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통제를 한다. 통제를 당한다. 다양한 의미의 통제가 있다. 나는 통제를 하는 사람인가? 통제를 당하는 사람인가? 혹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할 능력이 있는가? 라인홀드 니부어는 이렇게 기도했다. "신이시여. 저에게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키려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둘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아마 어디서든 한번 즘은 들어보거나 봤을 기도문이다. 종교가 없기 때문에 어떤 신을 지칭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요청하는 탁월함에 감탄했다.
여태 외부환경에 너무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낭비했다. 위 기도문처럼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하고 받아들이는 지혜는 나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어려서 그랬다고 하기에는 참으로 민망하다. 분명히 바꿀 수 있던 부분들이 많았다. 충분히 내 인생을 통제할 수 있었다. 다만 내가 어리석은 사람이었을 뿐이다. 지금 집이 불만이라고 해서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면 하는 상상. 막연하게 상황만 바뀌면 나는 정말 다른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사람이 변한다면 참으로 나한테 좋을 텐데. 내가 이렇게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나를 둘러싼 '환경'과 '상황'이 좋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바뀌기만 행복할 것 같았다.
멍청한 생각이었다.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이 아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가져야 한다. 내가 아무리 기도를 하고 애를 써도 어디서 출생할 것인가는 바꿀 수 없다. 타인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결국 자신을 변화시키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부요인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나를 다스리고 통제하고 변화시키는 것은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둘을 명확하게 구분할 줄 알면 나는 매일 이기는 싸움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후회해도 과거는 바꿀 수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과거에 얽매인다. 그때 그것을 했었더라면, 그때가 좋았는데, 그때 내가 말이야. 지금 당장 나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현재에, 그리고 변화한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미래에 있는데 계속해서 과거에 머무르려고 한다. 과거에 머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과거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를 통제하고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항상 존재한다. 그 존재가 나이기를 바래야 한다. 굳이 승산이 없는 과거에 베팅을 하는 것이 옳은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누구나 안다. 지금 이 순간만이 강한 힘을 가진다. 나 자신을 바꾸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할 것인가?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현재에 충실할 때에 비로소 우리는 원하는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