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 너무너무 힘들었어
하루하루가 빨리가 버리고 죽음이라는 목표지점은 어디까지 가야 있는지 숨쉬지 않고 내리 달리고 싶었어.
눈을 뜨는게 너무나 싫었어.
번지점프를 하기 전 난 아이를 잃었던 마음으로 혼란스러웠어 죄책감도 있었고 낳기 싫은데 시어버지의 강요로 아들은 있어야한다는 말에 고민끝에 아이를 가졌었어
날새고 당구치고 들어오고 낯선여자들에게서 메세지가 오고 하는 그런 결혼생활이었는데 늦둥이가 생기면 달라질수 있다는 주변 사람들 말도 영향을 받았던거 같아 미쳤지 모든 걸 내려 놓고 싶었어.
그렇게 또 참고 참고 10년을 더 버텼어
난 희생했고 참았고 견디어 냈는데도 나에게 돌아오는건 비난뿐이었어 그것도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 나에게 등을 돌리고 힘들어하는 걸 몰라줄 땐 외상후 트라우마가 더 크듯 그게 더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어
나한테 있는 것 모두 다 줘버리고 내게 남아있는 옷가지 몇개만 가지고 나왔는데 정말 밑바닥이었는데 내가 그토록 참고 견디며 희생했던 난 사라져 버렸더라고
그동안 살면서 아무것도 없이 어떻게 나올수 있냐하는 조롱섞인 말뿐이었어
넌 친동생에게 미친년 소리 들어봤어?
그것도 내가 대학시절부터 같이 데리고 있었고 첫아들을 낳았을때 몸조리 해주고 밥해주고 승마하다 떨어져서 병원에 입원해 있을때도 주말이면 찾아갔어.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기때문에 난 내가 친정엄마 역할을 해야한다는 마음이었어. 동생이 힘들다하면 곧장 달려가 냉장고 청소부터 집안 청소까지 했었어.
그게 큰딸이니까 해야하는 것인줄 알았지.
캐나다에 공부하러 가며 놔두고 간 차에 책임보험 넣어달라는 심부름을 했을뿐인데 …
내가 잘못 산건 힘들어도 힘들다 소리 않고 살았던 거 같아. 첫아이 임신 5개월때 애아빠는 사경을 헤매고 있었어.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수 없어서 시어머니 될사람에게 전화 했더니 “소는 어떻게 하고 올라 가냐” 라는 말씀 한마디였어
강간으로 인해 결혼을 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을 어떻게 해. 반대했던 결혼을 했는데 첫아이의 진통이 있는날도 난 엄마에게 전화를 못했어.
너무나도 아팠지만 엄마도 나를 이렇게 낳았는데 참아야지. 그렇게 분만실을 나오는데 시어머니 목소리가 들이더라
“딸이다” 툭 내던지듯 뱉어내는 말,
그때 내나이 23살이었어.
둘째때도 난 엄마에게 전화안했어
바로 옆에 누워있는 남편도 깨우지 않고 반입식 부엌에 혼자 쭈그리고 3시간여를 진통을 하고 같은 동네 사시는 작은 형님한테 전화했어
“삼촌은 어쩌고 동서?”
“자고 있어요”
작은 형님이 오고서야 남편은 일어나고 바로 산부인과에 가고 한시간 만에 작은 딸을 낳았어
“이렇게 피부가 새하얀 아이는 처음이에요”
간호사들이 예쁘다고 하더라.
이 글을 쓰는 내내 참 바보같이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난 남편이 보기엔 아주 쉽게 딸둘을 낳았고 수월하게 키워낸 여자 였어.
엄마에겐 한없이 서운한 딸이였지.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해도 돼.
너도 너무 참지 않았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