인을 하는 날, 딸은 내가 몰랐던 사실을 말해줬다. 친구들과 한 번씩 만나면 '책임전가' 채널 구독여부를 검사한다고 했다. 유튜버를 시작할 때 친한 친구들에게 구독을 권했었다. 고마운 일이다. 


어느 날. 딸의 방에 노크를 하고 들어갔는데,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영상에서 딸의 친구가 인사를 했다. '잘 보고 있어요!' 나는 놀라고 부끄럽기도 해서 얼른 인사하고 방을 나왔다.


딸은 얼마 전, 친구들을 만났을 때 친구 한 명이 구독을 취소한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딸의 친구는 다시 구독해줬다고 한다.  


  언제쯤 천 명이 될까? 퇴직이 823일 남았다. 퇴직 전에는 되겠지. 딸이 응원하고 있으니 힘이 난다.


D-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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