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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 Jerk Oct 14. 2015

담 너머 옆집에는 누가 살길래

엄친아

적량불변의 법칙

우리의 생을 고통스럽게 하는 이들은 질량불변의 법칙을 따른다. 전학을 다니고 이직을 해도, 시도군구를 옮겨 이사를 가도 어딜 가나 일정한 수의 적은 반드시 나타난다. 이걸 적량불변의 법칙이라 하자. 내 공을 채가는 얌체류부터 툭하면 삐지고 쫌스럽게 구는 밴댕이류까지 종류도 갖가지인데, 그 피라미드의 최상위 포식자를 꼽자면 그건 엄친아(딸)일 것이다. 엄마 친구 아들. (이 씨ㅂ... 아오..)


고전이지만 진리
대동단결


엄친아특수성이론

엄친아(딸)는 다른 적들과 매우 다른 패턴으로 멘탈을 공격하는데, 이는 몇가지 특수한 조건에서 기인한다.

i. 공격의 주체가 아니다
i. 인성에도 결함이 없다
i. 절대 비교 우위에 있다

공격의 주체는 부모님, 선생님, 애인이다. 그들은 연가시가 조종하듯 나의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동원시킨다. 내가 아무리 맹렬히 저항해도 우리가 싸우는 건 나의 사람들일 뿐이다. 엄친아는 과연 험한 말 한 번 안 쓰고 우리를 공격한다.

엄친아를 완성하는 화룡점정은 그들의 바른 심성이다. 사려 깊고, 가정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우아하고, 겸손하다. 그때매 우리는 이들을 적 리스트에 올리는 데에 매우 애를 먹는다.

그들은 여러 면에서 속속들이 우월하다. 심지어 외모까지 우월하기도 하다. 3.1절을 삼쩜일로 읽는 연예인만 봐도 잠깐이나마 공평해 보이던 세상은 엄친아를 통해 우리에게 가차없는 불공평을 가르친다. 우리는 그들을 비난할 명분이나 방법이 없다. 그들을 매질하는 것은 '난 패배도 인정 못하는 버러지요.'를 입증할 뿐이다.

위 세가지는 우리에게 분노할 힘마저 뺏어가는 요소다. 우리는 그렇게 선량한 적에게 연승을 안겨주는 흉측한 잉여생명체가 된다.

싸움까지 잘하면 어쩌란거냐



엄친아의 재료

엄친아라는 용어는 우리말에서 두드러지는 존재다. 즉 우리 문화권에서 도드라지는 존재다. 영어로도 Mr.right/Mr.perfect(여자는Mrs.)정도 표현만 보인다. 있는 그대로 완벽한 존재지, 비교하고 서열을 자극하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이것을 담장문화에서 원인을 찾는데, 좀 더 직관적인 표현으로 하자면 비교문화다. 낮은 담장을 끼고 마주 살아온 우리 문화를 상징하는 말이다. 한국의 주거경계는 논, 성벽이 아니라 담장이었다. 담장은 고개만 내밀면 옆집 닭이 알을 몇 개 깠는지, 뒷집 율곡이 과거에 붙었는지 알 수 있을만큼 낮다. 여기에 유교식 문인중심 출세주의가 더해지면서,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오만 관심을 가지고 출세가도를 비교하는 것이다.


엄마가 동창회만 갔다 오면 싸하다..

엄친아에서 중요한 걸 놓쳐서는 안 되는데, 바로 "엄마"와 "친구"다. 두 분만 빠져주면, 그 녀석과 나는 썩 잘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엄마와 친구를 통해서 서로에게 꽃이 된 관계이기에 나의 선한 의지로 어쩔 수 없는 의미로 다가온다. 왜 엄마는 친구를 만나러 가서 달갑지도 않을 자식 이야기를 나눠가지고.



엄친아상대성이론

하지만 언제인지 엄친아라는 고유명사가 개발된 후로 흥미로운 고백이 줄을 이었다. 고졸인 얘도 대졸인 쟤도 석사도 박사도 엄친아 때문에 이를 갈고 있단 거였다.

엄친아에게도 엄친아가 있다. 얘한텐 쟤가, 쟤한텐 걔가 스트레스를 주고 있단 거다. 끝없는 엄친아의 먹이사슬 같은 게 이어진다. 누가 오야붕인지 엄친스타K라도 열어야 할 판. 나의 학창시절을 아작낸 그 엄친아가 변방의 또다른 엄친아로부터 고통받고 있었을 생각을 하니 설움이 녹아 버리고 고소함이 남는다. 암튼 그 얘긴, 믿기 힘들지만 나도 누군가의 엄친아일거라는 거다. 나때매 분기탱천해서 밤잠 못잔 누군가도, 있었다.

결국, 모두는 피해자인 동시에 모두의 가해자였던 셈이다. 단지 불행을 심어주기 위해 동원된 허울 좋은 허수아비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이 점을 인식하고 나면, 엄친아가 좀 산뜻하게 들린다. 친구도 먹어볼 수 있을 거 같고, 상담해봐도 으시대며 짜증나게 굴지도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언젠가 가까운 시일에 엄친아 엄친딸의 이야기가 들려오면, 연락처라도 받아서 만나 술이라도 한잔 기울여 보자. 동창회에 모여 고작 자식 얘기밖에 할 화제가 없던 엄마의 삶이라는 비극을 공유하며 효자되길 다짐하게 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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