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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독쌤 Jul 12. 2018

공부, 기초가 약하면 정말 뒤처질까?

공부기초 이론의 함정

며칠 전, 고등학생 제자가 시험 끝났다고 놀러왔습니다. 초등 4학년부터 중등 3학년까지 저와 함께 책을 읽었던 아이인데, 전교 20~30등 정도로 공부를 꽤 잘하는 편입니다. 제가 그 녀석만 보면 농담처럼 하는 소리가 있는데요.

"어릴 땐 그렇게 속 썩이더니 용됐네, 용됐어."

지금이야 전과목 성적이 골고루 좋은 우등생이고 공부도 열심히 하지만, 초등학생 때만 해도 세상 없는 장난꾸러기에 말썽꾼이었거든요. 초등학생 시절 내내 성적은 50~60점을 오갔고,  사고는 또 어찌나 많이 치는지 어머니께서 한 학기에 한두 번은 학교에 불려가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전교 20~30등을 오가는 우등생으로 멀끔하게 잘 자랐으니, 참 격세지감이지요.




지난 번 연재에서 말씀드렸듯, 초등 우등생 출신 상당수는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큰 폭의 성적하락을 겪습니다. 하락의 폭과 규모가 생각보다 커서 매년 겪는 일인데도 볼 때마다 어안이 벙벙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상급 학교로 진학하면서 성적 역주행을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만나는 아이들의 숫자가 제한적이어서 성급히 일반화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제 경험상으로는 성적이 낮은 아이 10명 중 1~2명 정도가 급격한 성적 상승을 보여줍니다.

희한한 점은 성적이 찔끔찔끔 완만하게 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평균 50~60점을 오르내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평균 90점대로 단번에 올라섭니다. 어찌나 급격한지 옆에서 지켜보면 소름이 쭈뼛 돋을 정도입니다. 

참 이상하죠? 평균 50~60점을 오간다는 것은 기초가 지극히 부실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부실한 기초를 짧은 시간 안에 극복하고 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는 걸까요? 기초가 튼튼한 아이들도 죽죽 미끄러지는 판국에 말입니다.


 

부실한 기초를 뛰어넘는 힘 

한번 성적이 뒤처지면 따라잡기 힘들다는 것이 공부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시각입니다.

초등학생들이 달리기 경기장 출발선 위에 서 있습니다. 신호탄이 울리자 아이들이 달리기 시작합니다. 트랙 위에 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초등 1학년, 2학년, 3학년...... 초등 4학년 지점을 지나는 순간 남자아이 하나가 그만 넘어지고 맙니다. 그새 다른 아이들은 저만치 앞서 달려갑니다. 남자아이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앞서가는 친구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런 문구가 떠오릅니다.

"초등 4학년, 기초가 중요한 때입니다."

오래 전에 있었던 학습지 TV 광고의 한 장면입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기초를 탄탄히 쌓지 않으면 따라잡을 수 없다는 협박 아닌 협박이 담긴 광고였습니다. 이것이 공부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시각입니다.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뒤처지게 된다


너무나 당연한 이 논리가 우리 사회의 교육 풍경을 만듭니다. 초등 저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전국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원을 전전합니다. 성적이 낮은 아이들은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성적이 높은 아이들은 미래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총력을 다합니다. 그 결과 수많은 초등학생들이 중학교 과정까지 마스터한, 난공불락에 가까운 기초를 다집니다. 그런데 상급 학교로 진학하면서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이 벌어집니다. 튼튼하기 짝이 없는 기초를 쌓은 아이들의 성적이 모래성처럼 맥없이 허물어지는 경우가 셀 수 없이 많은 것입니다.  반대로 형편없는 기초를 가졌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성적이 수직 상승하는 아이도 상당히 많이 등장합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막연한 상식과 달리 기초를 극복하는 것이 생각만큼 어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어능력이 높고 의지만 굳건하다면 교과 공부에 필요한 기초 지식은 짧은 시간 안에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습니다.




초등 1학년이 덧셈 뺄셈을 배우는 데는 1년이 걸립니다. 고등학교 1학년은 어떨까요?


수학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초등 1학년은 1년 내내 더하기 빼기를 배웁니다. 더하기 빼기라는 연산 논리를 이해하고 습득하는 데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1학년 아이의 평균 사고력, 그러니까 언어능력이 그 정도 수준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만약 어떤 고등학교 1학년 아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수학에 관한 지식만 모두 잊어버려서 더하기 빼기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면 어떨까요. 이 학생이 더하기 빼기를 완벽하게 배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분도 채 안 될 겁니다. 고등학교 1학년의 언어 수준에서 더하기 빼기는 쉬워도 너무 쉬운 연산이기 때문입니다. 초등 1학년에게는 1년 간 갈고 닦아야 하는 교과 학습량이 고등 1학년에게는 5분이면 습득할 수 있는 단편적인 지식에 불과합니다. 

더군다나 모든 과목이 이런 식의 기초를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초등 6학년 과학 지식이 없다고 해서 중등 1학년 과학 공부를 못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수학 외의 과목들은 기초가 부족해도 교과서만 충실히 이해하면 얼마든지 만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상 아이들의 성적에 기초가 미치는 영향은 지극히 제한적인 것입니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 갑자기 성적이 오르는 아이들이 이런 사실을 증명합니다.


유명한 예를 한번 들어볼까요?

초등학교 성적이 중학교 성적을 떠받치고, 중학교 성적이 고등학교 성적을 떠받칠 거라는 믿음은 손쉽게 배신당합니다. 


“뛰어난 독서가이지만
독서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학교 공부에 의욕이 없고,
목적을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때로는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 


 스티브 잡스의 초등학교 성적표에 적힌 평가입니다. 잡스는 초등 3학년 때까지 상습적으로 학교를 빼먹는 문제아였습니다. 당연히 학교 성적도 나빴죠. 교과 지식의 관점에서 보자면 잡스는 형편없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런 잡스가 달라진 것은 초등 4학년 때였습니다. 담임이었던 힐 선생님의 배려와 관심이 잡스의 마음을 움직인 덕분입니다. 잡스는 힐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고,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우등생으로 변신했습니다.

 



잡스의 학습능력에 깜짝 놀란 힐 선생님은 잡스에게 ‘수학능력(학문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 평가’를 받게 했습니다. 잡스의 수학능력은 고등 2학년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초등 4학년이었던 잡스는 고등 2학년 교과서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능력을 가졌던 겁니다. 고등 2학년 학생이 초등 4학년 교실에 앉아있었던 셈이니 다른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잡스는 ‘사기 캐릭터’였던 거죠. 잡스가 이런 수준의 언어능력을 갖게 된 이유는?

 

두 말할 것도 없이
‘독서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
덕분입니다.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야말로 반드시 갖춰야 할 기초입니다.

 

공부를 못해도 언젠가는 성적이 오를 수 있으니 무턱대로 아이를 놀게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이가 쌓아야 할 진짜 기초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뒤늦게 성적이 오르는 아이의 공통점은 높은 언어능력입니다 
뒤늦게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들의 공통점은 낮은 언어능력입니다 
10여 년 간 수치로 확인해 온, 의심의 여지 없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진짜 기초는 교과 지식이 아니라 '읽고 이해하는 능력' 언어능력입니다. 그리고 이 능력을 기르는 가장 합리적이고 쉬운 방법은 책읽기죠.  이제야 본론 앞으로 왔습니다. 다음 연재부터는 본격적으로 독서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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