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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Feb 25. 2024

지상파는 처음인데, 거기다 생방이라니

생방송에 출연하는 작가가 준비해야 할 것

다음 주 목요일 저녁 7시 20분에 시간이 괜찮으십니까?

네, 시간 비워두겠습니다.

7시 뉴스시간에 생방송으로 8분 정도 진행할 겁니다. 질문지는 다음 주에 보내드릴게요.

네? 생방송요?


작가와 통화가 끝난 시점부터 약간의 두통이 느껴졌다. 생방송이라니! 7시면 황금시간대가 아닌가? 방송작가와 PD는 도대체 뭘 보고 나 같은 초보자를 생방송에 출연시키려는 걸까? 믿기지 않았다. 이유야 어떻든 쉽게 가질 수 없는 홍보 기회임은 분명하다. 나는 밝은 목소리로 준비해 보겠다고 답했다.


  지난해 연말 <한 번 읽은 책은 절대 잊지 않는다>(RHK)를 출간하고 난 후, 신문사와 인터뷰를 하고 방송매체에도 몇 번 출연했다. '연합뉴스', '부산일보', '국제신문', '동아일보', '뉴스투데이'에서 제법 크게 나를 소개해 주었다. 방송으로는 부산MBC의 '자갈치 아지매', TBN 부산교통방송, CBS-라디오에 출연하였다. 


'자갈치 아지매'와 '교통방송'은 생방송으로 전화 인터뷰를 하였지만 라디오 방송이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들고 있었다. 대본이 없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화하듯이 말하면 된다. CBS방송은 스튜디오에서 '보이는 라디오' 형식으로 진행되어서 조금 부담이 되었다. 이때는 시나리오를 보지 못하고 대화 모습을 촬영했지만 녹화형식이었다. PD가 편집을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실수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TV 생방송은 다르다.


방송 사흘 전, 화요일 오전에 질문지를 받았다. 질문은 모두 7개였다. 질문지를 받아보니 기획의도를 알 수 있었다. 3월, 새 학기를 맞아 아이들에게 독서를 권장하고 싶은 부모를 대상으로 시나리오를 만든 것처럼 보였다. 1,000권의 책을 읽고 특허까지 출원했다고 하니, 거기다 책까지 출간했다고 하니 솔루션을 제시해 주지 않겠는가, 하는 바람이 질문에 담겼다.


촬영은 저녁 7시 20분이지만 분장을 하기 위해 6시 30분에 방송국에 도착했다. 방송국 로비에서 작가를 만났다. 알고 보니 작가도 책을 좋아하는 분이었다. 배우자도 다독가여서 서로 책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독서 습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화장을 해주시는 분도 거들면서 분장실 오디오가 빈틈없이 채워졌다. 책 이야기로 조금 떠들고 나니 긴장도 풀렸다.


2층 스튜디오로 옮겨서 오디오테스트를 하기로 했다. 스튜디오에 들어서니 PD님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분은 10여 년 전에 바이오산업 업무를 담당할 때 만났었다. 오디오 테스트를 끝내고 뉴스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서 밖에서 대기하였다. 수십 개의 모니터, 8명 정도 되는 스태프가 합을 맞춰가면서 기자를 불러내고 자료화면을 깔고, 앵커에게 신호를 주었다. 이 모든 상황을 매서운 눈으로 감독하는 PD. 


다시 두통이 시작되고 입술이 말랐다. 백팩에서 생수를 꺼내어 연신 들이켰다. 지난번 CBS방송 때 물이 없어서 혼이 난 경험이 있었다. 입술이 건조해지고 성대까지 바짝 말라서 연신 침을 삼켰다. 당황한 모습을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다. 큰 위기가 있었다. 그날 이후 내가 마실 물은 챙기고 다닌다. 출연자의 목마름까지 챙겨주는 방송국 분은 많지 않다. 


내가 긴장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앵커가 첫 질문을 던질 때, 나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다. 두 번째는 목소리의 떨림이다. 긴장하면 순간적으로 목소리가 잠기거나 덜덜 떨 수 있다. 나의 의지로 제어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평소 같으면 '흠흠'하면서 긴장을 풀 수 있겠지만 카메라가 돌아가는 상황에서 큰 실례다. 세 번째는 얼굴 표정과 자세다. 굳은 안면 근육, 꼼지락 거리는 손가락, 구부정한 자세는 시청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것이다. 


시작하겠습니다,라는 카메라 보조요원의 사인에 따라 앵커가 내게 질문을 사정없이 던졌다. 질문에 대한 답이 머리에 떠올랐고, 목소리도 정상적으로 나왔다. 여유 있게 보이려고 내적 미소를 지었다. 첫 질문과 두 번째 질문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잘 진행되는가 싶더니 앵커가 질문을 하나 빠뜨렸다. 거기다 이미 대답한 질문을 내게 다시 던졌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 큰일이다! 당황하면 안 되는데! 말을 더듬게 되면 어떻게 하나! 머리가 복잡해졌다. 나는 정신줄을 잡았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라고 운을 떼면서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켰다. 


8분의 시간이 이렇게 길 줄이야. 나중에 방송을 본 사람들은 짧았다고 내게 말을 했지만 난 그렇지 않았다. 스튜디오를 빠져나오니 PD와 작가는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빈말이라도 좋았다. 


생방송에 출연하게 된다면 준비해야 할 것


  주중에는 보지 못하고 있다가 어제 다시 유튜버 영상을 보았다. 처음 생방송에 출연한 것 치고는 나름대로 선방했다. 다시 생방송에 출연할 기회를 갖게 되면 준비해야 할 것들을 정리해 보았다.


먼저 방송환경을 숙지하는 게 좋다. 나는 평소에 방송국에 갈 일이 잦았다. 스튜디오 분위기, 카메라의 위치와 구성, PD가 모니터 하는 모습과 방법, 분장실 모습, 앵커 얼굴까지 익숙하다. 방송국이 낯선 분이라면 미리 현장을 보는 것이 좋다. 그래야 심리적으로, 신체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떨리는 현상을 줄일 수 있다.


두 번째는 시나리오를 완벽하게 숙지하는 것이다. 질문의 내용과 순서, 답변 내용을 외운다. 소리 내서 말하는 연습까지 계속해야 한다. 현장에서 질문 순서를 바꿀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앵커는 현장에서 질문 문장만 보기 때문에 질문이 가진 의미를 깊이 알 수 없다. 특히, 그 분야에 관심이 없는 앵커라면 더욱 긴장해야 한다. 


세 번째는 평소 자신의 말투, 표정, 자세, 손의 사용법에 대하여 모니터를 해보시라고 추천한다. 말을 하는 중간에 추임새를 넣는 사람도 많다. 쩝쩝 소리 내는 사람, 불필요한 지시어나 부사어('이~', '저~', '사실', '진짜')를 사용하는 발표자도 많이 보았다. 말하면서 목을 빼거나, 허리를 뒤로 젖히거나, 손가락을 가만두지 못하기도 한다. 한 번만 자기 모습을 촬영해 보면 알 수 있다.


소중한 경험을 했다. 이제 라방을 한 번 해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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