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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저널리즘 Aug 13. 2018

죽음을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65.《적당한 거리의 죽음》 기세호 저자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김세리 에디터입니다. 대학 시절, 저는 프랑스 남부에서 교환 학생 생활을 했습니다. 수업이 없는 날이면 주변의 도시나 파리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디를 가든 눈길을 끄는 풍경이 있었습니다. 묘지였습니다.


묘지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섬뜩한 기분이 듭니다. 아마도 글을 읽고 계신 독자분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실 것 같습니다. 함께 여행을 갔던 프랑스 친구들의 반응은 저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거리낌 없이 묘지에 들어서고 비석에 새긴 글귀를 읽으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느새 저도 당시 유행하던 노래를 흥얼거리며 묘지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장례식장을 두 번 다녀왔습니다.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에 어색해질 때마다 프랑스의 묘지가 떠올랐습니다. 우리도 일상에서 죽음을 돌아볼 공간이 있다면, 죽음에 대해 조금은 열린 태도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저널리즘 《적당한 거리의 죽음》을 쓴 건축학도 기세호는 죽음을 사유할 때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을 성찰하는 공간으로 도시 속 묘지를 이야기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시에 묘지가 없는 것을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묘지가 없다는 건 도시 안에 죽음을 다루는 방식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은 아무도 죽은 적이 없던 공간처럼 밝고 화려한 것들로만 가득하다. 서울은 거의 완벽하게 죽음을 지워버린 도시다. 대형 병원의 장례식장이나 종교 시설의 봉안당 정도만 눈에 띈다. 살을 맞대고 살던 가까운 사람도 죽는 순간부터는 멀리 유배를 보내듯 도시 바깥 봉안당 한편의 조그만 상자 속에 유폐된다. 그리고 1년에 한두 번 삶이 힘들어질 때나 찾는 존재가 된다. 죽음이 삶의 의미를 비추는 바탕이 되기 위해서는 일상성이 중요하다. 일상 속에서 만나게 되는 추모의 장소야말로 죽음과의 대면을 일회적 사건으로 끝내지 않게 해준다.


굳이 죽음을 사유해야 하는 이유가 뭔가?


죽음을 삶의 끝에 위치한 하나의 사건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삶 전체를 비추는 지평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죽음과 삶>에는 서로를 부둥켜안은 사람들과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이 함께 그려져 있다. 다채로운 색으로 표현된 사람들은 죽음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한 사람이라도 죽음을 응시했다면 그림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묘지가 죽음을 응시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빛으로만 가득한 공간에서는 그 소중함을 알 수 없다. 죽음에 대한 사유가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묘지가 많은 도시가 있나?


프랑스 파리에는 꽤 많다. 그중에서도 페르 라셰즈, 몽 파르나스, 몽 마르트르 등 3대 공원묘지가 가장 유명하다. 묘지인지도 모르고 발을 들이는 관광객이 많다고 하는데, 그만큼 도시와 잘 어우러지기 때문인 것 같다.


보통 묘지라면 쓸쓸하거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일 것 같은데.


파리의 3대 묘지는 역사가 200년쯤 됐는데 아직도 묘지로 기능하고 있다. 여전히 신규 매장을 하고 있고 화장장도 있다. 죽은 이들을 추모하러 오는 가족들도 많다. 동시에 일상적으로 이곳을 드나드는 시민들이 있다. 시민들은 묘지에서 산책을 하고 데이트를 하고 춤을 춘다. 가만히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 파리의 묘지는 단순히 비석만 세워놓은 공원이 아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서울과 파리는 왜 다를까?


두 도시는 근대화 과정 자체가 달랐다. 산업화가 진행되고 정부가 묘지 개혁을 발표하면 시민들이 반발하는 것까지는 비슷했지만, 우리는 해방 이후에 한 번 더 과격한 변화를 맞았다. 파리의 시민들은 묘지를 도시 외곽으로 옮기려는 묘지 이전 계획에 완강하게 반대했지만, 서울 시민들에게는 먹고사는 일이 급선무였다. 우리는 국가 전체가 산업화를 위해 내달리는 상황에서 불만이나 저항을 표출할 기회조차 잃어버렸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과연 좋은 걸까? 오히려 우울감에 빠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개발과 성장만을 위해 정신없이 달려왔고, 지금도 삶의 영광만을 위해 전진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한 성찰은 작은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수많은 타인과의 마주침을 통해 우리는 성숙한다. 죽음에 관한 성찰 역시 다르지 않다. 가까운 이부터 타인의 죽음까지 다양한 관계의 죽음을 겪으며,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무수한 삶의 형태를 담고 있는 도시라면 반성의 기회는 더욱 자주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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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서는 여기까지만 공개합니다.



기세호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건축 이론을 공부했다. 건축과 도시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 감추려고 하는 부분에 관심을 갖게 되어 〈근대화로 인한 묘지와 도시 사이의 거리 변화에 관한 연구 ― 파리와 서울의 비교를 통해〉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동 대학원 박사 과정에서 관련 연구를 이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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