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ok Jerk Nov 05. 2015

여기 사람 있어요

지금은 관종시대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이건 심각하고 강력한 대전제다. 무려 홀로 생활하는 사람이라도 어떤 무리의 일부로서 살아가야 한다. 무인도에 버려진 로빈슨 크루소도 배구공에 '프라이데이'라는 인격을 허구로 입혀 소통한다. 사람은 연결의 느낌이 있을 때 안정을 찾는다. 타인을 통해서야 사람이라는 것을 견딜 수 있다.


개인화가 심화되는 현대에 모바일은 개인 간의 연결을 쉬우면서도 느슨하게 만들어버렸다. 까톡까톡, 몇 번 주고 받으면 안부와 용무는 끝난다. 좋아요, 쿡쿡 누르면 친하게 지내는 듯도 하게 된다.

그와중에 읽씹/안읽씹 당하는 이가 있다면

May the force be with you..


우리는 딱 필요한 만큼만 소통한다. 어느 한 쪽이 부담을 주는 경우를 민폐로 여기며, 허락하지 않는 사회가 됐다. 관심이라는 게 늘 상호호혜적일수만은 없는 법이다. 그렇게 소통의 저울이 한 편으로 기울어지는 순간 관계는 끝을 향해 간다.


하지만 타인의 관심을 모으고 호응을 바라는 일은 이제 (특히 온라인 활동의) 거의 전부가 되었다. 관심이 수치화 되는 건 디지털 시대에 가장 확실한 보상이다. 몇 회의 조회수, 몇 명의 좋아요, 몇 번의 공유. 이 브런치도 마찬가지다.


온라인에서의 관심은 꽤 편리한 구석이 있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오려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cropping이라고 한다.

사람들에게 관심과 격려를 받으면서도 나의 모든 생활을 들키지 않아도 된다는 건 온라인이 가진 큰 매력이고, 때문에 이 중독적인 관계가 꼴사나운 뉴스들을 전해주곤 한다.


한동안 여론의 뭇매를 맞던 일베의 사건들도 관심을 끌고 싶은 행동파들의 판단미스 때문에 생긴 사건들이다. 커뮤니티의 호응만 생각했지, 사회적 반감이나 피해자의 법적 대응을 미처 예측하지 못했디 때문에 행동제어가 되지 않았던 것.

유명한 젖병 사건

유튜브, 아프리카TV에선 이제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구가하는 유튜버, 유명BJ들이 거론된다. 미디어의 변화를 자신의 장점과 잘 접목한 이들이다. 물론 일부는 얼굴과 몸매를 파먹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채워지는 관심도 무시할 수 없는 생태계가 이미 구축되어 있다. 그들의 연수익은 수억에 이른다.


이제는 관종(관심종자)도 아주 흔한 말이 됐다. 관심을 끌려는 사람의 병적인 집착을 모두가 비웃는다. 하지만 관종심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사람이니까.




온라인에 드러난 이미지는 실제 삶과 연결이 끈끈하게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사람은 초조해진다. 들킬까봐. 남은 몰라도 자신은 알고 있다.

'나는 지금 거짓을 팔고 있다'


얼마 전 90만의 팔로어를 지닌 인스타그램 스타가 모든 SNS계정을 폭파해 이슈가 되었다.

주인공은 호주의 에세나 오닐(Essena O'neill).

그녀는 '사람들의 환상이 되는 데 성공했지만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 '이제 진짜 나, 본래의 나만 표현하며 살겠다'고 선언하고 이렇게 말한다.


"유행옷, like, 비키니, 싸이갭(thigh gap),
금발 머리가 없다고해서 남들이
'당신은 별로'라고 말하게 놔두지 말라"


(http://m.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4889)


건강하게 관종이 소비되는 방법은 "나도 소중한 사람이에요, 그렇게 대해줘요", "나 좀 봐줘요"라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다. 그 고백에 감응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노래 중에는 나의 존재를 선언하는 노래들, 존재를 주장하는 노래들이 있다. 이 노래들은 별 치장 없는 관심과 격려도 사람들에겐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수고했어 오늘도(옥상달빛)

요즘 너 말야(제이래빗)

여기 사람 있어요(중식이밴드)

여기 사람이 있어/무너진 건물 당신 발 밑에

타인에게 나를 봐달라 하는 말과 행동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맘을 호소하지 못하면 그것 역시 병이 된다. 관심을, 사랑을 건강하게 갈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왜곡된 나를 보아달라고 해선 안 된다. '나를 "어떻게"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단서 거는 것을 그만 두어야 한다. 날 보는 시선을 강요하거나 왜곡해선 안 된다.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으려 해서는 안 된다.

있는 그대로 봐달라 해야 하고,

있는 그대로가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할 것이다.


"홀로 있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 소통도 잘 한다"

는 말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꽤 설득력을 갖는 게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안녕한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