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대상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대상이 상황이나 사물, 사람 등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사회적인 동물인 것에 따른 두려움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살면서 사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가기란 어렵다. 나이에 따른 사회의 요구사항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또 다른 의무가 생기기도 한다. 여러 가지 사회 압력들은 항상 나를 따라다닌다. 그런 압력들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누군가와 경쟁을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고, 경쟁이 없더라도 혼자만의 고민이 커지는 상황을 맞이할 확률이 높다.
사회적인 지능이 높은 사람이면 이러한 것에서 자유로우리라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대부분은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이것을 하면 저 사람들은 이것을 한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궁금하면서도 두려워지는 질문이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나는 나로 있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곤 한다. 그러한 상황을 마주하는 것이 나는 가장 두렵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최근에도 이러한 두려움을 항상 마주하게 된다. 내가 사회에서 위치해야 할 곳은 어디인가? 그리고 사회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던지고, 그것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천천히 생각해 보면 사회는 무엇을 요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저 내가 만들어낸 환상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들을 잘 해내지 못한 상황에서 불안함을 느끼고 더 나아가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쓸데없는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극복해야 할 대상이 추상적일 때 나는 많은 혼란을 느낀다. 없을지도 모를 것에 대해 고민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생각하지 않아도 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시금 모든 것은 나로 인해 시작됨을 느낀다. 두려움은 내가 만들어낸 창조적인 감각일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나는 외부환경에 많이 휘둘리는 모양이다. 가끔씩 사람들이 던지는 한마디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고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각자의 위치에서 가지는 두려움이 다르기에 그것을 나에게 얘기할 수도 있다.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본인의 자식이 잘못될까 하는 두려움. 지인들은 내 근황이 궁금해서, 그리고 흔히 어떠한 것에 도전하는 것이 내가 사회적으로 실패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에 따른 두려움 등. 글을 쓰다 보니 사회의 갖가지 두려움이 교차하는 곳에 내가 서 있어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 교차로에서 내가 이정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형태로든 다가오는 두려움 혹은 개인적인 환상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해야겠다.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