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ok Jerk Oct 14. 2015

"우리"는 안녕한가요

무리, 집단소속감

학교, 학과, 직장, 세대, 성별, 나이...  
의지와 유관무관하게 사람은 무리에 속하게 되곤 하는데. 집단은 개인을 품는 대가로 개인의 희생으로 충성심을 증명하길 요구하거나 소속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어 행동하기를 요구한다. 남자답게, 직장인의 품위, 어른스럽게... '우리'라는 이름의 무리의 폭력이다.


답게. 답게 행동해라.
그게 '우리'가 되는 거다.


대기업 매스게임 클라스, 오지구요~


일찍이 개인으로서 존중받아 보지 못한 대다수의 얘기다. 소중히 대접 받고 싶으면 쎈 쪽에 소속돼야 한다고 배운 우리들 얘기다. 인터뷰 허가를 하나 따려 해도 어떤 언론사에 다니는지에 따라 명암이 갈린다. 간판의 이름은 그만큼 중요하다.

무리 밖 어딘가에 떨어져 있거나, 여러 무리에 몸담고 필요한 것을 취사선택 하는 사람들을 두고 회색분자, 박쥐, 기회주의자, 이기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래서 우리는 어딜 가나

이쁘거나 못 생겼고,

여당 또는 야당이고,

왕자이거나 거지이고,

루키 아니면 퇴물이다.

빠르게 판도를 읽고 우쭐대거나 굽신댈 스탠스를 정해야 한다.

실제로 유리한 그룹에 끼게 된다는 건 짜릿한 일이다. 얼마나 좋아, 다들 엄지척 굽신굽신. 내 생각, 감정 내키는 대로 휘둘러도 늬예늬예. 내가 승자처럼 날뛰는데, 패자가 자신의 처지를 패자로 받아들일 수밖에 더 있나? 좀 더 관대하게 굴어 나를 존경까지 하게 만들면...? 관계의 보이지 않는 폭력성은 패자에게 승자의 꿈을 품게 만든다. 그건 분야라거나, 재능, 꿈을 초월한다.


재능이고 꿈이고 알 게 뭐야.
일단 출세하고 자리만 잡으면,
그 담엔 하고 싶은 게 뭐든 할 수 있잖아?


이런 걸 두고 꿈이라고 부를 수 없다.
꿈은 폼 나는 게 아니라 품위가 있어야 한다.

김밥장사도 품위가 있을 수 있는가 하면

재벌이라도 폼만 잔뜩 차 있을 수 있다.

이건 단지 눈 멀어 길 잃은 야망이다.


기준과 무리를 거부하면,  일단 불리한 그룹에 예편된다. 혹은 아웃사이더로 낙인 찍힌다. 자꾸 찝찝스럽게 주변에서 염려와 잔소리가 자꾸 너는 작다, 작다 한다. 무리에서 주는 혜택 패키지를 늘어 놓으며, 상생의 미덕을 찬양한다. 그럼 난 쪼그만 개인 주제에 세상 만만히 보고 저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처럼 되어 있다. 지들만 위할 줄 알고 똘똘 뭉치는 못된 무리라도, 무시하고 사는 건 쉽지 않다.


형편이 나름 괜찮은 사람은
기준과 무리를 거부해도
수치스럽지 않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건 밑에서 올려다 보는 우리의 착시이고,
거대한 집단이 개인을 보는 시선은 녹록찮다.
3선 국회의원이 보기엔 1선 의원이 한심하고
쩜오 언니가 보기에는 텐프로 동생이 안쓰럽고
서울에선 신사동이 구로동을 동정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사실, 성공에 가장 가까이 갔던 사람일수록 낙오가 더 쓰라리고 잔혹하다.

어느 대졸 비정규직이 일터에서 내동댕이 처져도, 여전히 그를 부러워할 고졸 중졸 일용직 노동자들은 존재하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으로 위로 삼기 쉽지 않는다는 거다. 내가 널부러진 사이 복닥복닥 올라가는 동료들의 등만 보인다. 수치심이 주는 공포심은 그런 거다. 내가 어느 경주에서 왜 뛰는지 생각할 여유도 없게. 소속된 무리에서 이탈해서 튀고 싶지 않은 기분.

