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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독쌤 Aug 05. 2018

‘한 학기 한 권 읽기’의 놀라운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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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시들해졌지만 한 동안 <한 학기 한 권 읽기>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학부모 상담, 이메일,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주제로 한 강연 의뢰도 많았죠. 저뿐 아니라 독서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분들은 다 비슷한 상황이었을텐데요. 

 

오늘은 2015년 교육 개정에 따라 올해부터 시행되는 <한 학기 한 권 읽기>에 대해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사실 아주 간단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국어 교과서에
‘한학기 한 권 읽기’라는
단원이 생기고,

그에 따라 한 학기에
한 권을 읽습니다


 

열없지만 이것이 핵심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학기에 한 권을 읽는다’는 폭넓은 가이드라인만 제시돼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자율에 맡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책 선택에서부터 수업 방식까지 모조리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수많은 의문점의 근원입니다. 

이 단순함과 자율성이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는 거죠. 


“그래서 수업을 어떻게 한다는 거죠?” 

“수업의 목표가 뭐예요? 발표를 잘하게 하는 건가요?”

“한 학기에 한 권을 읽는 것이 어떤 효과가 있나요?”

“가정에서는 뭘 준비해야 하죠?”

…… 
<한 학기 한 권 읽기>는 왜 하는 것이고,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수많은 물음표가 붙다보니 여러 전문가들의 다양한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생각을 나누는 게 핵심입니다.
그 과정에서 사고력과 발표력이 향상됩니다.” 

“반 아이들 모두에게 같은 책을 읽게 하면 안 됩니다.
 읽기능력에 따라 다른 책을 주어야 합니다.”

“읽을 책은 아이들 각자가 선택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에요.” 



자율적인 수업이기 때문에 그 어떤 답도 틀렸다고 할 수 없고, 그 어떤 답도 진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한 가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 수업의 효과가 선생님에 따라, 아이에 따라 천양지차가 될 거라는 점입니다. 


 잘못 활용하면 별 의미없는 쉬어 가는 시간이 될 것이고, 잘 활용하면 아이의 공부머리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수업이 될 테니까요. 실로 그렇습니다. 


<한 학기 한 권 읽기>엄청난 잠재력을 품은 수업 방식입니다. 


어떻게 확신하냐고요? 


 바다 건너 일본의 변두리 학교인 나다 학교의 사례를 통해 이미 증명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일본 최고의 명문 학교가 된 나다 학교의 사례는 <한 학기 한 권 읽기>의 위력을 짐작케 합니다.


나다 학교는 원래 지방 소도시에 있는 평범한 학교였습니다. 대도시 아이들에게 열등감을 가진, 종종 칼부림을 할 정도로 거친 아이들이 그 학교의 학생이었죠. 


그런데 이 평범한 지방 학교가 어느 날 갑자기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학교가 되었습니다. 나다 학교가 도쿄 대학교 합격생을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가 됐기 때문입니다. 우리로 치면 지방의 작은 학교가 쟁쟁한 특목고, 자사고를 다 제치고 서울대 진학률 1위를 차지한 셈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수많은 매스컴이 나다 학교를 취재하면서 밝혀진 남다른 교육법의 실체는 바로 다케시 선생의 나다 중학교(나다 학교는 초·중·고등학교로 이뤄져 있습니다) 국어 수업이었습니다. 그건 아주 이상하고 희한한 수업이었죠. 


다케시 선생의 국어 수업에는 교과서가 없습니다. 대신 <은수저>라는 소설 책 한 권으로 중등 3년간 국어 수업을 합니다. 중등 3년간 <은수저>를 읽고 또 읽고 또 읽습니다.  


한마디로 ‘한 학기 한 권’이 아니라 ‘3년 한 권’ 수업을 한 셈이죠. 


다케시 선생은 국어 교과서 대신 <은수저>라는 소설책 한 권으로 중등 3년간의 국어 수업을 했습니다.


