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퇴직 교수와의 만남
책 출간 후, 지역 신문의 인물란에 나의 기사가 크게 났다. '20년간 쌓은 독서 기술로 '특허 출원'한 4급 공무원'이라는 제목은 일반 독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시청 1층 어린이 도서관에서 찍은 사진도 보기 좋았다.
외근을 다녀오니 책상에 메모가 놓여있었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는 A대학교에서 퇴직하고 현재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였다. 신문기사를 보고 전화를 했단다. '행복'을 주요 테마로 진행하는 자신의 채널에 출연해 줄 수 있겠냐고 내게 제안했다. 나는 조심스러웠다.
그 이유는 내 모습을 장시간 카메라에 노출하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라디오 인터뷰는 몇 차례 했었다. 오디오만 송출하는 방송과 표정이나 자세를 그대로 보여주는 영상을 인터넷에 게시하는 일은 다르다. 다른 이유도 있다. 유튜버의 정체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쉽게 승낙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편향된 이념이나 정치색깔을 가지고 채널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다.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촬영 후, 자신의 목적대로 편집해서 게시할 수도 있다. 이때는 뒷감당은 어떻게 해야 하나? 나의 소심함도 한 몫하였다.
나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퇴직 교수가 알려 준 채널에 들어갔다. 동영상과 댓글, 조회수를 확인하였다. 개인연금, 테양광 에너지, 고독사, 한글의 우수성, 후쿠시마 오염수, 다양한 이야기가 담겼다. 인터뷰에서 마지막 질문과 답변은 행복을 소재로 한마디 덧붙이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유튜버 운영자인 퇴직 교수는 화면에 등장하지 않고 오직 인터뷰이만 노출되었다. 질문은 자막으로 나왔다.
구독자는 996명, 사실 내용보다 먼저 확인한 부분이 구독자 숫자다. 아직 천 명이 되지 않는 유튜버 채널이라는 사실이 조금 실망스러웠다. 잠시 망설였지만 나는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나의 채널('책임전가') 구독자의 두 배다. 선배 유튜버에게 배울 게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퇴직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교수님 채널에 출연하겠습니다. 촬영은 어디서 하나요?
(유튜버) 음... 과장님 사무실 직원들은 12시에 점심식사하러 다 나가죠?
(나) 그렇습니다만...
(유튜버) 그럼 점심시간에 제가 과장님 사무실에 들러면 어떻겠습니까?
나는 좋다고 하였다. 점심시간에 맞춰 퇴직 교수는 사무실에 방문하였다. 퇴직 교수는 60대 후반으로 보였다. 첫인상은 선하고 순해 보였다. 내가 출간한 책 이야기를 나누고 곧바로 촬영을 준비했다. 퇴직 교수는 백팩에서 몇 가지 물건을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그는 유튜버를 시작하면서 세운 원칙 중 하나가 과다한 비용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퇴직 교수가 구입한 것이라고는 휴대폰을 지지하는 삼각대와 유선 마이크뿐이었다. 무료 편집프로그램을 사용한다고 했다. 인터뷰이의 사무실이나 카페 공간을 무대로 활용하고 있으니 스튜디오도 필요 없다. 퇴직 교수는 인터뷰이를 발굴하고 발품만 팔면 된다.
나는 미리 시나리오를 준비해 두었기 때문에 순조롭게 촬영이 진행되었다. 촬영을 끝내고 함께 돼지국밥을 먹었지만 1시도 되지 않았다. 나는 이번 촬영의 계기가 된 도서 <한 번 읽은 책은 절대 잊지 않는다> (RHK)를 선물하고 퇴직 교수는 점심 식사를 샀다. 우리는 시청 건물 앞에서 헤어졌다.
나는 악수를 나누면서 축하의 말을 건넸다. 촬영하는 날에 퇴직 교수의 유튜브 구독자 수가 천 명을 넘겼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감개무량한 듯이 잠시 몸짓을 멈추었다. 유튜브하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 알지 않느냐, 고 말하면서 그는 행복한 미소를 보였다. 나는 맞장구 웃음을 짓고는 교수에게 하소연했다.
아니, 왜 구독하다가 끊어버리는지 모르겠어요? 매일 한 명, 두 명 세고 있는 우리 마음을 왜 몰라주는 건지. 아무튼, 천 명이라니! 정말 대단하십시다. 앞으로 승승장구하십시오.
멀어지는 퇴직 교수의 발걸음에 힘이 넘쳤다. 시청 건물로 들어서는 나의 발길도 씩씩해졌다. 나도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뎌 천 명을 달성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