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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저널리즘 Nov 26. 2018

누구에게나 비생산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80 《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 김보라 저자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에디터 한주연입니다. 금요일 오후, 다들 생산적으로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이 레터를 쓰기까지 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녹취록을 여러 차례 살펴본 뒤에야 인터뷰 구성을 정했고, 좋은 인사말이 떠오르지 않아 여러 번 쓰고 지우길 반복했습니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입력한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고민하는 데에 썼습니다.

무언가를 만들어 낼 때, 아이디어는 결코 쉽게 떠오르는 법이 없습니다. 영감을 얻고 생각을 다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당장 무언가를 생산해 내야 한다는 강박은 생산에 꼭 필요한 시간조차 비생산적으로 보이게 합니다.

영화감독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통상 10년의 기간을 지망생으로 보냅니다.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시간이 하루 이틀만 돼도 초조해지는데, 이들은 어떻게 창작의 과정을 지속할까요? 북저널리즘 콘텐츠 《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은 영화감독 지망생 15인을 심층 인터뷰해 창의적인 일을 하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봤습니다.

저자 김보라는 기계적인 작업이 줄어드는 미래에는 모두가 창의성을 이용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창의 노동자
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비생산적으로 보이는 과정을 생산적인 노동으로 재평가하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생산을 위한 과정을 견디고 계신 모든 분께 김보라 저자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망생들을 ‘창의 노동자’로 규정했는데, 창의 노동은 무엇인가?

저널리스트, 광고 기획자, 게임 개발자 등 개인의 창의성을 통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들을 창의 노동자라고 한다. 일반적인 노동에 비해 과정에 막대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결과만을 평가하는 풍토에서는 그 비용을 온전히 개인이 감당하게 된다. 10년이라는 지망생 기간은 창의 노동의 그러한 특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사실 지망생은 작품 활동으로 임금을 받는 상태가 아니어서 기존의 학술적 정의에 의하면 창의 노동자가 아니다. 그러나 지망생 신분에서 개발한 시나리오가 입봉작이 되고, 문화 산업의 이윤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이들의 과정을 ‘노동 이전의 노동’으로 조명하기 위해 창의 노동의 범주에 포함하여 다뤘다.


지망생들이 창작 과정에서 겪는 고충은 무엇인가?

감독이 되기 위해 어떤 준비와 노력이 필요한지 누구도 알려 주지 않는다. 나 또한 학부에서 영화를 전공했지만 지망생들의 삶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대부분 열심히 하면 된다는 수준의 말만 해준다. 그런데 졸업을 하고 나면 갑자기 혼자 365일 24시간을 관리해야 한다. 그야말로 공백 상태에서 0부터 10까지 직접 깨달아야 한다. 창작을 위한 자신만의 노하우를 발견하고 규칙을 만들면 그제야 안정적인 궤도에 접어든다.

그렇게 발견한 노하우와 규칙은 무엇인가. 어떤 창작의 과정을 거치는지 궁금하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제동이 걸리거나 원하는 대로 써지지 않으면 슬럼프에 빠지기 쉽다. 고비를 잘 다스려 나가야 하는데, 대단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다. 최소 작업 시간, 최대 수면 시간을 정하고 매일 지키는 것부터 시작된다. 두 시간 작업하고 한 시간 산책하는 사이클을 반복하는 지망생도 있었다. 상금과 커리어가 달린 영화제를 기준으로 데드라인을 잡아서 스스로 강제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다들 생활이 흐트러지면 정신적으로 얼마나 괴로운지 느껴 봐서 어떻게 해서든 철두철미한 생활을 유지한다. 한 지망생은 능력이나 결과물이 불만족스러울 때보다 나태해질 때 자신에 대한 경멸이 커진다고 했다.

수년간 그런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니 놀랍다.

신기하게도 지망생들은 아무도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별로 열심히 살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회는 끊임없이 생산성을 강조하는데 그들로서는 증명할 만한 성과가 없으니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더욱이 이들이 거치는 과정은 겉으로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인다. 많은 시간, 영감을 얻기 위해 책과 영화를 ‘덕질’하고, 시나리오 구상이 막힐 때는 몇 시간이고 ‘멍 때리기’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간 없이는 창작의 결과물도 없다. 양분을 쌓아야 시나리오의 메시지를 도출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온전히 자신의 생각에 집중해야 글을 쓰는 힘도 생긴다.


창의 노동, 특히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결과와 달리 단조로워 보인다.

창의성이란 게 원래 ‘반짝’하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건 창의성이 아니라 벼락이나 로또 맞는 것과 비슷하다. 모든 기업이 그리고 사회가 창의적인 인재를 원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창의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종종 “나는 창의적인 사람은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한 번도 창의성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경험해 보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창의적이려면 무엇보다 끈기 있고 성실해야 한다. 오히려 재미없고 지루해 보이는 사람들이 더 창의적일 수 있다. 

창의성이 타고나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 창의적 작업을 위한 과정을 외면하는 풍토는 서로 연결된 것 같다. 

학부 때 영화 제작 때문에 캐나다에서 사운드 작업을 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사운드 작업을 할 때 완성된 결과물을 기준으로 계약한다. 10분짜리 곡이면 얼마, 이렇게. 그런데 캐나다에서는 작업에 들이는 시간을 기준으로 돈을 받는다고 해서 충격을 받았다. 작업 과정을 옆에서 다 지켜봤는데, 사운드 제작자가 실수를 해서 작업을 다 엎기도 하더라. 그런데도 당당하게 작업 시간이 넘었으니 돈을 더 받아야겠다고 요구했다. 과정에 대한 존중과 가치 평가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문화였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사고방식이 정말 필요하다. 실수를 하는 과정도 창의적 작업에 꼭 필요하니까. 결과만 따지는 환경에서 과연 창의성이 계속 꽃필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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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서는 여기까지만 공개합니다.



김보라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대학원에서 문화연구를 전공했다. 영화감독 지망생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어 〈시나리오 작가, 감독 지망생들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불규칙한 유동성의 모순적 공존〉이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영상 콘텐츠 제작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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