이 이상한 수업이 도대체 무슨 효과를 발휘하길래 나다 학교를 일본 최고의 명문 학교로 만든 걸까요?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모두가 읽는다 

다케시 선생은 <은수저>를 부분 부분으로 나눠 수업 시간마다 조금씩 읽어오게 했습니다. 이 방법의 일차적인 효과는 책을 싫어하는 아이도 읽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소설책 한 권을 잘게 나누기 때문에 매주 읽어야 하는 독서량의 부담이 거의 없죠. 낙오자 없이 모두가 읽고 이해한 채로 수업 시간에 들어옵니다. 나다 학교 학생들은 교과서보다 언어 수준이 높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훈련을 한 셈입니다. 

 

2. 읽은 부분을 톺아본다 

수업 시간에는 읽어온 짧은 분량을 한 문장 한 문장 샅샅이 살펴보면서 의견을 나눕니다. 사소한 표현부터 등장인물의 심정, 상징, 소설 속에 등장하는 옛 풍속까지 그야말로 모든 요소를 이 잡듯이 뒤집니다. 심지어 소설에 등장한 음식을 수업 시간에 먹어보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전혀 다른 차원의 독서를 하게 됩니다. 일반적인 독서가 조립된 시계의 겉을 보는 것이라면, 이렇게 톺아보는 독서는 시계를 해부해서 속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냥 읽었을 때는 도저히 생각해볼 수 없는 책의 요소들을 발견하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수업이 곧 ‘사고의 양이 극단적으로 많은 독서’, ‘책의 요소요소를 읽어내는 방법을 깨우치는 독서’를 하는 시간이었던 셈입니다. 

 

3. 한 달에 한 권 자유 독서를 한다 

깊이 있는 독서의 경험은 독서의 질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립니다. 수업을 통해 깊이 있는 독서를 해본 아이들은 다른 책을 읽을 때도 소설의 요소요소를 더 깊고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사고량이 발생합니다. 이 사고량이 아이들의 언어능력, 즉 공부머리를 끌어올립니다. 


실제로 다케시 선생은 학생들에게 수업 중에 읽는 <은수저> 외에 한 달에 한 권 자유 독서를 하게 했는데, 이 한 권 한 권의 독서의 깊이가 학생들의 언어능력을 엄청나게 끌어올렸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다케시 선생의 제자들은 그 언어능력의 힘으로 명문대에 진학했고, 더 나아가 고위 공무원, 유명 문학가, 대학 총장, 정치인, 대깅버 임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공부란 결국 교과서라는 책을 읽고 이해하는 행위입니다.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잘 활용하면 이 읽기능력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다케시 선생의 수업을 통해 아이들은 <은수저>라는 책을 뼛속까지 이해하는 독서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은수저>라는 책을 잘 이해하게 되었을 뿐일까요? 

아닙니다. 아이들은 <은수저>라는 책이 가진 언어 수준을 자신의 언어 수준으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은수저>라는 책을 뼛속까지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 그것도 문장 하나 단어 하나의 의미를 곱씹으며 읽을 줄 아는 아이가 중학교, 고등학교 교과서를 읽는다고 생각해보세요. 


기초가 얼마나 탄탄하냐를 떠나서 그 아이의 공부를 못하는 것이 이상한 일입니다. 

나다 학교의 성공 사례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한 학기 한 권 읽기>는 4개월 책 한 권을 읽는 ‘슬로리딩’입니다. 이제 막 시작되는 제도다 보니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게 되겠지만 이 수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성과는 명백합니다. 

 

느리고 꼼꼼한 독서를 통해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


 이 목표를 잊지 않고 수업을 계획하고 진행한다면 <한 학기 한 권 읽기>는 엄청난 성공을 거둘 것입니다. 


물론 그런 성과를 거두기 위해 가정에서 준비할 수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 부분은 다음에 연재에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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