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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독쌤 Jul 05. 2018

초등 우등생 90%는 왜 몰락하는가?

상급 학교에 올라가면서 성적이 떨어지는 이유

병호는 모든 면에서 뛰어난 아이였습니다. 학교 성적은 평균 95점 이상에, 운동을 좋아하고, 매 학년 학급 임원 자리를 놓친 적이 없으며, 6학년 때는 전교 회장도 지냈습니다. 사교육을 꾸준히 받은 덕분에 영어, 수학의 기초도 탄탄했습니다. 공부, 운동, 리더십을 다 갖춘, 말 그대로 ‘엄친아’였죠. 당연히 부모님의 기대도 아주 컸습니다.

“특목고 진학을 생각하고 있거든요. 특목고 가려면 성적도 성적이지만 교내 수상 내역도 중요하잖아요.”  

저를 찾아온 것도 특목고 진학에 필요한 글짓기상이 목적이었습니다. 저는 병호와 짧은 면담을 했습니다. 병호는 책을 즐겨 읽는 편이 아니었지만, 국어 성적은 늘 90점 이상이었습니다. 가장 낮은 성적은 5학년 2학기 때 받은 평균 88점이었는데, 6학년이 되고 나서는 다시 96점으로 성적이 올랐다고 하더군요. 주말을 제외하고는 매일 학원에 다녔습니다.  

튼튼한 기초를 닦은 수많은 초등 우등생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급격한 성적 하락을 겪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면담을 끝낸 후 병호에게 기초언어능력 평가지를 주었습니다. 기초언어능력 평가지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영역을 초등 5학년~중등 3학년이 볼 수 있도록 수준을 낮춘 평가지입니다. 결과는 58점. 초등 5학년 수준이 나왔습니다. 

“초등 5학년이요? 병호가요?”  

병호 어머니는 당혹한 빛을 감추지 못하셨습니다. 뛰어난 아이니까 언어능력도 또래 평균보다 당연히 높을 것으로 생각하셨던 겁니다. 사실 병호 어머니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부모님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초등 우등생 중에는 자기 연령 적정치보다 낮은 언어능력을 가진 아이가 많습니다.

저는 병호 어머니께 중학교 진학 후 병호의 성적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이의 언어능력이 적정치 이하라는 점, 사교육 의존도가 높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3개월 후 병호는 중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봤습니다. 평균 72점. 영어, 수학만 간신히 80점을 넘겼고 나머지 과목은 모두 60~70점대였습니다. 그리고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성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모든 면에서 뛰어났던 병호가 평범한 성적의 중학생이 된 겁니다.



성적의 미래를 결정짓는 절대 요소


초등 우등생 10명 중 7~8명이 병호처럼 성적이 떨어집니다. 특정 시기가 되면 회귀하는 연어 떼처럼, 때가 되면 찾아오는 장마철처럼 매년 반복되는 집단적인 현상이죠. 지금 초등 우등생인 우리 아이가 중학교에 가서도 우수한 성적을 유지할 확률은 20~30%에 불과한 셈입니다.

튼튼한 기초가 우수한 성적을 보장해줄 거라는 세간의 믿음은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집니다.  튼튼한 기초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아이들 성적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일까요?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
언어능력


읽기능력, 즉 언어능력은 영어 실력, 수학 실력처럼 수치화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능력입니다.


보통 읽기능력, 언어능력이라고 하면 막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읽기능력 역시 영어 실력이나 수학 실력처럼 점수로 수치화 할 수 있는, 매우 구체적인 능력입니다. 초등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언어능력 평가를 실시해보면 이 능력이 얼마나 정확하게 수치로 측정되는지 확인할 수 있죠.

언어능력 평가 점수가 높은 아이는 중학교에 가서도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거나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 낙폭이 미미합니다. 반면 언어능력 평가 점수가 낮은 아이는 낮은 그만큼 큰 폭으로 성적이 떨어집니다. 10여 년 간 언어능력 평가를 해본 바에 따르면 이것은 100%에 가깝습니다. 제가 병호의 성적 하락을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은 뭔가 대단한 통찰력이 있어서가 아닌 겁니다. 언어능력 평가 점수가 낮은 아이들 대부분이 큰 폭의 성적 하락을 겪더라는 통계적 지식을 이용한, 지극히 기계적인 해석을 한 것뿐이죠. 그리고 이 기계적인 해석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언어능력이 낮지만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한쪽 다리가 없지만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만큼이나 터무니 없습니다.

제아무리 많은 지식을 쌓아도 교과서를 스스로 읽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공부를 잘할 수 없습니다. 


언어능력이 학습에 끼치는 절대적 영향은 교과서를 읽혀보면 즉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학교 진학 후 성적이 떨어진 아이에게 아직 진도가 나가지 않은 교과서의 한 부분을 읽은 후 설명해달라고 해보면 됩니다. 백이면 백, 설명은커녕 읽고 이해하는 것조차 힘들어합니다. 설사 설명을 한다 하더라도 구체성이 떨어지고 부정확하죠. 뛰어난 영어 실력과 몇 년 앞서는 수학 선행 학습을 한 이 똑똑한 아이들이 정작 자기 학년의 교과서는 읽고 이해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 즉 초등 열등생이었다가 중학교에 올라가서 성적이 수직 상승한 아이에게 똑 같은 과제를 주면 어떨까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너무나 간단하게 한번 읽고 술술 자세히 설명해냅니다. 

전자와 후자가 중학교 시험 기간이 되어 공부를 합니다. 누가 승자가 될까요? 386 컴퓨터와 최신형 컴퓨터의 차이만큼이나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읽고 이해하는 능력, 공부머리의 차이입니다. 

초등학생 때는 교과의 모든 것을 일일이 설명해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언어능력이 낮아도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설명해주기가 힘들어집니다. 교과서가 많아지고, 두꺼워지기 때문이죠. 


초등 성적은 엄마 성적
중등 성적은 학원 성적
고등 성적은 학생 성적


상급 학교에 올라갈 때마다 발생하는 큰 폭의 성적 변동은 결국 아이의 성적이 아이의 언어능력에 맞춰지는 현상에 다름 아닙니다.

공부는 교과서라는 책을 읽고 이해하는 행위입니다. 읽고 이해하는 능력 없이 성공적인 학업을 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수학, 영어 실력을 기르듯, 아니 그 보다 더 아이의 읽기 실력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일주일 3시간 독서


책과 함께 아이의 마음이, 공부머리가 자라는 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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