남들이 이쁘다 하는 아이유 설현을 같이 오구오구 해주고, Maroon5, Bruno Mars는 들어줘야 썩 대학생답게 보일테고, 캐리비언 베이, 휘팍, 빕스는 가줘야 현대인이고, 중요한 날 적당한 백과 유행하는 구두가 없으면 누추한 것 같다. 아무도 안 알아주는 학과, 사업, 브랜드, 뮤지션, 영화엔 나도 선뜻 맘이 안 간다. 맘이 가도, 돈이고 시간이고 들이려면 망설여지고 이내 맘도 사라지고 만다.


무리에서 떨어져 지내면서도 빈궁하거나 누추하지 않으려면, 자기만의 철학, 신념, 취향이라는 강한 동력이 있어야 한다.
돈이 나빠? 성공이 나빠? 욕망에 충실한 게 나빠? 솔직한 게 나빠? 해가며 본능과 욕망을 두둔하는 사람은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터널 속만 달리는 기관차 같다. 기차여행의 의미는 차창 밖 풍경에서도 발견되는 법이다. 목적지에 하차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건 아름다운 것을 쫓을 때 가능한 거다. 아름다움을 목말라 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아름다움을 닮을 수 있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름다움을 '맹추격'해도 닮기 어렵단 걸 알고 있다.

자기만의 가치를 고민하고, 해가 갈수록 무게와 향이 더해가는 법을 우리는 고작 윤리 교과서의 한토막 만큼만 배웠다. 철학하는 법도, 아름다움도 모르는데, 무슨 자신감으로 우리가 성공/실패 이분법의 경기장을 떠날 수 있을까? TV도, 신문도, 페이스북과 트위터도 무리를 거부한 개인은 결국 패배했다고 이야기한다. 한 인간으로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관심도 없고, 믿어주려 하지도 않는다. 지금 그 사람 사업 잘 된대? 얼마 번대? 행복하다 말해도 패배를 합리화하는 자위 같은 거겠지 하고 지레짐작할 뿐이다. 성공하고, 일단 성공하고서 '행복은 통장 수가 아니잖아요' 떠들어란 말이다.



세계적 관점에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민족이 잘하는 게 이런 거란다. 일중독 문화, 직장내 음주 문화, 성형수술 문화...진심으로 우리가 원해서 만든 것들이 아닌 문화. 홀로 버려지기 두려워서, 무시 당하는 무리에 들까봐 결국 고른 선택지들. '야ㅋㅋㅋ ㅂㅅ들, 그거 오해야.'라고 변명하기 멋쩍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런 대한민국의 거대한 현실을 초월할 힘이, 조그만 나와, 당신에게, 있는가, 말이다.




"내겐 그게 완벽한 조건이었어요.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이고 내가 존중하고 존경하는 감독이기도 했죠.
 그런데 왜 내가 돈 때문에 다른 일을 해야 합니까?"

"얼굴 깊은 주름이 패기 시작했다고요? 그게 어때서요? 내가 걸어온 삶인데."

"난 구식의 사람이다. 난 술배가 나온 노인이 되어, 베란다에 앉아 호수 따위의 것들을 보길 원한다."
"I'm an old-fashioned guy. I want to be an old man with a beer belly, sitting on a porch looking at a lake or something."

"저는 수년 동안 잡지 하나 안 읽었어요. 봐도 누가 누군지도 몰라요. 누가 상을 받고 못 받았는지도 모르고요.업계 일도 아는 게 없어요.
그리고 저는 정말, 진심으로 행복합니다."
"I haven't read a magazine in years. I don't know who anybody is. I don't know who's winning awards or not winning awards. I don't know anything about the industry.
And I'm really, really happy."
조니 뎁(Johnny Depp) 1963~
매거진의 이전글 담 너머 옆집에는 누가 살길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