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행복한가?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걸까?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의 이름을 붙여보고 어떤 건지 아는 것도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하루를 시작할 때 행복한 날 되세요~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시작한다.
순간의 찰나마다 행복의 감정을 느끼는 날이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행복을 선택하는 것도 내가 하는 것이고 기준도 나에게 있다. 행복이라는 느낌은 불행해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온전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결혼을 일찍 한 난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았다. 사랑이 무엇인지 집착이라는 의미가 어떤 건지 모르고 욕망 하나만 가지고 소유하려는게 사랑인 줄 알았다.
나이 드신 분들이 농사를 짓는 모습에 도와드려야겠다는 맘으로 주말이면 시댁에 가고 임신 8개월 때도 허리를 굽혀 고추를 땄었다.
고추는 한여름이 되어야 빨갛게 익는다.
고추를 따는 시기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더위와 허리의 고통과 함께 수확을 한다.
" 나는 밭일하다가 아이도 낳았다"
고작 임신해서 고추 따는 일이 무슨 대수로운 일이냐는 듯 본인이 시집와 고생한 일들을 이야기하시는 어머님.
어느 날은 둘째는 임신 중이고 큰애도 아파있고 시댁에 가는 게 너무도 싫었다.
힘들다고 이번 주는 쉬면 안 되겠냐는 말에 밥상이 날아오고 화를 내는 남편의 모습에 어쩔 수 없이 동행을 했다.
고추를 따고 들어와 점심상을 차리는데
큰애가 안방에서 신음소리가 나서 들어갔더니
얼굴은 새까맣게 변해있고 고열로 혼자 시달리던 큰애는 책에서나 나오는 심한 경기를 일으켰다. 입엔 하얀 거품이 가득했고 온몸은 파랬다
깜짝 놀란 난 얼른 아이를 옆으로 눕히고 거품이 목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고 물수건으로 등을 쓰다듬기를 팔이 아픈 줄도 모르고 했었다.
다행히 열이 떨어지고 온몸이 파랗고 쓰러져가던 아이는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때 내 나이 서른도 되지 않았을 때인 듯하다.
둘째 출산 예정일인 주말까지도 시댁에 갔었다.
고추를 따기 위해선 여름휴가도 반납을 해야 했다
행복한 삶이란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겐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고 밝게 웃는 모습을 보는 일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키웠던 아이들이 지금은 모두 성인이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전전긍긍했던 시간들이 이젠 온전히 나의 시간이 되었다.
그 시간에 책을 읽고 주말이면 영화나 미드를 보고 날씨가 좋은날은 갤러리 카페와 전시관을 간다. 행복은 내가 찾는 것이기도 하지만 만들어 가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 하루를 온전하게 살아내기에 바빴던 날들이 있었다 그땐 행복이 이런 걸까? 행복한 삶이 뭘까? 질문을 해보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간은 고요하고 오늘을 밝히기 위해 해는 서서히 떠오르며 잔잔한 파도와 <그리그의 페르귄트 중 솔베이거>의 음악이 흐르고 있다.
모닝페이지를 하는 이 시간, 내인생의 음반을 만들어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회상하며 흐뭇해하는 모습을 그려 본다. 이게 행복한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