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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거니 Feb 03. 2023

비움과 채움

그 무한한 반복속에서 

어디선가 들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고. 그리고 이 말에 대해 며칠을 생각했다. 계속 채우면 좋은 것이 아닌가? 예를 들면 내 머릿속에 지식을 계속 채우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닌가? 채우는 것 자체에 대한 의미는 이해가 가지만, 비워야 한다는 조건이 붙은 채움에 대한 개념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위 말의 편린을 보게 되었다. 반년 전부터 있던 일련의 일들.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는 조금 더 전. 괴로운 일들을 많이 겪었다. 신체적으로는 매일 코피가 나고 머리가 빠지며 현기증을 느끼는 등의 이상 징후를 느꼈고, 정신적으로는 항상 무엇인가에 쫓기는 불안감, 내가 잘해나가고 있는가에 대한 의심,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우울감. 이러한 것들로 고통을 받았다. 그때마다 나는 술만 찾았다. 지금에서야 술을 거의 마시지 않지만, 그때 당시는 일 때문에 직장에 계속 있게 되는 경우 말고는 계속 마셨다. 시간은 상관없었다. 낮이고 저녁이고 새벽이고, 기회만 되면 마셨다. 그렇게 나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겉과 속이 다 병들었다. 내가 자초한 일이기는 하지만, 원체 이기적인 사람이었던지라 모든 게 다 원망스러웠다.

  시간은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 점점 시간이 지나니 그 고통도 어느샌가 나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중간에 큰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결정을 한 나에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랑스럽다.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렇게 점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인가-나를 고통스럽게 했던-가 비워지고, 그곳에는 새로운 삶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시작은 결혼을 하고 분가를 하고 나부터였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나는 온전히 나로서 있을 수 있었다. 나를 전폭적으로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살면서 처음 느껴봤다. 부모님도 물론 그러한 지지를 해주셨지만, 나에게 맞는 지지가 아닌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기대치에 맞춘 지지였기 때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내의 그러한 태도 덕분에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고 산다. 

  비워졌던 마음을 어떤 것으로 채웠는가를 생각을 해보니 많은 경험이 있었다. 신혼여행은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여행지는 하와이였는데, 그곳에서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직장에서 빠져나갔던 영혼이 주인을 다시 찾아온 느낌이었다. 그만큼 거기에서의 경험은 소중하다. 그곳 사람들의 여유로움을 머리로 느끼고, 그곳의 자연을 몸으로 느꼈다. 덤으로 경제적으로 여유로울 때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도 느꼈다. 직장에서의 권태와 의문, 그리고 고통을 비워냈다. 그 남은 자리를 행복한 경험으로 채웠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후, 얼마간은 다시 내가 원하지 않았던 것으로 내 정신을 채웠다. 취직. 정말 중요한 것은 안다. 하지만 나는 일을 당장에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쉬기로 했다. 쉬는 동안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을 다 해보고 싶었다. 직장에 다닐 때는 일주일에 한 권 읽던 책을 쉬면서 하루에 한 권 읽고 싶었다. 그리고 내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글로 쏟아내고 싶었다. 경제적 자유를 위해 내 열정을 불태우고 싶었다. 새로운 것들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경이롭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그 뒤로 지금까지 내 삶이 얼마나 변했나 생각해 보면,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고 매 순간이 기쁨이다.

  그렇게  비로소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말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아마 브루스 리가 했던 말이었던 것이 지금 생각났다.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어쨌든 좋은 말이니까 하고 어물쩍 넘어간다. 하지만 앞으로 비울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고정관념, 긍정적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있는 약간의 부정적인 감정, 내가 계획한 것들이 틀어질까에 대한 의심 등. 성공의 에너지로 가득 채우겠다고 다짐을 한다. 어제 공부했던 내용이 생각난다. '나는 경쟁하러 온 것이 아니고 이기러 온 것이다.'. 자기 자신을 이기려고 발버둥 치는 것. 그 행위 자체로도 내 안을 모두 채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나로서 존재하고 싶다. 글을 다 쓰고 나니 마음에 응어리가 비워진 것 같다. 이제 다시 무엇인가를 채우러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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